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시 앞둔 의대생, 본과를 마무리하며

이진규 학생(경북의대)
발행날짜: 2022-09-05 05:00:00 수정: 2022-09-05 07:58:25
  • 이진규 학생(경북의대 본과 4학년)

2019년 초, 논술형 공부에 익숙해져 있던 공대생이 의대에 편입해서 듣게 된 첫 수업 '골학캠프'에서 수도 없이 많은 뼈 이름들을 외우면서 의대로 진로를 변경한 것에 대해 큰 회의를 겪곤 했다. 선배들이 진행해주는 단 1주일짜리 수업안에 매일 퀴즈와 시험들이 가득했고, 발음도 어려운 의학용어를 외울 뿐 아니라 의미를 이해해야 겨우 뭐라도 적고 나올 수 있었기에 '이게 맞나...'라는 생각을 매일 같이 억누르며 공부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의대에 들어와서 첫 시험이었던 골학 최종 시험을 끝내고 나서 1주일간 정말 힘들었지만 앞으로 이런 시간을 4년이나 보내야 한다는 생각에 눈앞이 깜깜하면서도 그만큼 성장해 있을 미래의 내 모습과 수많은 난관들을 이겨내고 시험 성적 따위에 연연하지 않는 모습 또한 기대하곤 했다.

그렇게 본과 2년 동안 1.5주에 1개 정도되는 빈도로 시험을 치렀고, 매 시험마다 PPT 약 2000장 분량의 공부량을 소화하는 극기 훈련(!) 단계를 거쳤다. 매일 6-7교시 이상의 수업이 진행되었고 시험이 몰려있는 주간에는 일주일 간 하루 평균 16시간 공부했던 적도 있었다. 그 와중에도 나 자신과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 매일 아침을 챙겨먹고 QT 말씀으로 마음을 정돈하고자 노력했다. 아무리 바쁜 시험 전날이라고 해도 절대 밤을 새워서 공부하지 않고 수면시간을 지키겠다는 철칙을 세우고 지켰다. 그럼에도 기대에 차지 않는 성적을 마주할 때면 일시적으로 마음이 무너지곤 했지만 그럴 때면 그 과목을 배우기 전의 나를 떠올렸다.

마치 적을 상대하는 카우보이가 가슴속에 실탄을 충전하는 것처럼 의사가 된 내게 걸어 들어오는 환자와 함께 들어오는 병이라는 녀석을 공략할 수 있는 총알을 지니고 있어야 그에 맞는 대처가 가능할 터이기에 현재 배우고 있는 본과 과정의 각 과목들은 미래의 나에게 적절한 총알이 되어 줄 거라고 믿었다. 비록 시험으로 평가되는 성적이 탁월하지 못하다고 해도 내가 미래에 만날 환자를 위한 총알을 준비하는데 있어 부끄러운 시간을 보내지 않았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며 하루 이틀, 한달 두달을 버텼다.

본과 3학년, 설레는 마음으로 내 얼굴이 들어간 병원 출입증과 아직도 어색하기만한 의사 가운을 걸치고 병원에 들어가 선배 의사 선생님들과 다른 의료진, 환자와 보호자를 마주하는 임상 실습(PK) 과정을 시작했다. 첫 실습 시작 전날 일요일 저녁, 같은 조 동기들과 병원 구조를 미리 익히겠다며 병원을 구석구석 돌아다녔던 기억은 추억으로 남아있다. 실습 과정에서 접했던 외래 진료, 수술방, 회진, 술기 참관, case conference 등 매 순간 흥미롭고 새로운 경험들로 즐겁고 뜻 깊게 시간들을 채울 수 있음에 감사했다.

특히 본과 1, 2학년 때 공부했던 질병과 그에 대한 진단과 치료들이 실제로 눈앞에서 행해지고 있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게임속 2D 캐릭터가 3D로 살아 숨쉬는 것을 보는 듯했다. 약 1년 반 동안 PK 실습을 진행하면서 환자 및 보호자와 이야기를 나누며 느꼈던 것들, 교수님의 말씀으로부터 배운 내용들을 잊어버리고 싶지 않아 PK 일기로 정리해왔다. 그 중에서 인상깊었던 몇 가지만 공유하고자 한다.

정신건강의학과 한달간 정신과 실습을 돌면서 하루에 아침부터 저녁까지 10시간 가까이 폐쇄 병동에서 입원환자들과 동거동락하면서 많이 생각하고 배우고 정신과 환자를 이해할 수 있었다. 전통적으로 정신질환자에게 붙여지는 딱지인 환자가 죄를 많이 지어서, 혹은 태어날 때부터 잘못되어서 같은 것들이 얼마나 잘못된 것들인지 느낄 수 있었다. 병으로 인해 가장 억울한 사람은 환자 자신이며 그 안에 담긴 자신 만의 이야기를 듣는 순간 오히려 힘들더라도 살아 내기 위한, 처절하게 삶을 지켜 내고자 하는 그들의 살아 숨쉬는 생명력을 볼 수 있었다.

