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갈등 1년 정중동 변화가 무서운 이유

발행날짜: 2025-01-13 05:00:00
  • 의약학술팀 최선 기자

의-정 갈등으로 인한 전공의 집단 사직 사태가 내달이면 1년째다. 우려했던 대란까지는 아니지만 미묘한 변화가 관찰되고 있다. 가장 우려스러운 건 그 변화의 폭을 실감하기 어렵다는 데 있다.

남아있는 의료 인력이 전공의의 빈 자리를 메꾸면서 수술이 지연되거나 감소하고 있다. 여기까지는 불편함으로 와 닿을 수 있고 환자들이 직접 느낄 수 있는 표면적인 변화다.

3일에 한번 꼴로 돌아오는 당직 일정 상 연구에 할애할 시간이 없어졌다는 볼멘소리가 부쩍 커지고 있다. 정작 이런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이 없다는 게 불안감의 발로다.

물리적인 연구 시간이 줄어들면서 실제 투고 논문량이 감소했다는 보고가 속속 나온다. 주요 의학 학술지들의 발간 일정이 지연되거나 일부 멈춰선 저널도 관찰된다.

문제는 "그래서 어쩌라고?"라는 물음 앞에 적절한 대답을 내놓기 어렵다는 데 있다. 의-정 갈등의 엄중한 상황에서 "그 정도는 감수할 만한 일 아니야?"라거나 "어쨌든 병원은 돌아가지 않느냐?"라고 인식하는 사람들이 많다면, 사태는 장기화되고 결국 누적된 영향이 일종의 사건이나 현상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기자로서 느끼는 우려감은 사실 기시감이다. 한때 반도체 제국으로 불렸던 인텔의 최근 몰락 사례를 보면서, 삼성의 HBM 기술 투자 실기를 보면서 의-정 갈등 속의 실감되지 않는 변화와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인텔은 나노 공정 미세화 기술 개발에서 경쟁사보다 뒤처지는 실수를 범하며 AMD에게 시장 점유율을 빼앗겼다. 시장 1위 타이틀에 취해 공정 미세화에 소홀한 결과 뒷덜미를 잡혔다. 삼성전자 역시 HBM 반도체 기술이 수익성이 낮다는 판단 아래 소극적 투자로 일관하다가 만년 2등 SK하이닉스에 주도권을 내줬다.

변화의 흐름을 간과하고 적시에 필요한 결정을 내리지 못해 부침을 겪은 다양한 기업과 국가의 사례를 익히 들어 알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한국 의료계와 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를 둘러싼 갈등은 단순한 내부 문제가 아니라 국가 경쟁력에 직결된다는 점을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연구와 교육에 할애할 시간이 부족해지면 당장 느끼지 못할 뿐 유무형의 변화를 초래한다. 진료 차질을 막으려고 인력을 갈아넣는 방식으로 대응하는 건 언발에 오줌누기다. 이는 신약 개발을 위한 임상 연구 감소 및 인재 양성의 차질로 이어진다. 연구 공백은 신의료기술, 각종 술기, 의료 장비 개발의 공백을 초래한다. 초기의 변화를 느끼지 못해 현실에 안주했던 인텔과 삼성처럼, 변화의 누적은 감당하기 어려운 스노우볼로 굴러온다.

인텔이 몰락해도 소비자는 큰 타격이 없었지만 의료는 그렇지 않다. 경쟁사를 제품을 선택하면 그만인 상품경제와 달리 한국 의료의 몰락 땐 국민(소비자)이 선택할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최근 만난 의학 저널 편집장은 한국 의료를 두고 "망했다"고 표현했다. 1년이 뒤쳐지면 10년이 뒤쳐진다는 걸 정부만 모른다고 했다. 의-정 갈등 1년. 임상-연구-개발-적용-보완-활용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의 붕괴 초입에 들어섰다. 당장 체감할만한 변화는 없다. 그래서 정중동의 변화가 더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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