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상]서울 A의대 마통과 5명·부산 Y의대 소화기내과 2명 줄사직
의대교수 명예·자부심 바닥…업무 과부하 버틸 이유 못 찾아
# 빅5병원 중에서도 큰 규모를 자랑하는 A대학병원 마취통증의학과 교수 4명이 사직했다. 오는 9월, 마취통증의학과 교수 1명까지 사직할 예정이라 총 5명이 그만두는 셈이다. 병원을 떠난 4명 중 2명은 미래가 전도유망한 임상조교수, 나머지 2명은 부교수급으로 병원 내 핵심인력이었지만 이들은 개원시장을 택했다. 5명 중 단 한명도 타 대학병원으로 이직은 없었다.
# A대학병원의 줄사직 소식에 충청도권 국립대병원이 C대학병원까지 연쇄 반응이 밀려왔다. 갑자기 의료진의 빈자리를 채우려다 보니 지방 대학병원 의료진이 타깃이 되는 것이다. 실제로 C대학병원 보직자는 A대학병원으로 이직을 이유로 사직의사를 밝힌 교수들과 면담을 진행 중이다.
# 부산 Y대학병원도 소화기내과 교수 2명이 사직하고 개원시장으로 향했다. 교수들의 사직 여파로 지도전문의 수가 부족해지면서 전공의 수련중단 위기에 몰리는 사례도 있다.
의대 교수들이 연쇄 이탈하고 있다. 다양한 이유가 복합적으로 작용했지만 업무 강도는 높아진 반면 급여는 낮고 교수직을 바라보는 사회적 분위기가 바뀌면서 자부심과 명예로 버텨왔던 교수들이 대학병원을 떠나고 있다.
병원별로 교수직 사직 현황을 파악해 통계를 발표하고 있지 않아 수치로 확인하긴 어렵지만 메디칼타임즈가 접촉한 대학병원 교수들은 "주변에 서너명은 개원 시장으로 떠났다"고 입을 모았다.
주목할 점은 최근 이 같은 현상이 특정 진료과 혹은 지역과 무관하게 동시 다발적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한 의료진은 "최근 대학병원에서 불고 있는 사직 바람은 진료과 불문, 지역 불문 사항"이라며 큰 변화의 흐름 속에 있음을 시사했다.
■ 환자진료에 내몰리는 교수들 "이럴 바엔…"
대학병원을 떠난 의대 교수들은 환자진료에 짓눌려 연구나 학생 교육에 집중하기 어려운 의료환경을 짚었다.
일단 과거와 달리 의대교수에 대한 존경심은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병원 내에서도 시니어 교수 대접은 커녕 전공의를 모셔야 하는 실정으로 당직도 야간 콜도 당연한 업무다. 게다가 연구하고 학생 교육하는 보람과 자부심으로 교수직을 유지해왔지만 점차 진료 업무로 연구도 교육에도 주력하기 어려운 환경에 내몰리면서 "이럴 바엔 돈이나 벌자"라는 결론에 이르고 있다.
인천에 위치한 K대학병원 학장 유력후보였던 비뇨의학과 교수도 최근 비뇨기과병원 봉직의 길을 택해 동료들에게 충격을 안겨줬다. 그는 밤낮없이 수술하고 심야 온콜을 받아가면서 열정적으로 진료에 나섰던 교수인지라 동료들의 충격은 더욱 컸다.
한 동료 교수는 "의과대학 내에서도 유력한 학장 후보로 꼽히는 교수가 떠나 굉장히 놀랐다"면서 "밤낮으로 밀려드는 수술에 심야 콜까지 받으면서도 타 병·의원 대비 급여는 낮으니 자괴감이 들었을 수 있다"고 했다.
부산 Y대학병원 한 교수는 "의대교수가 존경받는 시대가 아니다. 과거에는 보람도 있고 사명감과 자부심 때문에 버텼지만 최근에는 (진료)업무가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하면서 그에 대한 스트레스가 높다. 그러니 삶의 질은 물론 금전적인 측면도 챙길 수 있는 선택지를 택하게 되는 것"이라고 전했다.
