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의 성공은 어떻게 만들어지나

고려의대 2학년 강지민
발행날짜: 2025-01-13 05:00:00
  • 고려대학교 의대 본과 2학년 강지민
    투비닥터 편집팀

지난 12월 3일, 윤석열 씨가 계엄령을 선포했다. 그리고 3일 뒤인 8일 금요일, 고려대학교 총학생회는 비상계엄에 대한 반대와 민주주의 수호 의지를 모으기 위해 긴급히 최고 의결 기구인 학생총회를 소집했다.

학생회칙에 따르면 학생총회의 개의 요건은 전체 학생 수의 약 1/10인 2,000명이다. 8일 오후 1시, 참여 학생 수가 기준 인원을 넘겨 무사히 개의에 성공했으나, 추운 날씨 등으로 인해 인원이 지속적으로 이탈했다.

결국 사전 논의된 안건을 모두 마무리하지 못한 채 오후 4시 총학생회장이 산회를 선언했다. 이 사실이 퍼지며 학내 커뮤니티에 "중대한 사회적 상황임에도 정족수 부족으로 총회를 마무리하지 못한 것은 부끄럽다", "학생총회를 다시 열어달라"는 의견이 잇달았다.

결국 그날 자정, 새로운 학생총회가 다시 열렸다. 영하의 날씨, 늦은 시간에도 불구하고 중앙광장에 약 2,500명의 고려대 학생이 모여 의견을 개진하고 조율하며 안건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 윤 대통령의 비상식적 계엄령에 반대하며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후속 행동을 의결했다. 꼬박 8년 만에 이룬 학생 사회의 연대와 성공이었다.
이번 학생총회의 성공적 개의는 4년 동안 학생회를 해온 필자에게 깊은 울림을 안겨주었다. 대학이 학생운동의 전당이던 시기는 저물었고, 비단 정치적 이슈뿐만 아니라 여러 사회 활동에 점점 참여하지 않는 학생들이 늘어만 갔다.

개인적으로 지금껏 학생회를 하며 가장 힘든 부분이 이 지점이었다. 필자는 대표자 자리에서 두 번의 번아웃을 겪었는데, 비단 업무가 너무 많다기보다는 어떤 사업을 해도 반응이 없고 학생들은 존재하는지도 모르는 원칙을 지키기 위해 나 혼자만 애쓰는 듯한, 무의미한 일을 하는 듯한 기분 때문이었다.

학생들의 참여와 적극적인 의견 개진을 기대하고 실망하는 과정이 반복되며 점점 열정은 사그라들었고, 그때그때 해야 하는 일만 기계적으로 해내는 사람이 되었다. 금번의 총회 역시 촉박한 시간 속에서도 열심히 준비했지만, 그 노력과는 별개로 4시에 산회 되었을 때 개인적으로는 크게 놀랍지 않았다.

애초에 수많은 개인 사정이 있을 2,000명이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그 자리에 쭉 있을 거라 기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 하나 빠져도 괜찮겠지, 라는 생각은 대의보다는 가깝고 간편하니 말이다.

총회가 다시 열릴 리도 없고, 설령 다시 열린다 해도 더 가혹해진 조건 탓에 2,000명이 올 리는 없다고 판단해 큰 감흥 없이 식사를 하러 나갔다. 그러나 밥을 먹던 사이, 중앙집행위원회는 지속적으로 학생총회의 재개의를 강하게 요구했고 그 주장을 관철하는 데 성공했다. 그렇게 아닌 밤중에, 속속들이 학생들이 모이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급하게 학교로 다시 발걸음을 돌렸다.

겨우 몇 시간 뒤 다시 오게 된, 학우들로 가득 찬 광장은 필자에게 감동을 넘어, 지금껏 학우들을 지나치게 염세적으로 바라본 것에 대한 약간의 부끄러움까지 안겨주었다. 단순히 2,500명이라는 숫자가 모인 것에 그치지 않고, 유의미한 의견 공유까지 오갔다.

총회에서 다룰 안건에 대해 논의하는 회의에서도 학생들이 그다지 의견을 내지 않을 것으로 생각해 명확한 행동 방향성을 설정해 두고, 이 방향성에 대한 학생들의 동의 여부만 물어보는 것을 주장했던 나였다. 총학생회는 끝까지 다양한 아이디어를 받자는 의견을 고집했고, 결국 총학생회가 옳았다.

