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에도 필요한 연습

박수연 학생(연세원주의대)
발행날짜: 2023-06-05 05:10:00
  • 박수연 학생(연세원주의대 본과 3학년)

의과대학 학생들은 재학 중 단순히 '의사가 알아야 할 지식'을 학습하는 게 아니라 졸업 후 의사 직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진료 역량을 갖추기 위해 '의사가 하는 일'을 배우고 훈련한다. 이에 발맞추어 의사 국가고시 실기시험은 2022년도 하반기 기준 48개의 임상표현을 주제로 문진과 임상술기로 구성되는 기본진료술기를 평가하는 CPX(Clinical Performance examination)를 시행한다.

이중에서 의대생들은 병력 청취, 신체 검진, 환자 교육, 환자-의사 관계 형성으로 구성된 진료 수행을 '표준화 환자(SP, Standardized Patient)'와 함께 연습한다. 표준화 환자는 진짜 환자의 특성을 습득하도록 교육받은 일반인 또는 연극배우로 설정된 환자의 병력, 신체 소견, 감정적 반응을 일관성 있게 반복적으로 재현하고, 개인차를 고려해 학생의 행동을 수행기준에 따라 평가한다. 이들은 실제 임상에서 내원하는 환자의 상황과 유사한 상황을 연출함으로써 학생들이 배운 여러 가지 임상 기술(정보 수집, 신체 검사, 임상 예절, 환자-의사관계 등)을 직접 적용하게끔 상황을 제공하고, 다음에는 보다 유려하게 대처하고 좋은 인상을 남길 수 있도록 피드백을 준다.

진료 수행은 크게 초기 관계 형성 – 병력 청취 – 문진 – 신체 진찰 – 환자 교육 및 상담의 순서로 진행된다. 환자와 의사의 효과적인 의사소통은 정확한 진단과 효과적인 치료계획을 수립하는 데 가장 기본적인 요소임과 동시에 진료의 만족도와 환자 순응도를 결정하는 주 요인으로 작용해 진료 결과와 건강 증진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

우리는 일상에서도 무수히 많은 형태의 의사소통을 하고 있으며 대다수의 경우 소통 상 큰 오류 없이 일상을 영위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의사소통에 관해 따로 지면을 할애한다는 부분이 언뜻 의아하게 다가올 수 있다. 그러나 의료면담은 의사와 환자 간에 이루어진다는 특수한 성격을 띤 의사소통이기 때문에 일상 대화에서보다 많은 주의점이 요구된다. 주의해야 하는 지점들을 관통하는 핵심은 결국 '환자'라는 주체에 대한 이해가 얼마나 되어 있느냐에 의해 결정된다.

환자는 소통 상대방인 의사 보다 의학에 관한 지식이 상대적으로 부족하며 특정한 문제로 인한 고통 또는 불편이 있는 상태다. 또한 대다수가 일상생활에 어려움이 없고 건강한 청년인 의과대학생과 달리 말이 느리고 청력이 떨어지는 노인부터 어려운 용어를 이해하지 못하는 소아까지 소통에 있어 고려해야 할 요소가 다양할 수 있다.

의사는 청자의 특성을 고려하며 면담을 이끌어나가야 하는데, 가령 소아를 상대로 한 면담에서는 신체 부위를 지칭하는 용어를 사용하는 대신 그림을 그려 가며 환자로 하여금 짚게 하는 예를 들 수 있겠다. 본인 확인을 할 때 의사의 발음을 듣는 환자가 헷갈릴 수 있으므로 환자가 직접 자신의 이름과 생년월일을 말하게끔 하는 개방형 질문을 사용하는 것 역시 이러한 예가 되겠다. 진료의 주요 의제를 정할 때에도 '불편한 점'이 무엇인지 물으면 가장 주요한 의제 대신 불편한 곳을 모두 말할 수 있기 때문에 '오늘 병원에 온 이유' 등의 표현을 활용한다.

다른 한편, 무조건적인 양보와 배려를 해야 한다는 지나친 의무감은 오히려 관계의 역동에서 장기적으로 해가 될 수 있다. 가령 금단으로 인한 불편을 호소하며 약물 처방을 요구하는 환자를 마주하는 물질 오남용 증례에서는 불편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되 요구대로 따라서는 안 된다. 환자안전에 있어서 의료진의 오류를 사과하고 대처를 안내하는 의료 오류 말하기의 경우에도 실수를 한 해당 의사를 못 믿겠다며 의료진을 교체해달라는 환자의 요구를 그대로 들어주는 것보다 실수를 한 본인이 끝까지 책임지겠다고 하는 태도가 장기적으로는 더 좋은 인상을 남기고 신뢰관계를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

진료수행은 환자가 호소하는 문제에 대해 감별을 위해 필수적인 항목을 빠트리지 않도록 체계적인 정보수집과 문제를 인식하는 개념적인 뼈대가 되는 스키마를 바탕으로 한 임상추론이 주 골자이지만 이들이 효과적으로 잘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결국 의사소통 능력이 요구된다. 매일같이 하는 대화는 얼핏 쉬워 보이지만 기실 서로의 의사를 주고받는 과정에서는 수많은 오류가 발생하고, 때로 이 오류들은 발생되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채로 간과되기도 한다. 제대로 된 대화는 환자의 관심, 생각, 기대, 불안 등에 대해 탐색하고 환자를 정신사회적 측면에서 이해하고자 하는 끊임없는 노력의 결과로 비로소 얻어진다.

이 글은 대화에도 연습이 필요하다는 당연한 진리를 환자와의 대화를 통해 깨달은 경험에 관한 감사함과, 이를 통해 일깨워진 경각심에 대한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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