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 경색 기조속 유지 여부 골머리…일부 기업은 아예 접어
본사 직원 전원 철수까지 진행…해외 임상 등 맞물려 고민 가중
글로벌 시장 진출을 위해 공격적으로 해외 법인 설립을 추진하던 의료기기 기업들이 투자 경색 기조로 인해 골머리를 썩고 있다.
자금 확보가 쉽지 않아진 상황에서 유지 여부를 두고 고민이 깊어지고 있는 것. 이미 일부 기업들은 사실상 법인 문을 닫은 채 명맥만 유지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9일 의료산업계에 따르면 미국과 유럽, 중국 등 글로벌 시장 진출을 위해 해외 법인을 세우던 의료기기 기업들이 급브레이크를 밟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몇년 전 미국 법인을 설립한 A기업이 대표적인 케이스다. A기업은 미국 법인을 통해 판매망을 구축하는 것은 물론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 등을 추진해 왔지만 사실상 사업을 올스톱시킨 상태다.
A기업 임원은 "5년 중장기 계획으로 미국 법인을 설립했지만 이를 유지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결론을 내렸다"며 "일단 주재원 개념으로 일부만 상주시킨 채 나머지 인원들은 모두 철수한 상황"이라고 털어놨다.
그는 이어 "내부적으로 구조조정까지 검토하고 있는 상황에 해외 법인을 유지하는 것은 사치가 아니냐는 지적이 많았다"며 "당분간은 이 기조가 유지되지 않을까 싶다"고 덧붙였다.
이는 비단 A기업만의 문제는 아니다. 미국과 유럽, 동남아, 중국 등 글로벌 시장 진출을 위해 앞다퉈 해외 법인을 설립하던 기업들 상당수가 이미 철수를 검토중인 상황이다.
금리 인상과 인플레이션 등으로 인해 현금 흐름이 급격하게 나빠진데다 이에 대한 후폭풍으로 기업공개(IPO)나 투자도 냉각기에 접어들고 있는 이유다.
심지어 달러 강세 등으로 해외 법인 인력의 인건비도 크게 오르면서 이에 대해 부담을 갖는 기업들도 늘고 있는 상황.
유럽 법인을 운영중인 B기업 임원은 "그나마 조금은 안정화된 상태지만 킹달러 시기에는 인건비가 크게 부담됐던 것이 사실"이라며 "우리 입장에서는 갑자기 연봉이 30% 이상 인상된 것과 마찬가지 아니냐"고 토로했다.
이어 그는 "일부 직원을 정리하고 에이전시를 통해 부족한 부분을 메우고 있는 상황"이라며 "IPO 계획도 무기한 연기된 상황이라 투자를 할 만한 시기는 아니라는 판단"이라고 전했다.
같은 이유로 아예 해외 법인을 정리하는 기업도 생겨나고 있다. 특히 투자 경색으로 해외 임상 등에 차질을 빚으면서 철수를 고민하는 기업도 많다.
중국 시장 진출을 위해 해외 법인을 설립하고 대규모 인력을 투입했던 C사가 대표적이다. C사는 해외 법인 가동을 위해 사옥까지 마련하고 본사 직원을 대거 파견했지만 지난해 말부터 철수를 진행중인 상태다.
중국 진출이 사업의 우선순위에서 밀리면서 이에 대한 투자를 중단하기로 결정한 것. 사옥 또한 임대를 주는 방안을 검토중이다.
C기업 임원은 "글로벌 기업들조차 중국 시장 철수를 고려하는 상황에 신규 투자를 진행하는 것은 리스크가 크다는 결론이 났다"며 "중국 프로젝트 자체가 사실상 캐비넷에 들어간 셈"이라고 귀띔했다.
아울러 그는 "일단 좀 더 시간이 흐른 뒤에 상황을 지켜보며 재추진되지 않을까 싶다"며 "일부 합작법인 빼고는 다른 기업들도 마찬가지 상황"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