최소한 그때 그 광장에 있던 사람들은 민주적 절차에 따라 서로를 존중하며 무언가, 정말 의미 있는 무언가를 해냈다. 학생 사회가 오랜 시간 잃어버린 '함께한다는 것'의 가치를 되찾은 순간이었다. 그냥 '하면 된다'는 것이었다.

고려대 학생들은 이번에 크나큰 성공의 경험을 공유하게 되었다. 기존에는 나 하나의 행동으로 변화가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면, 이제는 그저 '하면 된다'는 확신이 심어졌다. 공동의 성공, 공동의 성취는 또 다른 연대와 행동의 가능성을 열어준다.

<part 2>

올해의 윤석열 씨 탄핵 집회 역시 시민 사회가 공유하는 성공의 경험이, 새로운 연대로 이어진 케이스이다. 2016년 촛불혁명은 당시 시민들에게 '우리의 행동이 변화를 만든다'는 강렬한 경험을 심어주었다.

당시 시민들은 정치적 무관심을 깨고, 스스로가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주체로서 행동을 통해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음을 강력히 체감했다. 수백만 개의 촛불은 추운 겨울밤을 밝혔고, 궁극적으로 결국 헌법재판소의 탄핵안 인용이라는 역사적 결과로 이어졌다.

이 성공은 단순히 한 차례의 정치적 변화를 이끈 데 그치지 않았다. 촛불혁명은 행동의 경험을 공유하는 집단 기억으로 자리 잡았고, 이는 2024년, 비상계엄이라는 위기 속에서도 사회적 동력으로 작용했다.

이번 사태에서도 시민들은 빠르게, 그리고 열정적으로 거리로 나섰다. 수많은 사람이 국회와 여의도, 더 나아가 광화문을 가득 메웠으며, 그 과정은 마치 정교한 조직력과 함께 하나의 유기체처럼 움직였다.

물론 이번 연대가 이렇게 신속히 이루어진 데에는 사안의 엄중함과 계엄령이라는 위기감이 작용했다. 하지만 이는 단순히 위기의식만으로 설명될 수 없다. 2016년 촛불혁명이 심어준 '행동의 성공 경험'이 바탕이 되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함께한다면 무언가를 바꿔낼 수 있다는 것을 경험했다. 이 경험이 있었기에, "이번에도 우리가 해낼 수 있다"는 믿음이 자연스럽게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

더불어 이번 탄핵 집회는 과거와 달리 세대 간 조화를 이루며 발전된 모습을 보였다. 기존 시위의 중심이었던 50대 이상 기성세대는 안정감을 더했고, 2030세대는 창의적이고 열정적인 방식으로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었다.

특히, 집회 현장에서 자리 잡은 '선결제 문화'는 따스한 연대의 새로운 형태로 주목받았다. 시민들이 상점에서 음료와 간식을 미리 결제해 두어, 참여자들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는 단순히 물질적 지원을 넘어 공동체로서 행동한다는 의미를 전달하며 연대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결국, 2016년의 촛불은 단순한 한 번의 혁명이 아니라,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사회적 동력의 기초로 기능했다. 과거의 성공 경험은 현재의 연대를 이끌었고, 더 큰 확신과 사회적 성취를 가능케 했다.
'해도 될지 모른다'와 '하면 된다' 사이의 간극은 크다. 개인의 사소한 일조차도 이 간극을 뛰어넘기가 쉽지 않다. 하물며 연대와 협력을 요구하는 사회적 사안에서는 '나 하나 한다고 뭐가 될까?'라는 생각이 더 큰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성공의 경험은 이 간극을 좁히는 다리가 된다. 성공은 확신을 낳고, 확신은 연대를 이끌며, 연대는 또 다른 성공을 만들어낸다. 이러한 선순환은 일종의 양성 피드백처럼 사회를 움직이는 동력이 된다.

올해는 유달리 쓰리고 아픈 소식이 많은 연말이다. 우리 사회를 지탱하던 기본적인 이념과 시스템이 흔들리고 그저 물질적인 가치와 혐오, 갈등만이 고조되는 나날이다. 그럼에도 보이지 않는, 무형의 가치를 지키려는 연대와 공동체의 노력이 한 줄기 희망으로 자리하고 있다.

이번 학생총회와 시민 행동은 이러한 공동체 의식이 여전히 살아 있음을 보여주고 있으며, 더 나아가 또다시 닥칠 수 있는 어려움에도 굳건히 대응할 수 있는 기반으로 작용할 것이다. 우리는 함께 행동할 때 성공할 수 있고, 이 경험은 더 나은 사회를 향한 연대와 확신의 불씨로 기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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