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동완 병원장 "공공의료, 의료 전달체계에 탑승해야" 당부
"심혈관센터 운영시 의료 사각지대 돕겠다" 필요성 거듭 강조
120년 역사의 대한적십자사 적십자병원은 서대문역 인근, 서울 도심에 위치했다. 이 병원을 찾는 환자들은 강북삼성병원, 세브란스병원 같은 인근 대형병원에 갈 수 없는 사람들이다.
"70-90대 고령에 독거하시는 분들은 우리 같은 병원이 안 도와주면 상당히 곤경에 처할 수 있는 환자분들입니다."
2022년 9월 분당서울대병원에서 은퇴 후 적십자병원장으로 제2의 인생을 시작한 채동완 병원장(신장내과 전문의)은 지난 21일 인터뷰에서 적십자병원의 역할을 이렇게 정의했다.

병실가동률 40%→70%..."죽어가던 병원이 살아났다"
채 원장이 부임했을 당시 병원은 월 30억 매출에 연 200억 가까운 적자상황이었다. 병실 가동률은 40% 수준까지 떨어진 상태였다. 코로나 보상금으로 버티던 상황이었고, 직원 급여가 지연되기도 할 정도로 경영난이 극심했다.
하지만 1년 6개월 만에 병원은 극적으로 변했다. 병실 가동률이 70%로 올랐고, 적자는 30~40억원 미만으로 줄었다.
여기까지 가능했던 배경에는 채 원장의 파격 경영이 있었다. 그는 병원장직을 맡고, 각 진료과 과장들과의 면담을 통해 응급실 시스템 개선하기 시작했다. 이와 함께 의사 인센티브를 활성화했다.
"응급실 환자를 최대한 수용하는 방향으로 전환하고 환자진료에 적극 나서는 만큼 그에 합당한 인센티브를 적용했어요. 열심히 진료하는 과장 중에는 인센티브만 월 1000만원 받는 경우도 있답니다."
채 병원장의 판단은 적중했다. 의사들에게 확실한 동기부여를 주면서 병실 가동률이 70%로 껑충 뛰어 올랐으며 200억원에 달했던 적자는 30억~40억원으로 줄었다.
심혈관센터 무산, "가장 큰 타격"
채 원장이 가장 아쉬워하는 것은 최근 무산된 심혈관센터 구축 계획이다. 복지부에 장비 신청을 했고, 국립중앙의료원(NMC) 1차 심사에서 1순위로 통과했지만, 최종 외부 심사위원들의 반대로 좌절됐다.
"주변에 3차 병원이 많은데 적십자병원이 심혈관센터를 운영할 이유가 있느냐, 전원을 보내면 된다는 반대 의견이 지배적이었죠. 심지어 '적십자병원 환자들이 비급여를 낼 수 있겠느냐'는 의견까지 나오면서 무산됐어요."
하지만 채 원장의 눈에는 서울적십자병원은 반드시 심혈관센터가 필요해 보였다. 그에 따르면 응급실 내원 환자 50명 중 25명은 진료역량 부족으로 발길을 돌려야한다. 특히 70대 이상 고령 환자가 대부분인데, 신장내과 환자의 70%가 심혈관 문제로 사망하는 상황에서 심혈관센터가 없다는 것은 치명적이다.
"일선 대학병원은 신장 조직검사 중 출혈이 생기면, 인터벤션으로 혈관을 막아 간단히 해결하지만, 우리는 인프라가 갖춰져 있지 않다보니 한계가 있어요." 심혈관센터를 오픈하면 영입할 의료진까지 점찍어뒀지만 물거품이 됐다.
채 원장은 '의료 취약지역'이라는 기준 자체가 잘못됐다고 지적한다.
"지방에 위치한 공공병원의 경우 100억을 투자해 연간 10명을 도울 기회가 있다면, 서울적십자병원은 1000명을 도울 수 있어요. 표면적으로 '의료공급이 충분한 곳을 왜 지원하느냐고 하지만 오히려 빈부격차와 의료접근성 격차가 극심하죠."
그럼에도 채 원장은 자신감을 잃지 않았다. 특별한 후원도 있었다. 70대 개인이 10억원을 기부했는데, 젊었을 때 적십자의 도움을 받은 것에 감사해서였다. 미국 주식과 비트코인으로 재산을 모은 이 후원자는 비트코인 1개(약 1억 6000만원)를 직접 전달하기도 했다.
"무조건 환자에게 쓰라는 조건이었습니다. 시설에 투자하면 병원 자산만 늘리는 거니까요."
채 원장의 계획은 명확하다. 심혈관센터를 재신청하고, 산부인과·소아과·비뇨기과를 활성화하며, 로봇 수술을 도입하는 것이다.
"타 국가 대사관에서 주한 동포를 위해 소청과 진료 제휴를 요청했지만, 의사가 없어 거절할 수 밖에 없었어요. 수요는 분명히 있어요. 필수의료를 책임지는 산부인과, 소청과 외래진료가 어렵다는 것은 말이 안되죠."
그는 정부가 3~5년 300억~500억원을 지원하면 이후로는 정부의 재정적 지원 없이 경영을 이어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감을 피력하기도 했다.
일주일에 8세션 외래, 입원환자 10명...병원장의 헌신
채 원장은 병원장이면서도 일주일에 8세션 외래 진료를 보고, 입원환자 10명 이상을 담당한다. 병원 내 진료 수입 랭킹 2위다. 월요일은 병원장으로서의 역할에 충실하고 나머지는 거의 매일 진료한다.
그의 목소리에는 절박함이 묻어났다. "120년 된 이 병원이 문 닫아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계속 발전해야 할 이유는 너무 많아요. 제가 봤을 때 이 병원은 공공의료의 아주 좋은 모델입니다. 정책 담당자들이 탁상공론으로 접근하면, 이런 병원들이 사라지는 겁니다."
채 병원장은 공공의료의 정의에 대해 '좋은 의료전달체계에 탑승하지 못한 분들이 잘 탑승하도록 돕는 것이 공공의료라고 거듭 자신의 소신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