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연 이슈브리핑 발간…가치기반의료 적합성 진단
"조건 미흡…제도 개편 목적·방향을 명확히 해야"
정부가 성과기반 보상 지불제도의 개편 방향을 제시한 가운데, 이 제도가 우리나라에 안착하기엔 핵심 전제 조건들이 미흡하다는 의료계 지적이 나온다.
16일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원은 '미국의 가치기반의료(Value-based Health Care), 우리나라에 적합한가' 이슈브리핑을 발간했다.

앞서 정부는 지난 3월 의료개혁 2차 실행방안에서 필수의료의 가치와 시급성을 반영하기 위해 성과기반보상 지불제도를 개편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바 있다.
미국과 우리나라의 수가 구조 차이를 분석한 이번 연구는 가치기반지불제도의 국내 도입 필요성과 한계를 진단하고 이를 위해 미국 사례를 비교했다.
미국에서 가치기반의료 개념을 처음 제안한 마이클 포터 교수는 의료의 목표가 환자에게 높은 가치를 제공하는 데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이 가치는 환자의 건강결과 개선을 위해 사용된 비용으로 측정되어야 한다는 판단이다. 접근성이나 서비스 양보다 환자의 실질적 건강 회복과 삶의 질 향상이 의료성과의 평가 기준이라는 점도 강조된다.
치료 전 과정을 기준으로 시간과 자원의 실제 사용량을 측정해 비용을 산정해야 하며 이를 위해 의료과정 전반의 체계적 분석이 필요하다는 제언이다.
미국에서 가치기반지불제가 도입된 또 다른 배경에는 메디케어의 기존 보상제도였던 지속가능성장률 제도의 구조적 한계가 있었다는 설명도 있었다.
SGR은 지출 규모를 조정하는 방식이 반복적으로 적용되면서 정책적 불안정을 야기했고 이에 따라 성과연동형 인센티브 중심의 새로운 보상체계로 전환됐다는 것.
의정연은 미국의 수가 구조 및 보상체계를 이해하는 것이 가치기반지불제의 국내 적용 타당성을 판단하는 데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미국은 행위별수가제와 상대가치제도를 운영하면서도 병원비용과 의사비용이 분리된 구조로 개방형 병원시스템과 주치의 개념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에 따라 병원 단위의 묶음지불제나 진료 의사를 대상으로 하는 가치기반 지불제를 정교하게 설계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돼 있다는 것.
반면 우리나라는 가치기반의료 실현을 위한 핵심 전제 조건들이 미흡하다는 분석이다. 포터 교수가 제시한 '치료 전 과정에 소요되는 시간 및 자원 사용의 실제 비용 측정'과 '치료과정의 체계적 분석'이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이다. 현재 혼합형으로 운영 중인 수가체계 또한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어 제도적 기반이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의정연은 가치기반의료 도입 논의에 앞서 국내 의료 환경과 제도적 여건을 면밀히 점검하고 정부가 추진하는 지불제도 개편의 목적과 방향을 명확히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의정연은 "건강성과와 의료서비스 질 향상을 추구하려는 정책적 의도는 이해된다"며 "하지만 가치기반 지불제 개편의 목적이 전체 의료비 절감을 위한 것인지 특정 분야 지출을 축소해 필수의료에 예산을 집중하려는 것인지 정책 방향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미국에서도 다양한 대체지불제도 모형이 도입되었으나 의료서비스 질 개선이라는 목표에 비해 충분한 보상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비판이 있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 정부는 대규모 재정을 투입해 의료제공자들이 다양한 서비스 제공 모델을 직접 설계하고 시험할 수 있도록 지원한 점은 주목할 만하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