필수의료 자처하는 한국의료 '자화상'

발행날짜: 2022-09-07 05:30:00
  • 의료경제팀 이창진 기자

윤석열 정부가 쏘아올린 '필수의료 강화'를 바라보는 의료계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8월 대통령 업무보고 이후 필수의료 건강보험 재정 개혁 추진단과 필수의료 확충 추진단을 연이어 발족하고 대책마련에 들어갔다.

서울아산병원 간호사 사망 사건을 계기로 급물살을 탄 필수의료 강화 방안은 윤정부의 핵심 국정과제로 급부상하고 있다.

대통령 업무보고 자료에 명시된 필수의료 강화의 선택과 집중을 어떻게 봐야할 것인가.

복지부는 필수의료 강화의 필수조건인 재원에 말을 아끼고 있다.

재정 지원 범위를 최소화해도 의료인력 양성과 유지, 수가 개선에는 연간 최소 수 천 억원이 필요하다.

의사협회와 병원협회를 비롯한 진료과와 전문학회는 물밑경쟁을 벌이고 있다.

미용성형을 제외한 사실상 모든 진료과와 질환군 의사들이 필수의료 탑승 표를 얻기 위해 혈안이 된 형국이다.

어찌된 영문일까.

의원과 중소병원, 상급종합병원 등 모든 의료기관은 당연지정제로 건강보험 통제를 받고 있다.

진료과별, 질환군별 행위별 수가와 인센티브를 어떻게 책정하느냐에 따라 의료기관 경영과 해당 의사 인력 수급이 달려있다.

외과와 흉부외과 그리고 소아청소년과, 산부인과 등의 경우, 투여한 노력과 시간에 비해 낮은 수가 그리고 의료과실 위험성 등 소송 부담으로 젊은 의사들의 지원 기피 현상은 이미 고착화됐다.

이런 상황에서 수가 개선으로 해석되는 필수의료 강화는 놓칠 수 없는 기회이다.

역으로 진료과와 전문학회에서 필수의료에 동승하려 발버둥치는 것은 한국의료의 서글픈 자화상인 셈이다.

의료계 일각에서는 필수의료를 야간 응급실 콜을 받은 질환군으로, 한편에서는 내외산소(내과, 외과, 산부인과, 소아청소년과) 중심으로, 다른 쪽에서는 지방병원 등을 우선 지원해야 한다고 말한다.

필수의료 강화 정책의 현명한 가르마 타기가 전제되지 않는다면 정부 불신과 의료계 내홍으로 격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제 복지부는 솔직해야 한다.

가능한 재정 범위를 정하고 윤정부 5년 동안 단계별 필수의료 개선방안을 조속히 내놔야 한다.

의료계 중진 인사는 "필수의료 강화를 놓고 의료계 내부의 사공이 너무 많다. 의사회와 학회 수장들 모두 회원들 눈치를 보며 필수의료 한축임을 자처하고 있다"면서 "복지부 결정이 시급하다. 의료계와 신뢰를 전제로 연차별 지속 가능한 실행방안을 제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복지부가 심평의학을 통한 진료비 심사 재가동과 현지조사 강화 등 의료계를 압박한 재원 마련에 올인 한다면 필수의료 개선방안이 오히려 퇴색될 수 있다.

국고 지원 없이 동료 의사들에게 짜낸 재정을 필수의료 강화 방안으로 홍보하는 구차한 정책이 아니기를 바랄 뿐이다.

관련기사

오피니언 기사

댓글

댓글운영규칙
댓글을 입력해 주세요.
더보기
약관을 동의해주세요.
닫기
댓글운영규칙
댓글은 로그인 후 댓글을 남기실 수 있으며 전체 아이디가 노출되지 않습니다.
ex) medi****** 아이디 앞 네자리 표기 이외 * 처리
댓글 삭제기준 다음의 경우 사전 통보없이 삭제하고 아이디 이용정지 또는 영구 가입이 제한될 수 있습니다.
1. 저작권・인격권 등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경우
2. 상용프로그램의 등록과 게재, 배포를 안내하는 게시물
3. 타인 또는 제3자의 저작권 및 기타 권리를 침해한 내용을 담은 게시물
4. 욕설 및 비방, 음란성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