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약처의 예측 불가능한 행정, 제약사 발목 잡을라"

강윤희 위원
발행날짜: 2023-04-17 05:00:00
  • 강윤희 전 식약처 임상심사위원

필자는 진단검사의학과 전문의로서 검사의 질을 관리한다. 검사의 질에는 크게 정확도(accuracy)와 정밀도(precision)가 있는데, 물론 2가지 모두 중요하지만 둘 중에서 좀 더 중요하고 질관리의 대상이 되는 것이 정밀도이다.

정밀도(precision)는 재현성(reproducibility)으로도 표현될 수 있는데, 예를 들어 안정된 물질을 가지고 측정한 어제 결과와 오늘 결과가 허용 오차 범위 내에서 유지되도록 하는 것이다.

반면 정확도는 시약과 장비 자체의 고유의 성격으로서 질 관리보다는 시약과 장비를 처음 고를 때 중요하게 검토해야 하는 것으로서, 막상 직접 사용해보니 정확도가 의외로 좋지 않은 난감한 경우에는 검사를 처방하고 그 결과를 진료에 활용하는 의사들과 소통을 많이 해야 한다.

왜냐하면 진료하는 의사들 또한 약간은 부정확하더라도 정밀도는 괜찮은 시약의 결과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인데, 예를 들어 투석환자를 진료하는 의사가 환자가 이 정도의 상태에서 phosphorus 가 이 정도의 결과가 나오는데 적응이 되어 있는데, phosphorus의 정확도가 알고 보니 부정확하다고 해서 갑자기 시약을 바꾸어 phosphorus 수치를 정확하게(이전보다 높게 또는 낮게) 보고하기 시작한다면 진료하는 의사로서는 매우 혼란스러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정확도를 향상하기 위해 검사 결과에 의미있는 변동이 초래될 수 있다면 진료하는 의사들과의 충분한 소통 후 변화를 줘야 되는 것이다.

규제기관의 기능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이 검사의 정밀도와 유사한 단어인 예측가능성(predictability)이다. 예를 들어 임상시험 승인을 받는데 A 심사관이 검토할 경우에는 승인이 떨어지고, B 심사관이 검토하면 보완이 나온다면 기업 입장에서는 일하기가 매우 어려워지는 것이다. 시간이 곧 돈인 기업 입장에서는 식약처의 검토 결과가 어느 정도 예상이 가능해야 일을 편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필자가 식약처에서 일할 때 제발 모든 임상시험계획서에 대해서 peer review 를 하자고 건의를 했었다. 하루 한시간 정도 다른 사람이 검토한 임상시험계획서에 대한 검토의견을 함께 나눌 때 검토의 관점을 맞춰갈 수 있고, 검토의 관점이 부득불 상이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아직 의학적 근거가 불충분한 영역 등) 기업이 어려움이 없도록 나름의 원칙을 정해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예측가능성을 높일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peer review를 하자는 필자의 의견은 바쁘다는 한마디로 거절됐다.

예측가능성(predictability)을 위해서 위에 언급한 규제기관 내부의 peer review와 더불어 기업과의 소통 또한 매우 중요한데 식약처는 이 또한 매우 취약하다. 예를 들어 식약처는 보툴리눔 톡신 제제에 대해 지난 10여년간 관행적으로 문제삼지 않았던 부분을 갑자기 문제삼기 시작하면서 여러 기업들을 힘들게 하고 있다.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는 것은 물론 매우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신속하게 바로 잡아야 하는 관행이란 그것이 국민의 건강과 안전에 영향을 미쳐야 하는 경우여야 국민과 기업 모두 납득할 것이다. 그런 사안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규제기관이 뭔가를 잘해보겠다고 갑자기 태도를 바꾸게 되면 기업들은 제대로 일할 수가 없는 것이다. 예를 들어 식약처가 톡신 기업들과 소통하여 그 동안의 관행이 규정에 맞지 않는 점에 대해서 규정이 불합리한 것인지, 또는 관행이 잘못된 것인지 소통하고, 규정을 수정하거나 또는 관행을 교정하기 위한 유예기간을 주었다면 톡신 기업들은 편안하게 일할 수 있었을 것이며 그것이 규제기관의 역할인 것이다.

최근 식약처는 네이처셀의 줄기세포치료제에 대해서 허가신청을 반려했다. 문제는 이 줄기세포치료제의 임상3상 디자인이 식약처와 논의를 거친 것이었고, 이 디자인에 따른 유효성 지표를 모두 충족시켰다는 점에 있다. 우리나라는 관행적으로 IND(임상시험)와 NDA(허가)가 맞물려 있다. 규정적으로 명시되어 있지는 않지만 식약처와 논의한 임상3상을 성공했을 때 허가를 해주는 관행이 있는 것이다.

또한 미국이나 유럽 등 선진규제기관의 경우 IND와 NDA가 분리되어 있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상3상을 성공했는데 허가가 안되는 경우는 안전성 이슈가 아닌 이상 극히 드물다. 이는 엄청난 비용을 투자해야 하는 임상3상의 경우 당연히 허가를 염두에 두고 시행하게 되기 때문에 주요 선진규제기관과 미리 충분한 의논을 거치기 때문이다. 그런데 식약처가 갑자기 본인들이 승인한 임상3상을 성공한 품목에 대해서 안전성 이슈도 없는데 허가를 반려하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 이는 식약처가 갑자기 IND와 NDA를 분리해서 심사를 한 첫번째 사례로 추정되는 바 예상하지 못한 짱돌을 맞은 기업 입장에서는 매우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또한 2차 중앙약사심의위원회 회의록을 읽어보니, 1차 유효성 지표가 적절했느냐에 대한 내용이 주인데 이런 논의는 해외에서 임상시험을 한 경우에는 논의의 대상이 될 수 있겠지만 본인들이 승인한 국내 임상3상 결과에 대해서 이런 논의를 한다는 것은 결국 누워서 침뱉기인 셈이다.

만약 품목허가를 심사를 하면서 비로소 본인들이 승인했던 1차 유효성 지표가 적절하지 못하다는 점을 인지하게 됐다면 기업에 무작정 짱돌을 던지기 전에 해당 분야의 전문가뿐만 아니라 임상3상의 연구자들, 기업의 연구책임자 등과 충분히 소통해 기업에 해를 미치지 않으면서도 어떻게 하면 의학적으로도 객관성 있는 근거 창출이 될 수 있을지를 심도있게 고민한 후 문제를 해결했어야 했다. 식약처의 예측 불가능한 행정으로 우리나라 기업들이 고생이 많다.

※칼럼은 개인 의견으로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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