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약학술팀 이인복 기자
정부가 야심차게 도입한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서비스가 결국 반쪽짜리 정책으로 흘러갈 위기에 놓였다.
10월 시행을 앞두고 있지만 시행 대상 의료기관 중 서비스를 준비중인 곳이 절반도 되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금융당국에 따르면 현재까지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서비스 참여 의사를 보인 의료기관은 7725곳 중 3700여개에 불과하다. 아직 50%도 채우지 못했다는 의미가 된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이에 대한 배경은 종별 참여율에서 엿볼 수 있다.
실제로 대상 병원 중 상급종합병원의 참여율은 이미 100%를 기록했다. 종합병원의 참여율도 이미 50%를 넘어섰다. 하지만 병원급 의료기관의 참여율은 10% 미만이다.
이 수치가 의미하는 바는 단순하다. 최소한 자체적으로 전자의무기록(EMR) 등 인프라를 수정할 수 있거나 수정을 요구할 수 있는 곳은 대처가 가능했다는 의미다.
사실 이 사태는 이미 오래전부터 예고된 일이었다.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서비스 초안이 나왔을때부터 EMR 기업들은 난색을 표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들 기업에 할당된 소프트웨어 개발 비용은 불과 1200만원에 불과하다. 개발자 한명의 연봉도 되지 않는 금액이다.
병원당 설치비 또한 10만원선에 불과하다. EMR의 경우 설치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후 유지, 보수 등에 지속적으로 비용이 들어간다는 점에서 기업들은 애초부터 이 금액이 비현실적이라고 지적해 왔다.
고작 1200만원을 받고 소프트웨어를 개발해 의료기관 당 10만원을 받고 설치하고 나면 이후 유지, 보수에 들어가는 돈은 어떻게 감당하느냐는 항변이다.
결국 설치하면 할수록, 도입 의료기관이 많아지면 많아질 수록 적자폭을 예상할 수 조차 없는 상황에서 정부가 하란다고 무작정 할 수는 없는 상황에 놓인 셈이다.
하지만 정부는 이러한 항변을 철저히 무시해 왔다. 금액을 정해놓고 전방위로 압박해 굴복시키는, 의료계와 제약계에 자주 쓰던 이른바 '후려치기'를 지속해 왔다.
그 결과는 예고된 실패로 나타났다. EMR 기업 중 사업에 참여 의사를 밝힌 곳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특히 가입자 수가 많은 기업들이 여전히 미온적인 상태다. 굳이 적자를 감수하고 뛰어들 이유 자체가 없는 이유다.
그 와중에 의료계 조차도 사업에 미온적이다. 행정 부담이 느는데다 환자 민원도 무시할 수 없는 배경이다. 말 그대로 일은 일대로 늘고 환자들이 민감해 하는 보험 업무를 맡았다가 민원이 폭발할 가능성도 높은데 돌아오는 것이 없다는 뜻이다.
같은 의미로 EMR기업 입장에서는 의사도 하기 싫어하는 일을 굳이 부담을 가져가며 만들 이유가 없고 의사 입장에서는 굳이 EMR을 바꿔가며 이 일을 진행할 의지가 없다.
그렇기에 늦더라도 사업을 진행하고 싶다면 이제라도 이들의 얘기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서로 안돌겠다고 꽉 맞물려 있는 톱니를 말로 돌릴 방법은 없다. 어느 한쪽이라도 기름칠을 해서 돌려놔야 마지못해 다른 한쪽도 돌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