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승준 변호사(BHSN 대표)

폐업한 병원의 진료기록 이전의 문제 – 의료법 개정과 휴·폐업 의료기관 진료기록보관시스템
병원의 폐업을 결정하는 순간, 많은 개설자들은 병원 문을 닫는 것으로 모든 법적·행정적 책임에서 벗어날 수 있기를 기대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남아 있는 임대차기간에 따른 계약 해지와 원상복구 공사의 문제, 리스 계약이 잔존하는 의료기기의 처리, 직원들의 퇴직금 정산 등 실무적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가 끝도 없이 이어진다.
이 가운데 특히 간과하기 쉬우면서도 법적으로 중요한 부분이 바로 진료기록의 보존과 이관이다. 많은 개설자들이 “진료기록을 직접 보관해도 되는지”, “다음 개업 의사에게 인계해도 되는지”, “혹은 폐기할 수는 없는지”를 고민하지만, 의료법은 이 문제에 대해 명확한 원칙을 두고 있다.
의료법 제40조 제1항은 “의료기관이 폐업하거나 휴업한 때에는 개설자가 진료기록부 및 진료에 관한 기록을 관할 보건소장에게 이관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원칙적으로 폐업 후 진료기록은 개설자가 보관하거나 임의로 처분할 수 없으며, 반드시 관할 보건소에 이관해야 한다.
진료기록을 제3자에게 이전할 수 있는지
이처럼 법령상 폐업한 의료기관의 진료기록은 관할 보건소로의 일괄 이관이 원칙이다. 그러나 실제 행정 현장에서는 이 원칙의 이행이 결코 쉽지 않았다. 각 지역 보건소는 방대한 양의 진료기록부를 수용할 물리적 공간이 턱없이 부족했고, 이를 전담할 인력 역시 제한적이었다. 결과적으로 대규모 진료기록을 공적으로 인수·보관하는 것은 행정상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경우가 많았다.
이러한 현실적 제약과 행정 부담을 반영하여, 의료법령은 예외적 절차를 허용하고 있다. 바로 의료법 시행규칙 제30조의4가 그것으로, 개설자가 폐업 신고 시 ‘진료기록 보관계획서’를 제출하고 보건소장의 허가를 받아 직접 기록을 보관할 수 있는 제도를 명시하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제도의 본래 취지가 ‘예외’임에도 불구하고 실제 현장에서는 이 방식이 ‘일반적 관행’으로 자리 잡았다는 것이다. 상당수 지자체가 행정 효율성과 보관의 안정성을 이유로 직접 보관을 오히려 권장하였고, 결과적으로 전국의 휴·폐업 의료기관 중 약 85% 이상이 이 방식을 택해왔다.
의료법 시행규칙 제30조의4(진료기록부 등의 보관계획서 등) 1. 진료기록부등의 종류별 수량 및 목록 2. 진료기록부등에 대한 체계적이고 안전한 보관계획에 관한 서류 3. 전자의무기록을 작성ㆍ보관한 의료기관 개설자의 경우에는 제16조제1항제1호부터 제6호까지의 규정에 해당하는 시설 및 장비를 보유하였음을 증명하는 서류. 다만, 법 제40조의3에 따른 진료기록보관시스템을 통하여 진료기록부등을 직접 보관하려는 경우에는 제출을 생략할 수 있다. |
#진료기록보관시스템에 대해서는 후술
진료기록의 이전 - 양수도 상황에서의 유연한 해석
의료법 시행규칙상 개설자가 폐업 후에도 일정한 요건 하에 직접 진료기록을 보관할 수 있도록 한 조항은, 의료기관의 양수도상황에서 진료기록의 합법적 이관을 가능하게 하는 중요한 근거로 작용해왔다.
예컨대 폐업 의사(양도인)와 새로 개설하는 의사(양수인)가 사전에 협의하여, 양수인을 새로운 기록 보관 책임자로 지정하고 관할 보건소장의 허가를 득한 경우, 기존 환자들의 진료기록을 동일 장소에서 계속 보관할 수 있다. 이 경우 환자들은 동일한 장소의 새로운 병원에서 과거의 진료 이력을 바탕으로 진료의 연속성을 보장받을 수 있다.