정신과 병동 입원 환자들에게서는 심심치 않게 손목에 자해흔을 볼 수 있다. 그 이유는 다양하다. 우울해서, 불안해서, 죽고 싶어서 등등…깊게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많은 환자들의 이야기 속에서 어떤 형태로든지 사랑이 부족했음을 느끼게 된다. 정신과에서는 약물이나 수술 외에도 면담자 자신이 치료로 사용될 수 있기에 실습 기간 동안 최대한의 사랑을 공급해 줘야겠다고 다짐했다.

거창하거나 대단한 것이 아니라 그저 잘되기를 바라는, 평안하기를 도와주자는 마음으로 관심을 가지고 오래 이야기를 나누고 항상 격려하고 지지해주고 나눈 이야기를 다음 날에도 기억하고, 환자가 좋아하는 것들을 퇴근 후에 찾아와서 다음날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감사 일기를 적고, 동등한 위치에서 나의 아픈 이야기도 나누었고, 함께 웃고 울기도 했다. 실습이 끝난 지금도 그들의 이름과 얼굴, 함께 나눈 이야기를 떠올리며 그저 그들의 오늘과 내일이 평안하길 소망한다.

비뇨의학과 비뇨의학과 실습의 끝자락에 잊을 수 없는 인상을 남겼던 신장 이식 수술. 신장을 받는 사람은 100kg에 육박하는 34세의 만성신부전 말기 아들, 놀랍게도 신장을 주는 사람은 59세 아버지. 아버지도 사구체여과율(GFR) 55로 당신의 신장도 온전하지 않음에도 어떻게 아들에게 기증을 결정했을 지 수술을 보는 내내 머리 속이 복잡했다.
건강한 아버지가 수술대에 올라가고 배 속에 복강경 기계를 넣고 멀쩡한 신장을 조심스럽게 분리하자 드러나는 신장에 피를 공급하는 신장동맥. 생각보다 두껍고 활력있는 신장동맥을 결찰하고 떼어내기 위해 큰 집게로 위아래를 찝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신장의 목숨줄을 조여오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분리한 신장을 배밖으로 꺼낼 때 아버지의 따뜻한 피가 바닥으로 뚝뚝 떨어지고 그 모습을 숨죽인채 지켜보는 비뇨의학과 의료진 6명과 신장을 받아서 연결하러 온 8명의 이식혈관외과 의료진들...

가시고기. 자식을 낳은 이후 기력이 다할 때까지 그들을 보호하는 삶을 살다가 결국에는 자신의 몸을 자식의 먹이로 내어주는 가시고기의 부성애가 떠올랐다. 자식의 부족함을 나무라거나 비난하기보다 제 한 몸 아끼지 않고 내어주는, 생명줄을 조이는 것 같은 아픔을 감내하고 피를 뚝뚝 흘려가며 아버지가 아들에게 주고 싶었던 것. 14명의 의료진이 숨죽이며 지켜볼 수밖에 없는 아버지가 아들에게 전해주고 자했던 그 소중한 무엇. 사랑.

비록 고될 것으로 보이는(?!) 병원 생활이 개인적으로 두렵지만, 누군가의 가장 소중한 그것을 잠시 맡아 최선을 다해 온전하게 전달해 줄 수 있는 영광은 의료진에게 주어진 축복임이 분명하다.

재활의학과 케이스로 받아 1주일간 주치의처럼 붙어 다녔던 40세 척수 손상 남자 환자. 소방공무원으로 일하던 환자가 밤 중에 자전거를 끌고 집에 가는 골목길에 뒤에서 시속 60-70으로 오던 차에 치여 흉추 및 경추 부분 외상으로 응급실로 실려왔다. 슬프게도 척수손상 환자 평가 및 예후(ASIA scale) T4 level complete로 대소변 조절이 불가능하고 젖꼭지 밑으로 운동, 감각 모두 마비된 환자였다. 매일 같이 열심히 내려와 재활 운동을 하고 있는 환자는 성격 좋은 얼굴로 너털웃음을 지으며 꼭 열심히 운동해서 내년에 걸어서 인사하러 오겠다고 한다. 하지만 마음이 어려웠던 부분은 이런 척수 손상 환자는 아무리 열심히 재활하더라도 자가 보행을 기대해 볼 가능성은 의학적으로 0이다.

