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업한 부당청구 병의원 업무정지 막히자 '과징금'으로 제재?

발행날짜: 2023-07-04 05:30:00
  • 복지부, 과징금 적용 기준 고시 바꾸고 지난해 7월부터 실행
    법조계 "업무정지 대체의 성격, 이익 박탈적 과징금 아니다"

폐업한 의료기관에서 발생한 부당청구를 이유로 새로 개설한 의원에 대해 업무정지 처분을 내리는 게 '위법'하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온 지 1년하고도 약 5개월이 더 지났다. 이후 보건복지부는 업무정지에 갈음해 '과징금' 처분을 내리는 형태로 제재 방식을 바꾸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3일 의료계에 따르면, 복지부는 이미 폐업한 의료기관에 대한 업무정지 처분의 효력이 무력화되자 해당 의료기관을 개설한 원장에게 업무정지 대신 부당청구 금액의 최대 5배에 달하는 과징금을 부과하는 모습이다.

일례로 A원장은 2017년 7월 의원을 개설했다가 1년 뒤 폐업했다. 의원을 운영했던 A원장은 봉직의로 현재 생활하고 있다. 복지부는 2019년 9월 해당 의원이 부당청구가 의심된다며 현지조사를 진행 2000여만원의 부당청구액을 적발하고 환수와 동시에 업무정지 행정처분을 함께 내렸다.

하지만 해당 의원은 이미 폐업한 상황. 복지부는 업무정지를 대신해 A원장에게 부당청구액의 5배에 달하는 과징금 처분을 내렸다. 이에따라 A원장은 부당청구액 2000여만원과 함께 과징금 1억여원을 함께 토해내야 했다.

복지부는 지난해 6월 30일 업무정지 처분에 갈음한 과징금 적용 기준을 개정, 고시했다.

사실 이 같은 처분은 비난해 6월 고시 개정 후에 나타나고 있는 현상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복지부는 폐업한 의료기관의 부당청구를 이유로 새로 개설한 의원에 업무정치 처분을 승계하는 것은 위법하다는 대법원 판단 후 '업무정지 처분에 갈음한 과징금 적용 기준 고시'를 바꿨다.

기존에는 요양기관이 행정처분 절차 중 폐업했을 때 업무정지 처분 실효성이 없어 과징금 처분이 타당하다고 판단되면 과징금 처분을 할 수 있었다. 이 내용을 '행정처분 확정 전'에 폐업했을 때도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도록 했다.

즉, 요양급여비용을 부당청구한 요양기관이 현지조사 '중'에 폐업했을 때에만 업무정지 처분에 갈음한 과징금 처분이 가능했었는데 현지조사 '완료 이전'에 폐업했더라도 과징금 처분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법조계는 복지부의 이 같은 행태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부당청구를 옹호하는 게 아니라 건강보험 재정 건전화라는 대명제 아래 기본적인 법리가 흔들린다는 이유에서다.

김주성 변호사(법무법인 반우)는 "폐업한 기관인데 업무정지 처분을 과징금으로 대체하고 있어 부당하다는 사건 문의가 이어지고 있으며 실제로 몇 건을 수임하고 있다"라며 "업무정지 처분 자체가 기관을 대상으로 제재하는 것인데 기관이 사라졌다고 사람에게 대신 처분을 한다는 것 자체가 이상하다"고 지적했다.

실제로는 법제처 해석과 법원 판단이 엇갈리고 있는 상황이다. 법제처는 2009년 업무정지 처분에 갈음해 과징금을 부과, 징수할 수 없다는 명확한 판단을 내놨다. 의료급여법에 해당하는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업무정지 처분을 받은 의료급여 기관이 폐업을 해 업무정지를 할 수 없으면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냐는 질의에 대한 답변이었다.

자료사진. 법조계는 폐업한 기관을 대상으로 업무정지 처분에 갈음해 과징금을 부과하는 행태에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법제처는 "일반적으로 업무정지 처분으로 발생할 사회적 불편을 막기 위한 공익적인 이유에서 과징금으로 대체할 수 있게 하고 있다"라며 "특정 사업에 대한 업무정지 처분으로 얻으려는 공익보다 이로 인해 침해되는 공공의 이익이 클 때 업무정지를 하지 않는 대신 사업자에게 금전적인 부담을 부과해 업무정지 처분과 같은 효과를 거두는 동시에 공공의 이익도 확보하려는 제도"라고 설명했다.

이어 "과징금은 유효한 업무정지 처분의 존재를 전제로 그것을 갈음하는 처분인 것인지 업무정지와 병행하거나 별도로 부과하는 처분이 아니다"라며 "업무정지 처분을 할 수 없거나, 할 수 있더라도 처분 필요성이 없으면 그에 갈음하는 과징금 부과 처분도 할 수 없거나 필요성이 없다고 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즉, 의료급여 기관이 폐업을 하면 그 실체가 없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과징금 부과 처분은 법적으로 존재하지 않게 된 대상에 대한 처분이 돼 무효라는 것.

다만, 노인장기요양보험법에 근거해 업무정지 대상 노인장기요양 시설이 폐업했다면 업무정지에 갈음해 과징금 처분을 할 수 있다는 서울고등법원 확정 판결이 존재한다. 여기서 노인장기요양보험법은 의료법과 달리 '폐업'에 대한 시점을 정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의료법에서는 '행정처분 확정 전'이라는 폐업의 시점이 명시돼 있었다.

김 변호사는 "과징금 유형에는 이익 박탈적 과징금, 업무정지 대체 과징금, 독자적인 제재 수단으로의 과징금이 있는데 요양급여비 환수가 이익 박탈적 과징금 제도와 비슷하다. 받은 이익을 그대로 돌려줘야 하는 셈"이라며 "현재 요양기관에 대한 과징금은 업무정지 대체의 성격인데 정부도 그렇고 법원도 그렇고 갈음한다는 말을 이익 박탈적, 독자적 제재 수단의 과징금으로 해석하고 있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사실 의사한테 1억원이라는 금액은 많은 금액이 아니라는 사회적 편견도 업무정지 처분에 갈음한 과징금 부과에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라며 "말이 1억원이지 과징금은 부당금액의 5배까지 부과할 수 있기 때문에 부담은 더 커질 수 있다. 물론 부당청구는 분명 잘못된 것이고 환수를 통해 1차적으로 제재를 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지난해 초 대법원이 업무정지를 대물적 처분이라고 보는 쪽으로 해석에 변화가 있었다. 건강보험 재정 건전화 한마디에 모든 기본적인 법리들이 무너질 수 있다. 무작정 과징금 처분으로 갈음하는 행태는 지양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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