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경제팀 김승직 기자
간호법을 둘러싼 의료계와 간호계 갈등이 인신공격으로 비화했다. 대한간호협회는 의사들이 간호사와 약소 직역을 편 가르기하고 있다며 비난 수위를 높이고 있다.
특히 간협은 협회 홈페이지에 의사를 ▲장례지도사 ▲배후조종사 ▲낙선운동 지도사 ▲약자 코스프레 전문가 ▲파업지도사 ▲무관심 지도사 ▲연기지도사에 비유하는 게시물을 올리기도 했다. 간호법에 대한 약소 직역의 반발이 의사 주도하에 만들어진 프레임이라는 주장이다.
실제 현장의 목소리는 다르다. 여러 보건의료단체 회장들을 만난 결과 오히려 의사들보다 약소 직역이 간호법에 더 강력히 반발하는 모습이었다. 간호법으로 의사들이 입는 피해는 간접적이지만, 약소 직역이 받는 피해는 직접적이기 때문이다.
간호법으로 간호사가 요양시설을 개설할 수 있다고 해도, 요양병원마저 경영난으로 폐업하는 상황에서 환자들의 호응을 얻을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 간호사 진료가 현실화한다고 해도, 진료의 전문성을 강조하는 국민정서상 의사에 대한 업권 침해는 제한적이라고 본다.
반면 간호법으로 인한 약소 직역 피해는 극명하다. 특히 간호법이 부모돌봄을 강조하면서 요양 만을 위해 만들어진 직역인 요양보호사들의 우려가 커진 상황이다.
다른 약소 직역들도 마찬가지다. 간호법으로 여러 의사 보조 행위가 간호영역에 들어가면서 일자리를 빼앗길 수 있다는 우려다.
이미 현장에선 초음파기기 사용, 심전도 검사, 구급차 탑승, 의료정보 관리 등 타 직역의 업무가 간호사에 의해 이뤄지고 있다. 방사선사, 임상병리사, 응급구조사, 보건의료정보관리사들이 간호법에 반대하는 이유다. 현재는 이 같은 행위가 암암리에 이뤄지고 있지만, 간호법 제정 시 합법적으로 이뤄질 수 있다는 것.
한 인터뷰서 들었던 "학력제한을 없앨 바에 간호사가 되라"는 한 간호단체 임원의 발언 역시, 같은 간호 직역인 간호조무사에 대한 간호사들의 인식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간호계는 이 같은 침해가 의사들의 지시 하에 이뤄지는 것이라는 입장이다. 하지만 전문간호사 업무범위가 계속해서 확장되고, 간호대학에서 관련 강의가 개설되는 상황에서 이 같은 주장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긴 어렵다.
무엇보다 간호법 총파업에도 약소 직역들이 더 적극적으로 나서는 상황이다. 지난 8일 이뤄진 보건복지의료연대 총파업 결의 역시, 연대 차원에서 이에 소극적인 대한의사협회를 자극하기 위함이라는 게 내부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앞선 의사 파업의 주축이었던 대한전공의협의회 역시 이번 총파업에 냉담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의사 사회가 이 모든 갈등을 선동할 수 있을 정도로 정치력이 강한 집단인지도 의문이다. 각 직역의 목소리를 종합하면, 이들은 그동안 간호사에 의한 업무 범위 침해를 겪어왔기 때문에 간호법에 맞서 연대한 것이다. 이런 집단행동이 경험 없이 선동 만으로 가능하다고 보기 어렵다.
피해자에게 사과하지 않아도 법원에 반성문을 제출하면 감형 받을 수 있는 소위 '반성문 감형'이 사회적인 지탄을 받은 일이 있다. 약소 직역의 피해를 무시하면서 대국민 호소에만 열을 올리는 간호계 행태는 이런 가해자의 모습과 겹쳐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