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기기 R&D 동력 확보 기대…규제 강화는 우려감
의료계는 진료 연속성 확보 환영…수가 보전은 숙제
[메디칼타임즈=김승직 기자] 국가 필수 의료기기 지정을 담은 법안이 발의되면서 의료기기 기업들과 의료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의료기기에 대한 공적 지위가 강화되는 것은 고무적이지만 이중 규제의 단초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기대와 우려가 공존하고 있는 것.
24일 더불어민주당 서영석 의원은 국가 지정 필수 의료기기를 규정하는 의료기기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필수 의료기기에 대한 법적 근거를 마련해 공급 불안 해소 및 국가 차원의 지원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골자다.

환자 생명·건강을 위해 필수적이지만, 시장 기능만으론 안정적인 공급을 기대하기 어려운 의료기기에 대한 생산·수입·공급 현황을 정부가 상시 모니터링·관리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의약품은 약사법을 통해 국가가 필수 제품을 정부가 규정·관리하는 것과 반대로, 현행 의료기기법은 기기 안전성·유효성 관리 및 허가·심사 등 사후관리만을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 때문에 의료기기 수급 불균형이나 공급 중단 사태가 발생할 경우, 정부는 임시·사후적인 조치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보건의료상 필수적인 기기의 안정적 공급 기반을 조성하거나, 관련 기술을 확보하는 데에도 어려움이 있다는 지적도 있어 왔다. 이에 단순한 수급 관리를 넘어 국가가 필수의료기기의 산업 생태계를 보호하고 장려하겠다는 것. 이를 위해 개정안엔 필요시 정부가 국가필수의료기기 생산·수입을 직접 지원할 수 있는 조항도 포함됐다.
정부 역시 필수의약품·의료기기의 공급 안정화를 주요 과제로 발표한 바 있다. 특히 식품의약품안전처는 국가필수의료기기 제도 도입을 통한 안정공급 체계 구축과 국산화 지원을 추진 중이다.
이 법안을 두고 산업계에선 기대와 우려가 동시에 나오고 있다. 국가 차원의 생산·국산화 지원은 환영이지만, 규제 강화와 정부 개입에 따른 부작용 우려가 공존하는 모습이다.
정부 예산 지원과 수급 관리 시스템이 도입되면, 그동안 수익성이 낮아 생산을 기피하던 필수의료기기 분야에서 연구개발(R&D) 동력이 확보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다만 국가필수의료기기로 지정될 시 생산 및 수입 현황 보고 의무가 강화되고, 수급 안정화를 위한 정부의 개입이 늘어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필수의료기기에 대한 적정 가격 보장 등 보상 기전이 마련되지 않을 경우 기업의 부담만 가중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와 관련 의료기기 업계 한 관계자는 "그동안 의료기기는 의약품에 비해 공공재적 성격이 덜 했는데, 이번 개정안으로 국가필수의료기기에 대한 법적 지위가 마련될 수 있다는 점은 고무적"이라며 "다만 지정·관리가 또 다른 규제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은 걱정이다. 특히 인력이 부족한 중소 업체들은 이런 규제로 인한 부담이 더 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더욱이 정부가 국가필수의료기기 가격을 강하게 통제할 경우 기업들이 해당 품목의 생산이나 수입을 기피하는 역효과가 생길 수 있다"며 "국산화 R&D 지원 확대와 수급 불안정이 잦은 소모품, 필수 부품의 국내 제조 기반을 닦는 데에도 투자가 필요하다고 본다. 산업계와 소통해 지원의 체감도는 높이는 방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의료계에선 환자 진단·치료 연속성 확보 측면에서 긍정적이라는 반응이 나온다. 그동안 인공심장판막, 인공호흡기 등 수급 불안정으로 진료 현장이 겪었던 혼란을 방지할 수 있다는 기대다. 실제 의료 현장에선 환자 안전을 위한 안정적인 필수의료기기 공급망 구축 요구가 꾸준히 제기돼 있다.
다만 국가필수의료기기 선정 기준과 품질 관리 문제 등에선 실질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국산화 추진 과정에서 글로벌 표준에 부합하는 품질이 보장돼야 하며, 필수의료기기 지정 범위를 임상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해 구체화해야 한다는 요구다.
한 대학병원 교수는 "그동안은 의료기기 수급 문제 대응이 임시방편 수준인 경우가 많았다. 제대로 된 거버넌스가 구축된다면 체계적인 대응이 가능해질 것으로 기대된다"며 "다만 국가필수의료기기로 지정된 품목들이 기피되지 않도록 적정한 수가 보전이나 별도의 가산 제도 등 경제적 유인책이 병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국산화 역시 단순한 국산 제품으로 대체하는 것에 그치는 게 아니라, 임상 현장에서 신뢰할 수 있는 수준의 품질을 전제로 해야 한다"며 "법 개정 과정에서 현장 전문가들의 목소리를 충분히 반영해 실제로 환자들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제도가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의료기기협회는 신중한 입장이다. 아직 법안의 상세 내용이 공개되지 않아 업계에 미칠 구체적인 영향력을 판단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한국의료기기산업협회 관계자는 "이 법안에 대해 사전에 논의된 바는 없다. 식약처가 필수·긴급 도입 의료기기 관련 제도를 기획하고 있다는 점만 인지하고 있었다"며 "법안 세부 내용이 아직이어서 업계에 부담을 주는 조항이 있는지, 혹은 환자들에게 진정으로 도움이 되는 제도인지 판단할 수 없어 당장 명확한 입장을 내놓긴 어렵다"고 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