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브란스병원 한석주 전 교수(현 서울고등법원 상임전문심리위원)
"40년 동안 5명 본 환자 수가 1000배 인상…아이들 장난 수준"
[메디칼타임즈=임수민 기자] "소아 수가 1000배 인상이라는 화려한 자막 뒤에는 40년 외과 의사도 평생 5번 보기 힘든 조건이 숨어 있었다. 의료의 본질을 외면하고 뉴스 거리만 만들려 하는 이런 정책은 대국민 사기극이나 다름없다."
40년간 세브란스병원 소아외과 현장에서 사투를 벌여온 '필수의료의 산증인' 한석주 전 교수는 최근 메디칼타임즈와 만나 정부가 추진하는 의료정책에 대해 "본질을 외면한 대국민 사기극에 가까운 쇼"라고 비판했다.

지난해 2월 정든 교정을 떠난 한 전 교수는 최근 40년 외과 의사 인생의 피땀 눈물을 기록한 회고록 '최고의 수술'을 출간하며, 의료 현장의 기록자이자 조언자로서 쉼 없는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그는 이번 인터뷰를 통해 전문가의 시각에서 정부가 강조하는 '필수의료 수가 인상'의 허실을 조목조목 짚었다.
지난 정부는 의료개혁의 일환으로 의대 증원과 필수의료 수가 인상, 상급종합병원 구조 전환 등을 통해 의료전달체계 정상화를 이루겠다고 강조해 왔다.
그는 "정부에서 소아 수가를 1000배 올렸다고 발표했을 때 굉장히 놀랐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허구에 가까웠다"며 "인상 조건이 '600g 미만 초극소 저체중아 수술'에만 한정됐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지난 40년 동안 소아외과 의사로 살면서 600g 미만 아이를 수술한 사례는 다섯 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라며 "뉴스 자막은 '1000배 인상'만 강조하고 실제 대상이 누구인지는 쏙 뺐는데, 이것이 정책인지 뉴스를 위한 쇼인지 의문"이라고 비판했다.
그의 이러한 분노는 현장의 고충을 외면한 정책의 '비현실성'에 닿아 있다. 한 전 교수는 과거 소아외과 보험이사 시절, 800g 아이에게 정맥 주사 하나를 놓기 위해 의료진 10여 명이 밤새 매달려도 수가가 고작 2000원(어른과 동일) 수준이었던 현실을 바꾸려 '소아 가산' 개념을 처음 도입한 인물이다.
한 전 교수는 "현장 상황은 전혀 모른 채 그저 뉴스 거리만 만드려 정책을 펴고 있다"며 "본질은 외면한 채 생색내기식 정책만 추진하는 것은 그야말로 '아이들 장난'이나 다름없다"고 일갈했다.
나아가 '의대 정원 확대'와 '지역의사제'에 대해서도 신랄한 비판을 이어갔다.
한 전 교수는 "지역의사제가 성공하려면 먼저 '지역 환자'부터 있어야 한다"며 "KTX만 타면 전국 어디서든 서울 대형병원으로 직행할 수 있는 환경에서 의사만 지역에 묶어둔다고 환자가 거길 가겠나"라고 짚었다.
그는 "영국이나 캐나다처럼 환자의 이동권을 제한하는 강력한 의료 전달 체계 개편이 전제되지 않는다면, 지역의사제는 불필요한 의사만 양산해 국가적 불행을 초래할 뿐"이라고 경고했다.

■ "의사 특권 계급 아냐…형사처벌 면제보다 '소통'이 우선"
병원을 떠난 한 전 교수는 현재 서울고등법원 상임전문심리위원으로 활동하며 매달 수십 건의 의료 소송 자문을 맡고 있다.
메스 대신 법전을 가까이하며 의료 현장과 법의 간극을 지켜보고 있는 그는, 의료계가 요구하는 '필수의료 사고 형사처벌 면제'에 대해 단호한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한 교수는 "의사가 흰 가운을 입었다고 해서 특권 계급은 아니다"라며 "수술실에서 코를 풀고 수술을 하는 등 명백한 부주의로 환자가 사망했다면 당연히 법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말했다.
무조건적인 공소 기각이나 면책은 위험한 발상이라는 것이다.
그는 "의사 단체가 스스로 공정한 판단 인력을 제공하고 전문가들이 참여해 과실 여부를 투명하게 가리는 것이 우선이지, 무조건 법적 책임을 피하려고만 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대신 한 전 교수는 사법 리스크의 해법으로 법적 면책보다는 '소통의 회복'을 제시했다. 그는 미국에서 시작된 '미안하다고 말하기(Sorry Works)' 운동을 언급하며 의사가 환자에게 진심으로 설명하고 사과할 수 있는 법적·사회적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는 "환자들이 소송을 거는 이유는 돈 때문만은 아니다. '내 아이가 왜 이렇게 됐는지'를 아무도 제대로 설명해주지 않고, 의사가 얼굴조차 비치지 않을 때 쌓인 서운함이 법정으로 향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나 역시 은퇴 직전 공기색전증으로 숨진 고등학생 환자의 빈소를 찾아 부모와 함께 울었다"며 "의사와 환자가 '적'이 아니라 아이를 살리기 위해 사투를 벌인 '같은 편'이라는 신뢰만 회복돼도 수많은 소송을 막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끝으로 그는 후배 의사들에게 "정치적 선동에 휘둘리지 말고 본질을 꿰뚫어 보는 안목을 가져야 한다"고 당부했다.
한 전 교수는 "의료의 본질은 인류 역사상 한 번도 변한 적이 없으며, 생로병사가 존재하는 한 의사라는 직업의 가치는 영원할 것"이라며 "어려운 시기일수록 의사의 본분이 무엇인지 다시금 되새겨야 한다"고 조언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