그는 이어 "50대 중후반 의대교수로서 명성이 높은 교수들이 개원을 택하는 것은 최근 이같은 의료환경에 대해 염증을 느끼던 중 차라리 남들보다 빨리 인생 2모작을 준비하자는 결론에 이른 것이라고 본다"며 "솔직히 의대교수할 맛이 안난다. 재미가 없다"고 했다.
■지방 대학병원 교수들 수도권·종병으로 떠난다
지방 대학병원 교수들은 수도권의 대학병원 혹은 종합병원으로 빠져나가고 있다. 이들의 이탈이 더 씁쓸한 이유는 단순히 급여나 안락함을 찾아 떠나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현재 의료현실에선 더이상 의과대학 교수로서의 자존감을 지킬 수 없다는 판단에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하고 있다.
지방 대학병원 교수들이 수도권 대학병원 혹은 종병으로 빠져나가는 현상도 늘고 있다.
지방 A의대교수에 따르면 수도권 환자쏠림은 어제오늘 얘기가 아니지만, 최근 들어 지방 대학병원 교수들은 연구논문을 작성하기 어려울 정도로 환자가 감소했다. 의대교수로서 SCI급 논문 발표는 필수인 요즘, 환자 사례가 턱없이 부족해서는 논문 작성이 제한적일 수 밖에 없는 실정.
A의대교수는 "환자가 많은 전문과목을 제외하고는 연구논문을 작성할 수 없는 수준으로 환자 수가 감소했다"면서 "진료가 줄면서 수당(인센티브)도 줄겠지만 그보다 논문 자격을 채울 수가 없다"고 토로했다.
■젊은의사들 "의대교수 글쎄요…개원·봉직의 할래요"
이미 자리를 잡은 의대교수의 이탈과 맞물려 젊은의사 즉, 팰로우 또한 자신의 비전을 의과대학 교수가 아닌 다른 곳에서 찾고 있다.
과거 내과 중에서도 인기가 높았던 순환기내과 사례만 보더라도 알 수 있다. 순환기내과 분과전문의는 약 10년전인 지난 2012년 당시만해도 62명 배출됐지만 2022년 42명으로 감소했다. 이중 고난이도 시술로 응급 및 당직이 많은 심혈관중재 분야 분과 전문의는 28명에 그친다. 최근 심혈관중재 분야 1세대 의료진이 은퇴 시점으로 의료공백이 예상되지만 답이 없는 실정이다.
과거 지방 대학병원이라도 의대 교수 타이틀을 위해 지방도 마다하지 않았던 것과 달리 최근에는 수도권, 종병 봉직의 혹은 개원을 택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지방 국립대병원 보직자는 "과거에는 교수자리 경쟁률이 치열했지만 최근에는 달라졌다. 팰로우 마치면 개원 혹은 봉직의 자리를 찾기 바쁘다"라며 "팰로우 조차 안하는 경향도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빅5병원 팰로우 마치고 수도권에 개원한 정형외과 원장 또한 "의대교수 이탈 현상은 수년 전부터 시작됐다. 새롭지도 놀랍지도 않을 정도"라며 달라진 세태를 전했다.
최근 병원계 의대교수 이탈 현상에 대해 충북대병원 배장환 교수(대한심혈관중재학회 보험이사)는 "급여가 낮은 것은 참는다. 사실 대학병원을 택했을 때부터 종병 봉직의 보다 급여 낮을 것이라는 것은 알고 있는 부분"이라며 "문제는 의대교수라는 자부심이 떨어졌다. 결국 이를 못 참고 떠나는 것"이라고 했다.
건양대병원 김종엽 교수 또한 "의대교수를 택했던 의사들은 급여가 종병 및 개원가 대비 낮을 것이라는 것은 이미 알고 자신의 길을 택했다. 이들의 이탈은 급여만의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