환자에게 예후를 설명해주는 것이 맞는지 아니면 그저 격려하는 것이 좋을지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교수님께 여쭤봤을 때 대답은 "환자도 이미 안 되는 거 알고 있을끼다"였다. 현실적으로 어렵더라도 열심히 재활치료를 받지 않으면 다가오는 좌절감과 절망감에 고통스러워 하는 것보다 차라리 운동을 열심히 하기로 환자가 선택했다고 하셨다. 케이스 발표를 마치고 마음 속에 남아 있는 질문, '좋은 의사란 어떤 의사인가? 환자에게 좋은 의사는 어떤 의사인가? 좋은 크리스천 의사는 어떤 의사인가?'

산부인과 한 여자가 엄마가 된다는 것은 정말 많은 변화를 수반한다 가장 놀라운 모성 생리변화는 공복시 저혈당(mild fasting hypoglycemia), 식후 고혈당(postprandial hyperglycemia), 고인슐린혈증(hyperinsulinemia)이었다. 배가 고플 때는 더 배고프게, 배부를 때는 위험을 무릅쓰고 지속해서 혈당을 높이고 인슐린 저항성을 증가시켜 일시적으로 흡사 당뇨환자처럼 자신을 변화시키는 엄마 몸의 목적은 단 한가지, 아기에게 밥 주기. 이제껏 생존을 위해 철저하게 자신에게 이로운 선택을 해오던 인간의 몸이 아기가 생기는 순간 이렇게 한없이 비효율적인 선택을 한다는 사실이 정말 놀랍고 경이롭다.

순하디 순한 것 같은 태아에게도 주어지는 삶의 무게와 고난이 있었다. 배아시절부터 융모막외 영양세포(extravillous trophoblast)로 엄마혈관을 파괴해 혈류를 공급받으며 태반을 형성해야한다. 9주가 되어서야 이 영상처럼 파닥파닥 겨우 움직일 수 있고 약 40주 내내 혹여나 엄마가 일찍 내보내지는 않을지, 양수가 부족하지는 않는지, 혹시 터져서 GBS가 침투하지는 않을지 걱정이 많을 것 같았다.

설상가상으로 나오는 과정도 쉬운 게 하나 없다. 실수로 옆으로 누워있거나 팔 하나만 빠졌다가는 엄마배를 갈라야 하고 엉덩이가 밑으로 가고 있어서도 안 되고 정확히 머리 뒤통수 소천문이 정해진 방향으로 돌면서 골반에 진입해야 하고 그에 맞춰 턱을 당기고 어깨를 으쓱으쓱해줘야 무사히 빠져나올 수 있다. 모든 인간은 태어나면서 죽을 때까지 고난 가운데 살아간다는 말이 태아에게도 해당한다는 사실이 약간은 가혹하게 느껴졌다.

새로운 생명의 탄생을 보는 것은 단순히 한번의 출산이 아닌 기적 중에 기적이다. 여러 호르몬의 조절로 배란된 난자와 건강한 정자가 딱 맞는 시기에 만나야 하고 안정적이고 준비된 자궁 내막에 앉아야 착상이 가능하고 형성하는 태반의 위치, 엄마의 기저질환 여부, 이후의 적절한 호르몬 분비, 태아의 출산과정 등등 수많은 불확실성 속에서 정답만을 선택한 길 끝에 온전한 생명인 내가 있다. 그렇기에 아둥바둥 오늘 하루를 살아낸 우리는 수많은 기적과 기적의 연속으로 이루어져 있기에 비록 고된 하루였더라도 오늘은 값진 선물이다.

의사와 학생의 사이에서 가장 마지막 관문인 의사 국가고시를 100여일 정도 남겨둔 지금, 골학캠프 마지막 시험을 마친 날의 필자가 기대하던 4년 후 스스로의 모습에 완전히 부합하지는 못한다. 그러나 치열하게 하루하루 살아내고자 노력했던 나 자신, 그리고 함께 같은 길을 걸어온 선배, 후배 및 동기들, 열심을 다해 가르쳐주셨고 실제로 보여주셨던 교수님들과 학교, 그리고 무엇보다 의사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배움의 동반자이자 살아 숨쉬는 교과서가 되어준 병원을 찾아온 환자들, 모두가 힘을 합친 끝에 있는 나는, 그 존재만으로 큰 가능성을 지닌 존재라고 믿는다.

많은 사람들의 도움으로 비롯된 나라는 사실과 지금 느끼는 이 감사한 마음을 잊지 않으며, 좋은 의사란 어떤 의사인지 끊임없이 고민하며 또 그런 의사가 되기를 꾸준히 노력하며 살아가기를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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