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경제팀 이지현 기자
10년 전 중국, 중동 등 해외진출에 힘을 받았던 보건복지부 지정 화상전문병원 K이사장을 최근 다시 만났다. 병원 해외진출 사업에 주력하던 시절 정장 차림의 말쑥한 모습을 떠올리며 만난 K이사장은 예상밖에 수술복에 의사가운 차림으로 나타났다. 이날 마침 아침부터 긴 수술을 마치고 나왔다며 긴 한숨을 내쉬는 그는 지쳐 보였다.
올해로 65세인 그의 나이에 아침 일찍 직접 수술을 한다는 것에 놀랐지만 당직도 직접 선다는 더욱 놀라운 얘기가 이어졌다. 국내 손에 꼽히는 화상전문병원에 연구소에 임상시험센터까지 갖춘 탄탄한 병원의 이사장이 정년을 훌쩍 넘긴 나이에도 여전히 수술에 당직까지 서고 있었다.
세계를 누비고 국내 선도적인 병원을 운영하는 K이사장에게도 최근 국내 휘몰아 치는 '필수의료 인력난' 파도는 피할 수 없었나 보다. 중증 화상은 자칫 생명을 잃을 수 있는 필수의료인 동시에 의료진의 희생이 요구되는 영역이다. 이사장이 솔선수범해서 당직까지 마다하지 않는 배경에는 50대 중견 의료진이 대부분인 의료현실이 깔려있다.
적어도 요즘(?) 젊은의료진에게 '화상'은 인기있는 분야가 아닌 만큼 30~40대 젊은의사 수급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는 상황. 국내 손에 꼽히는 전문병원도 어김없이 인력난을 겪고있었다.
정부 또한 이같은 필수의료 의료인력난의 심각성을 파악하고 다양한 대책을 제시하고 있지만 의료현장이 여전히 어려움을 겪을 것을 보면 아직 젊은의사들의 마음을 움직일 만한 정책은 제시되지 않은 모양이다.
보건복지부 조규홍 장관은 지난 5일 의과대학 정원을 확대하겠다며 강력한 의지를 내비쳤다. 의대정원만 늘린다고 지금의 필수의료 인력난이 해결될 수 있을까. K이사장을 비롯해 최근에 만난 의사들은 인력난에 대한 우려를 제기할 때마다 의대정원이 문제가 아니라 필수의료 분야에 의사가 올 수 있는 환경이 시급하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수년 전부터 경보음이 울리기 시작한 흉부외과, 외과, 산부인과부터 소아청소년과까지 위태롭기만 하다. 게다가 안정적이라고 생각했던 내과, 정형외과까지 내부적으로는 위기라며 우려를 쏟아내고 있다.
몇일 전에도 응급실을 찾아 헤매다가 사망하는 환자 사례가 세상에 알려지면서 다시한번 심각성을 확인했다. 정부는 물론 국회까지 나서 관심을 갖고 대책을 마련하고 있는 것은 다행이지만 어쩐지 의료현장에선 '방향성' '방법론'에 대해 물음표를 던지는 듯하다.
의료진들이 공통적으로 얘기하는 해답은 간단했다. 젊은의사들이 필수의료 영역을 하고 싶게 만드는 확실한 동기부여가 시급하다. K이사장을 비롯해 현재 50대 의료진들이 의료현장을 지킬 수 있는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