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원 안덕선 원장, 해외사례 예로 들며 해법 및 난관 조명
"자율규제는 전문직의 책임…나쁜 의사·의료에 개입해야"
의정 갈등 장기화로 의사의 전문성이 훼손됐다는 우려가 나오는 가운데, 이를 회복하기 위한 대책으로 의사면허에 대한 자율규제가 등장해 관심이 쏠린다.
4일 의료윤리연구회는 대한의사협회 회관에서 '의사의 프로페셔널리즘과 자율규제 총론 강의'를 진행했다. 연자로 나선 의협 의료정책연구원 안덕선 원장은 자율규제를 담당하는 전문가 주도 의사면허기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의료계 내부에서 의사의 전문성을 훼손하는 행위를 가장 잘 규제할 수 있는 것은 의사며, 이를 통한 사회적 신뢰 회복은 전문성 강화로 이어진다는 설명이다. 전문직에게 자율규제는 개인과 동료에 대한 책임인 동시에, 나쁜 의사와 나쁜 의료에 개입해 이를 방지하도록 하는 사회적 책무라는 것.
또 외부보다 집단내적 규제에 순응하는 성향을 가진 전문직의 특성을 보면, 이들을 통제하기 위해선 적절한 자주성을 부여하는 것이 적합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해외 여러 선진국에서 운용하는 의사면허기구를 조명하기도 했다. 특히 독일연방의사면허기구의 경우 경고·벌금 등 가벼운 조치에서부터 수백 수천 유로 상당의 벌금을 부과하는 할 수 있다. 이와 함께 ▲진료 감독 ▲특정 진료 제한 ▲실명 공개 ▲감측 ▲근신 ▲정기 보고 의무 부여 등의 조치와 면허정지·제한 및 영구 취소가 모두 가능하다.
세계의사회 역시 자율규제와 관련해 "의료 전문가 주도 자율규제 시스템은 의료행위의 표준에 대한 대중의 신뢰를 담보하고 유지하는데 필수적인 역할을 한다"며 "이를 위해선 전문가의 적극적인 참여가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자율규제 모델은 최고의 임상적 판단에 따라 환자를 치료할 수 있는 개별 의사의 권리를 강화하고 보장하는 환경을 제공한다"고 밝힌 바 있다.
다만 안 원장은 이 같은 면허기구들이 운영된다고 해서 의사들이 무분별하게 처벌받는 것은 아니라고 부연했다. 독일의 경우 의사면허 관련 검사 형사소추가 이뤄지는 경우는 매년 1건을 넘지 않는다.
미국·캐나다의 경우 의료의 형사처벌 이론적 가능하지만, 실제 의료형사처벌 사례를 찾기 힘들다는 것. 특히 일반인, 정부 대표 이사가 15명인 온타리오주 면허기구의 경우 관련 사례가 108년간 1건이었다.
또 캐나다 온타리오주의 경우 16명의 지역 의사, 3명의 의과대학 대표, 15명의 일반인과 정부 대표가 참여하는 면허단체를 운영하고 있는데, 결과적으로 일반인·정부 대표가 의사의 우군이 된다고 설명했다.
안 원장은 이 같은 자율규제가 전문직과 국가가 맺는 암묵적 계약이라고 설명했다. 국가는 전문직에 독점적인 면허를 부여하는 것은 전문직이 공공에 대한 질적 책임을 다하는 직업이기 때문이라는 것. 좋은 의사는 선택사항이 아닌 의무사항이라는 설명이다.
또 자율규제를 위해선 의사의 권익을 보호하는 단체인 의사회와 의료의 공공성을 보호하는 의사협회의 성격을 구분해야 가져가야 한다고 전제했다.
이와 관련 그는 "우리나라 사회보험제도는 의료 소비가 무한정 늘어나는 것을 막을 방법이 없는 등 불완전하며 기형이다"라며 "사회와 의료 간의 암묵적 계약 의사의 책무성은 환자를 치료하는 것에 대한 책임이다. 이런 윤리적인 부분을 스스로 규제하지 못했기 때문에 정부에 의한 외부적인 규제가 이뤄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현대에 와선 정부와 의료계, 환자 간에 암묵적인 계약만 있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계약이 이뤄져야 한다고 본다"며 "그래야 정부도 의료계를 자기들이 통제할 수 있는 기관보단 하나의 존중해야 할 상대로 볼 것이다. 이는 환자를 존중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강조했다.
다만 안 원장은 우리나라에 자율규제가 도입되는 것에 많은 난관이 있다고 우려했다. 역사적으로 봐도 중세 시작부터 장기간 의학이 발전해온 서양과 달리, 의학이 근대에 도입돼 발전해온 한국 사회에선 관련 전문성에 대한 이해도가 낮다는 것. 특히 유교 문화권에서 이런 전문직이 오랫동안 분화하지 않았던 것도 난점으로 꼽았다.
또 이를 인정하지 않는 관치로 의료에 사법·관료 통제가 이뤄지는 것도 의사의 전문직업성 형성을 방해한다고 지적했다. 의료제도가 정부와 의료계, 환자 간의 사회계약 형태로 있는 바람직하지만, 아직 우리나라에선 이런 사회계약에 대한 개념이 희박하다는 것.
안 원장은 이 같은 난관을 헤쳐 나가기 위해 이런 역사·문화·정치적 장애를 극복하려는 노력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자율규제로 좋은 의료를 구축하는 모습으로 사회적 신뢰를 먼저 획득해야 한다는 것. 또 의료계에도 자율규제로 공공을 보호하는 것이 곧 의사를 보호하는 것이라는 인식을 촉구했다.
그는 "전문성에서 자율적 요소들이 많이 무너진 것이 안타깝다. 의료계가 무너뜨린 게 있고 정부가 이를 비판하면서 더욱 어렵게 됐다"며 "지식인들의 역할을 비판적 사고를 수용하지 않는 것고 편법을 찾아가는 습성을 바꿔야 한다. 더욱이 실손보험 등 이차적인 이득을 노리고 의료제도를 건드리는 제3자에 의한 간섭도 계속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전문직의 역할이나 의료계와 정부 간 관계 설정이 없으니 의대 증원 같은 사태가 벌어지는 것이다. 이럴수록 의사의 전문성을 위해 우리가 더욱 독한 면을 보여줘야 한다"며 "이를 위해 별도의 공적 기관을 통한 자율규제로 문제를 예방할 기회가 있어야 한다. 잘못한 것이 있으면 의료계에서 먼저 꺼내놓고 얘기할 수 있어야 신뢰를 회복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학연·지연·혈연 등으로 의사 자율규제의 실효성에 의문이 나오는 것과 관련해선, 같은 문화권인 중국·싱가포르 및 동남아시아 사례를 들었다. 이들 국가에서도 자율규제가 제대로 작동해 우리나라라고 못할 이유는 없다는 설명이다.
이와 관련 안 원장은 "싱가포르의 경우 자율규제가 매우 까다롭고 가차 없다. 이는 홍콩도 마찬가지고 인도네시아나 태국에서도 같은 제도가 운영되며 처벌이 이뤄지는 것을 보면 우리라고 못할 이유는 없다"며 "지금은 누가 봐도 터무니없는 일들을 그냥 넘어가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문제에 우리가 개입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