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선

가톨릭관동의대 4학년 안하은
발행날짜: 2026-03-09 05:00:00
  • 가톨릭관동의대 본과 4학년 안하은

의사 국가고시 실기 시험을 준비하면서 가장 강조되는 것은 환자와의 라포, 즉 신뢰를 형성하는 것이다. "추운 날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어요", "많이 걱정되실 텐데 제가 잘 설명해 드릴게요"라는 말들이 평가 항목에 포함될 만큼, 환자의 말에 귀 기울이고 심리적 안정을 주는 것은 의사의 중요한 덕목으로 여겨진다.

나 역시 어릴 때부터 의사를 꿈꾸며 환자에게 친절하고, 무엇이든 편하게 털어놓을 수 있는 의사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해 왔다. 또한 그게 당연한 의사의 모습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실습을 돌며 의사와 환자 사이 '보이지 않는 선'이 존재한다는 것을 느꼈다.

실습 중 어떤 환자를 만나 직접 문진하고 신체 진찰을 하며 짧은 시간 동안 라포를 형성했다. 창가 쪽 침대에 앉아 계셨는데, 말씀하실 때 손을 자꾸 무릎 위에 올렸다 내리셨다. 통증 때문인지 긴장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손의 움직임이 이상하게 기억에 남았다. 환자분은 "언제쯤 퇴원할 수 있나요"라고 조심스럽게 물어보셨다. 간절함과 두려움이 엉킨 환자분의 목소리에 가슴이 뻐근하게 조여왔다.

당장이라도 조금만 더 계시면 금방 좋아지셔서 퇴원할 수 있다고, 불안을 잠재울 따뜻한 위로를 건네고 싶었다. 하지만 환자의 병세는 아무도 알 수 없고, 섣부른 희망을 주는 말이 얼마나 무책임한 일인지 알기에 목구멍까지 차오른 말을 끝내 삼켜내야만 했다. 나는 아직 학생이라 확실한 말씀을 드리기 어렵다는 방어적인 대답으로 대신했고, 그분은 그러냐고, 알겠다고 하셨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환자의 병세가 급격히 악화하여 결국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한동안 멍한 상태가 지속되었고, 병실에서 나누었던 짧은 대화와 환자분의 옅은 미소가 자꾸만 머릿속을 맴돌았다. 슬픔만은 아닌, 무언가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이었다.

그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담당 주치의 교수님에 비하면 비교도 안 될 만큼 짧은 시간을 그 환자와 함께했을 뿐인데 이 정도의 충격이라면, 수년, 수십 년간 수많은 환자의 악화와 사망을 곁에서 지켜봐 온 의사들은 과연 어떻게 이 파동을 견뎌내고 있을까.

실습 중 환자의 사망 연락을 받고 덤덤하게 사망선고를 하러 가시는 교수님의 모습을 보았다. 교수님은 슬퍼하는 보호자를 위로한 후 슬픔을 내비치지 않고 바로 다음 환자를 진료하러 가셨다. 처음에는 막연하게 오랜 시간 진료 현장에서 수많은 환자를 겪다 보면 자연스럽게 나도 덤덤해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교수님께서는 당신 기억에 아직도 남아 있는 환자분의 이야기를 해 주시며 환자의 죽음은 아직도 힘들고 잊히지 않는다고 하셨다. 환자의 이야기를 떠올리고 말씀하시는 말투와 눈빛에서 덤덤함 속에 자리 잡은 슬픔이 느껴졌다. 처음에는 그저 오랜 시간에 걸쳐 스스로 단련해 온 무감각의 결과라고 생각했지만, 환자의 죽음을 겪고 교수님의 이야기를 들은 후에 그것이 다음 환자를 살리기 위해, 끓어오르는 슬픔을 억누르고 이성적인 판단을 내려야만 하는 사투의 흔적으로 느껴졌다.

만약 의사가 환자의 죽음에 깊이 동화되어 무너져 내린다면 당장 옆 병상에서 숨을 헐떡이는 다른 환자에게 누가 심폐소생술을 할 수 있을까. 환자와 '보이지 않는 선'을 유지하는 것은 의사 자신의 심리를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방패이자, 동시에 환자에게 객관적이고 최선의 의학적 처치를 제공하기 위해 의료 현장이 의사에게 강제하는 규범이었다. 이 선을 지키기 위해 의사는 매 순간 자신의 인간적인 연민 중 일부를 베어내는 상실을 겪는다.

'환자에게 따뜻하게 다가가는 것'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 이전의 나는 이 두 가지가 공존할 수 있는 덕목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이 둘은 끊임없이 모순되며 매 진료의 순간마다 치열하게 충돌한다. 환자, 보호자의 차가운 손을 맞잡고 함께 울어주고 싶은 충동과, 당장 이성을 되찾고 다음 환자를 진료해야 하는 의사의 본분 사이에서 우리는 무언가를 선택해야만 한다. 그리고 의사는, 잔인하게도 후자를 선택하도록 훈련받는 사람들이다.

실습 전의 나는 그저 '착하고 따뜻한 의사'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환자의 첫 죽음을 겪고 난 지금, 나는 공감과 거리두기라는 두 가지 팽팽한 줄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해야 하는 의사의 무거운 숙명을 조금이나마 엿보게 되었다.

보이지 않는 선. 나는 훗날 내 이름을 걸고 환자를 책임지는 의사가 되었을 때, 이 선을 완벽하게 지켜낼 자신이 아직은 없다. 선을 넘지 않으려다 환자의 고통에 무감각한 기계가 되어버리진 않을지, 혹은 선을 넘어 환자의 슬픔에 매몰되어 버리진 않을지 여전히 두렵다. 하지만 나를 향해 옅게 웃어주던 그 환자의 얼굴을 영원히 잊지 않고, 따뜻함과 냉철함이 충돌하는 경계선 위에서 끊임없이 흔들리고 고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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