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국대학교 의대 본과 3학년 박정은

한 달 전, 유튜브를 둘러보다 "우리는 왜 번거로운 사랑과 우정을 해야 할까?"라는 제목의 영상을 발견했다. 좋아하는 에세이스트 이슬아의 강연이라 눈길이 갔고, 왠지 모르게 제목에 공감돼 재생목록에 저장해 두었다. 그리고 며칠 전 '나중에 볼 영상' 목록을 뒤적이다 마침내 영상을 보게 되었다.
해당 영상은 국내 유수의 IT 기업 네이버에서 열린 이슬아 작가의 강연을 녹화한 것이었다. 요즘 같은 대(大)효율 시대에 예측 불가능하고, 생산성을 떨어뜨릴 가능성이 다분하고, 시간을 비효율적으로 쓰게 하는 우정과 사랑을 우리가 왜 지속해야 하는지에 대한 물음으로 강연은 시작됐다. 혼자 먹는 저녁상이 적적해 배경음악 같은 용도로 튼 영상이었지만 어느 시점부터 나는 손을 움직이는 걸 잊고서 온 청각을 그녀의 차분한 어조에 집중하게 됐다.
최근 학교로 복귀해 병원 실습을 시작한 나는 묘한 불만족을 느끼고 있었다. 처음에는 휴학 기간에 주어졌던 달큰한 자유(독서, 프로젝트 등 하고 싶은 다른 일을 할 자유)를 빼앗겨 생긴 불만족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자유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온종일 바쁘게 움직였다.
조원들과 함께 점심 먹는 대신 도시락을 싸 다니며 시간을 아껴 학교 공부와 과제를 해결했고, 삼삼오오 카페에 갈 때 병원 컴퓨터 앞에 앉아 환자 기록을 훑었다. 조금이라도 더 배워두고, 집에 가서는 다른 할 일을 할 시간을 벌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하루를 오직 "최고 효율"로 채우며 시간을 벌었지만 마음 한구석 불쾌감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리고 어느 순간 내가 지금 행복하지 않다는 자각이 명징하게 들었다. 황폐한 사막을 혼자 달리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런 내 상태에서 우연히 보게 된 이슬아 작가의 강연이었기에 더 와닿았다. 이슬아 작가는 "우정은 참 피로한데 재미가 있다"고 말했다. 친구를 사귀고 사랑을 주고받는 일은 때론 우리를 지치게 하고 비효율적으로 보이지만, 그 피로함 속에 인간관계만의 즐거움과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작가는 또 "만약 기쁨과 슬픔, 사랑스러움과 지겨움의 극적인 낙차가 없다면 우리를 웃고 울리는 이야기는 시작되지 않았을 것"이라고도 했다. 관계에서 비롯되는 예측 불가능한 감정의 롤러코스터야말로 삶을 풍요롭게 하는 원동력이라는 뜻이다. 나는 그제서야 내가 느끼던 불만족의 정체를 깨달았다. 효율을 좇느라 인간관계가 주는 즐거움과 색깔을 스스로 차단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깨달음은 묵직한 충격을 줬다. 일보다 사람을 우선시하며 타인의 무작위성이 불러올 혼란을 기피해 스스로 마음의 문을 닫아걸은 꼴이었다. 결국 나는 얼마 전부터 효율을 포기하고 의식적으로 비효율을 실천 중이다.
목적 없이 동기들과 보내는 시간 늘리기, 바쁘다는 핑계로 미뤄왔던 지인들 만나기, 시시콜콜한 카톡에 답장 바로 하기, 고민하고 글쓰는 시간 갖기. 그 언젠가 나도 숨 쉬듯 자연스럽게 해냈던 일들이나, 효율 최우선주의에 굴종한 뒤로 재활이 필요할 만큼 낯설고 버거워진 활동들이다. 오랜만에 마주한 느슨한 대화와 나눔 속에서 익숙한 소속감과 생기가 서서히 되살아났다. 마음 속 한켠에서 '이거지!'라는 외침을 얼핏 들은 것 같기도 하고.
사람들과 얽혀 살아간다는 것은 곧 예측 불가능한 순간들의 연속 속에 놓인다는 뜻일 테다. 뜻밖의 요구에 시간을 내주고, 예상치 못한 감정에 함께 휘말리기도 하면서 우리는 비로소 공동체의 일부가 된다. 누군가를 깊이 이해할 때 생기는 무게감, 버려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 그 불규칙함과 무게를 견디기 버거울 때가 있어도 진폭이 지나간 자리에야 비로소 관계라는 것이 자리를 잡는다.
문득 시골 마을의 풍경이 떠올랐다. 정자나무 아래 평상에 둘러앉아 한나절을 도란도란 보내던 마을 어르신들의 모습. 겉보기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느린 시간처럼 보이지만, 그들은 아마 그 속에서 가장 깊은 유대와 온기를 나누고 있었으리라.
세상은 여전히 효율을 외치고, 나는 여전히 그리고 오래도록 효율과 비효율 사이 요동치는 균형을 조율하느라 끝없이 고민하며 살아갈 것이다. 하지만 타인의 불편한 감촉이야말로 삶에 꼭 필요한 것임을 이제는 안다. 그 가르침 덕분에 나는 조금은 더 성숙해지고, 삶의 본질에 가까이 다가가고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이 서툰 삶을 하나씩 눈뜨며 배워가는 과정이야말로, 결국 삶의 즐거움이자, 매일 갱신되는 삶의 퀘스트 아닐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