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사태 사람보다 시스템에 책임 물어야

이형민 회장
발행날짜: 2022-11-10 06:13:42
  • 이형민 응급의학의사회장(한림대성심병원 응급의학과 교수)

이형민 회장.

아마도 모든 의료인들을 통틀어 가장 많은 사망을 목격하는 것은 응급의학과일 것이다. 오래도록 병중에 있던 분들이 돌아가시는 경우는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기 때문에 대부분은 슬퍼하지만 담담하게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갑작스러운 사망의 경우는 보호자들이 현실을 인식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쉽지 않은 경우가 많다. 이런 경우 현장을 담당하는 의료진들은 보호자들의 안타까운 반응들을 보면서 최대한 냉정하게 객관적으로 대응하려 해도 사람으로 느끼는 감정은 당연히 힘들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사망선언은 응급의학 의사들에게도 엄청난 스트레스이다.

이번 사태의 보도와 상황을 보면서 온 국민들이 크나큰 정신적 충격을 받았었고 그 많은 사건, 사고, 손상들을 보아온 응급의학 전문의들조차도 너무 큰 충격과 상처를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역할은 단지 마음으로 아파하는 것이 아닌 현장에서 일어났던 문제에 대한 냉정한 평가와 이를 바탕으로 한 개선과 해결이 될 것이다.

재난현장은 당연히 어지러울 수밖에 없다. 통제되지 않고 어수선하기 때문에 재난인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철저한 준비와 반복적인 연습이 필요한 것이다. 설령 아무리 많이 준비한다고 하더라도 막상 재난이 닥치면, 대응이 완벽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런 초기의 어려움을 빠르게 장악하고 관리하는 것이 재난대응의 핵심인 것이다.

재난의 종류에 따라 대응의 방법도 모두 달라야 하는데, 예를 들어 현장에서 중환자가 많이 발생하는 종류의 사고라면 현장의 의료 처치 위주로 대응이 이뤄져야 할 것이고, 경환자가 많이 발생한 재난이라면 적절한 의료기관 이송이 주된 대응이 될 것이다.

이태원 사태와 같은 경우, 구조에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 바람에 구조 당시 이미 사망한 분들이 많았다는 것은 이번 재난의 포커스는 재난 발생 이후 빠른 구조를 위한 대응이 가장 핵심인 재난이었던 것이다.

얼마 전 김포공항에서 1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줄을 서서 택시를 기다리고 있었고, 맨 뒤에 서있던 나는 20여분쯤 기다려서 택시에 오를 수 있었다. 만약 택시가 충분하고 길이 막혀 있지 않은 상황이라면 대부분은 그 정도 시간에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바라는 재난대응의 적절한 모습이 바로 이것이다.

핵심은 얼마나 빠른 시간에 이러한 상황으로 정리될 수 있느냐인 것이다. 그렇기에 필요한 것은 강력한 컨트롤타워에 의한 현장파악과 장악능력인 것이다. 아쉽게도 이것은 의료의 영역이기 보다는 행정지원의 역할인 것이다.

현장의 의료인들과 일반인들이 초인적인 힘을 발휘해서 현장에서 응급조치를 통해 아주 소수의 생명을 살릴 수 있다면, 강력한 현장관리와 통제는 수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구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이것이 재난대응이며 관리인 것이다.

언론과 인터넷을 통하여 억측과 책임전가가 가혹하게 진행되고 있다. 사람에 책임을 묻는다면 누군가는 만족할 수 있겠지만 그 일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은 이뤄지지 못한다. 만약 누군가가 해야 할 어떤 일을 제대로 할 수 없었다면 그 일을 하지 못한 시스템과 환경과 상황을 분석하고 이유를 먼저 따져봐야 할 것이다.

지금은 누군가를 욕하고 비난할 상황이 아닌 상처를 보듬고 회복시켜야 할 시기이다. 책임감과 의무감으로 현장에 출동하여 재난의 한가운데에서 최선을 다한 의료진들에게 찬사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위로와 격려부터 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들이 없다는 것이 무척 아쉽다. 책상 앞에 앉아서 잘못된 것을 지적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들이 과연 전문가인지도 알 수 없는 일이다. 말로는 나라를 구할 것처럼 이야기해도 막상 일이 닥쳐서 맡겨보면 해결하지 못하는 것도 그런 부류의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에 맡겨 놓았을 경우 미래는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사태에 대한 평가는 전문가들에게 맡겨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어렵고 제대로 못하는 일이 이런 사고가 난 후 이에 대해 평가하고 반성하고 개선하는 일이다. 이번 사건과 관련된 모든 것들을 한자리에 펼쳐 놓고 냉정하게 객관적으로 또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평가하는 일은 전문가들의 영역인 것이고 무척 많은 노력과 시간이 걸리게 될 것이다.

지금 우리의 대응체계는 다양한 이익집단들이 서로 엉켜 있기 때문에 사공이 많은 경우 이러한 분석 작업은 산으로 갈 것이다.

본인들의 입장에서 허술한 대응과 잘못된 점이 부각되지 않도록 여러 단체들이 목소리를 높일 때 과연 공정하고 객관적인 평가가 이뤄지겠는가? 이번에야 말로 각 부처 간의 갈등을 넘어 전문가들에 의해 제대로 된 평가가 먼저 이뤄져야 할 것이다.

제대로 된 대응방안 마련은 제대로 된 평가의 기반에서 이뤄져야 한다. 사람에 책임을 묻기 보다 시스템을 다시 돌아보자. 이제는 정말 전문가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때인 것이다.

응급의학의사회는 이번 사고로 피해를 입은 사상자들과 유족들, 심리적인 피해를 입은 국민들에게 머리 숙여 사죄를 드린다. 그리고 정말 제대로 된 대응방안, 재난에 대한 준비와 노력에 우리가 가진 힘을 다해 최선을 다할 것을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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