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의사가 돈이야? 의사니까요"

발행날짜: 2023-07-07 05:30:00
  • 의약학술팀 최선 기자

차고지 증명이 필요없는 한국에서 주차난은 태생적 문제일지 모른다. 2차선 도로 양옆을 가득메운 주차 차량들을 아무리 단속해본들 문제는 바뀌지 않는다. 주차 '장소'의 문제를 불법주차 '단속'으로 해결할 수는 없기 때문. 단속은 풍선효과처럼 불법주차 차량의 다른 장소로의 이동을 이끌어낼 뿐, 주차할 장소를 만들어내지는 못한다.

차주의 양심을 거론하기도 낯간지럽다. 아주 운 나쁜 날을 제외하곤 단속에 걸리는 일이 없는 사회라면 불법주차는 개인의 합리적인 선택(욕망)으로 봐야 한다. 아무리 도덕성이나 시민의 의무, 양심을 거들먹거려봤자 운 나쁜 날 고작 몇 만원의 과태료를 내는 것이 차주에겐 차고지 마련보다 합리적인 선택이기 때문이다.

당위성·명분이 결과와 일치하면 좋겠지만 현실은 다르다. 좋은 취지와 당위성으로 시작한 이념이, 주의가, 집단 행동이 어떻게 파국으로 치달았는지는 역사를 거론할 필요조차 없다. 입만 열면 성토부터 나오는 단통법, 책통법, 징벌적 부동산 과세, 대형마트 의무휴업제 모두 취지만큼은 그럴싸했다. 법과 규제가 현실 세계에서 작동하는지, 실제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으로 작용하는지 여부는 좋은 취지와 별개라는 것.

명분만 앞설 뿐 실효성이 없는 금주법이 되레 지하 세계의 밀주 공화국을 만든 것처럼 비만을, 비만으로 인한 질병을, 그 질병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을 줄이겠다고 설탕 금지법을 만들어봤자 실패는 예견된 것과 다름없다. DNA 깊숙한 곳, 뇌 안에 코딩된 단맛을 갈구하는 욕망을 해결하지 않고선 그 어떤 명분도 허울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서두를 길게 뽑은 건 최근 가속도가 붙고 있는 의료 붕괴의 기저에 이와 유사한 작동 원리가 숨어있다는 판단이 들었기 때문이다. 원인을 해결하지 않고 "의사가 무슨 돈이야?"와 같은 명분론으로는 필수과 지원 부족 및 이탈 현상을 해결할 순 없다. 필수의료 붕괴를 해결하기 위해선 왜 필수의료를 포기하는지에 천착해야 한다는 뜻. 의대 정원을 늘리면 필수의료 지원자가 덩달아 늘어난다는 사고는 되레 천진무구하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감기같은 경증질환에 대학병원을 찾는다고 환자들의 소양을 탓해봤자 분식집 가격으로 호텔급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건 가성비가 뛰어난 합리적 선택이다. 마찬가지다. 숭고한 희생과 헌신, 사명감과 같은 명분을 들이밀더라도 밤잠 설치며 당직비도 받기 힘든, 게다가 의료사고에 대한 책임을 개인이 오롯이 지게 만드는, 수술을 할 때마다 오히려 손해를 보는 저수가의 불합리한 구조라면, 필수의료를 포기하는 것은 합리적 선택이다. 필수의료 포기가 합리적인 상황에서 근본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선 그 어떤 대책도 한시적인 미봉책에 그칠 수밖에 없다.

선진국의 척도는 전문가에 대한 합당한 대우와 예우다. 최근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의료 붕괴의 전조를 보면서 한국은 아직 한참 멀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수가라는 말을 20년 넘게 들어왔지만 해결책보다는 "돈 벌려고 의사했냐?"는 비아냥 소리가 여전한 게 현실이다.

인간의 욕망을, 본성을 거스르는 제도는 항상 실패했다. 근본 원인을 해결하지 않는 규제도 마찬가지. 자본주의는 차갑고 냉정하다. 남이 생산한 빵을 먹을 수 있는 건 그들의 차가운 욕망과 이기심 때문이지 결코 선한 영향력을 펼치고 싶어하는 사명감에 깃든 빵집 주인이 있어서가 아니다. 그리고 그 차가운 욕망이 따뜻한 사회를 만든다. 각자의 사익 추구가 거대한 사회를 굴러가게 하며 공익을 낳는 것처럼.

오징어게임의 대사처럼 "이러다간 다 죽는다". 아직도 의사는 천상계에서 거닐며 욕망과 이기심을 가지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리고 사명감이니 명분이니 들이밀며 사태를 해결하겠다는 유교 망령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이 있다면 말해주고 싶다. 의료만큼 중요한 곳이면 그에 걸맞는 투자를 하시라고. 그간 먹어왔던 공짜(저렴한) 점심이 누군가의 희생 덕분이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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