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경제팀 이지현 기자
"의대증원 사태는 결국 실손보험 때문이다. 정부가 대책을 쏟아내지만 실손보험을 둔 상태에선 결국 해결할 수 없을 것이다."
얼마 전 만난 빅5병원 보직자가 한 말이다. 그는 왜 의대증원 사태와 실손보험이 연관이 있다고 했을까.
그의 말인 즉, 이랬다.
개원시장에 실손보험이 등장하면서 '돈'이 되기 시작했고, 의사들의 수입 격차를 벌려놓으면서 계산에 밝은 일부 의사들이 개원시장에 뛰어들었다. 또 일부 병원장들은 실손보험을 적극 활용했다.
이처럼 실손보험이 '돈이 되는 의료'를 추구하는 환경을 구축하는데 역할을 하면서 결국 실손보험에 혜택과 거리가 먼 내·외·산·소 흔히 필수의료 영역의 의사들은 소외되기 시작했고 결국 극심한 의사 부족으로 이어졌다.
과거라면 그 자리를 지켰을 의사들이 실손보험 그늘 아래 혜택을 누릴 수 있는 곳으로 이동하면서 정작 필수의료에는 의사가 부족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실제로 10여년 전, 빅5병원에서 소위 잘나가는(?) 교수들의 사직이 있었다. 환자도 많고 인기도 좋았던 그 교수는 개원을 위해 어렵게 유지해왔던 의대교수직을 내려놨다. 당시만 해도 병원계가 신선한 충격이었다.
의대교수는 명예와 부를 함께 거머쥘 수 있기 때문에 그 자리를 박차고 나가는 경우가 흔치 않았다. 게다가 빅5병원 교수라는 점에서 의아해했다.
하지만 그 당시 이미 대학과 개원 및 봉직의 시장에서는 임금 격차가 벌어지고 있었고, 시장 흐름을 재빠르게 읽어낸 교수들은 그 시장에 몸을 던졌다.
실손보험의 나비효과는 현재도 진행형이다. 최근 몇년 새 수술장에서 마취를 하던 교수들은 개원시장으로 빠르게 흡수됐다. 대학병원에서 중증·난치성 환자를 진료하던 정형외과, 안과 등 인기과 교수들도 이동을 시작한 지 오래다.
그 시장에 돈이 돌면서 의사를 유치하려는 병원들 사이에서 경쟁적으로 급여 인상이 나타났다. 반대로 필수의료를 지키려는 의사는 줄면서 울며겨자먹기로 필수의료 분야 의사들의 급여도 높아졌다.
앞서 빅5병원 보직 교수가 실손보험을 손질하지 않고서는 현재의 문제를 풀 수 없다고 얘기한 것도 이 같은 이유다. 필수의료 분야 의사가 부족해진 것도, 의사들의 몸값이 천정부지로 인상된 것도 그 배경에는 '실손'이 있었다.
이 같은 의료환경에서 무작정 의사를 늘리는 게 해답일까. 정작 물은 다른 곳에서 줄줄 새고 있는데 막힌 하수구만 계속 틀어 막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다.
정부는 고령화 시대 의사부족을 이유로 의대증원을 강행하면서 최근 6~7개월 사이 의료는 빠르게 붕괴 중이다. 일부는 의대 증원이 필요할 수 있다. 하지만 정부가 입 모아 말하는 필수의료 분야 의사 부족의 '진짜' 원인부터 들춰봐야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