더 나아가, 폐업한 A 의료기관의 진료기록을 지리적으로 다른 지역의 B 의료기관으로 이전하는 형태도 실무상 허용되어 왔다. 이는 법령이 진료기록의 ‘보관 장소’를 특정하지 않고, 단지 “보건소장의 허가를 받은 안전한 장소”로만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유연한 해석 덕분에, 환자 정보 보호와 행정 효율성을 모두 고려한 다양한 형태의 기록 이전이 가능해졌다.
다만, 이러한 제도의 허점을 악용하여 폐업 의료기관의 환자 차트를 매매하거나, 진료기록을 상업적으로 유통하는 행위가 일부 발생하기도 했다. 이는 명백히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에 해당하며, 환자의 개인정보를 거래 대상으로 삼는 행위는 어떠한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폐업한 병원의 진료기록을 원장의 개인 주거지에 방치하는 것보다, 인근 의료기관이나 관리체계가 갖추어진 보관시설에 이전하여 관리하는 것이 훨씬 합리적이다. 간단한 안내 절차를 병행한다면 환자 입장에서도 진료의 연속성이 확보되고, 행정기관 입장에서도 관리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
결국, 보건소의 허가를 전제로 한 제3장소(인근 병원, 전문 보관시설 등) 보관 제도는, 환자의 진료기록 보호와 행정 현실 간의 균형을 맞추기 위한 불가피한 제도적 타협으로 이해된다.
'휴·폐업 의료기관 진료기록보관시스템'의 등장
기존의 '개설자 직접 보관' 및 유연한 '이전' 관행은 환자의 기록 접근성을 저해하고, 정보 보호의 취약성을 내포하는 문제점을 야기했다. 이를 해소하고 공적 관리 체계를 확립하기 위하여, 보건복지부와 한국보건의료정보원은 ‘휴·폐업 의료기관 진료기록보관시스템'을 구축하였으며, 2025년 7월 21일 정식 서비스를 개시하였다.
이 시스템은 폐업 의료기관의 전자의무기록(EMR)을 국가 중앙 서버(국가정보자원관리원 내)로 자동 이관하는 플랫폼이다. 데이터는 국가가 직접 안전하게 관리함으로써 '진료기록 관리의 공공화'라는 역사적 전환점을 이룬다. 환자는 더 이상 폐업 의사나 보건소를 찾아야 하는 불편함 없이, 온라인 포털을 통해 자신의 진료기록을 용이하게 열람 및 발급받을 수 있게 되었다.
시스템을 통한 전자 이관 절차는 의료법 개정(제40조, 제40조의2, 제40조의3 신설) 및 관련 고시를 통해 명확히 제도화되었다. 이 절차를 따르면, 의료기관은 EMR 연계를 통해 중앙 서버로 기록을 자동 업로드하고 보건소의 승인을 거쳐 '중앙보관 완료' 상태로 전환되며, 이는 법정 이관 의무를 모두 이행한 것으로 간주된다.
보건복지부 고시 「휴·폐업 의료기관의 진료기록 이관 및 진료기록보관시스템 운영에 관한 고시」(2025-120호/524호) 및 휴·폐업 의료기관 진료기록보관시스템(chmr.mohw.go.kr)을 통해 자세한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폐업을 앞둔 의료기관 개설자는 시스템 이용 절차와 이관 요건을 반드시 숙지할 필요가 있다.
다만, 진료기록보관시스템의 도입 이후에도 의료법은 여전히 예외를 인정한다. 즉, 의료법 제40조의2 제1항 단서에 따르면, 개설자가 폐업 신고 시 ‘진료기록부 등의 보관계획서’를 제출하여 보건소장의 허가를 받은 경우, 여전히 진료기록을 직접 보관할 수 있다. 따라서 시스템이 도입되었다 하더라도, 일정 요건을 충족하면 폐업 병원 원장이 직접 차트를 보관하는 방식도 여전히 가능한 것으로 해석된다.
향후에는 전자 시스템을 통한 중앙 이관이 표준으로 정착될 것으로 보이지만, 소규모 의원급 의료기관이나 종이 차트 중심의 병원에서는 한동안 직접 보관 방식이 현실적인 선택지로 남을 가능성이 높다. 결국 이번 제도 개편은 ‘기록의 국가적 관리’라는 공익적 목표를 강화하는 동시에, 의료현장의 현실적 여건을 완전히 배제하지 않는 과도기의 절충안으로 평가할 수 있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