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관동대학교 본과 2학년 배지섭

저는 사람을 공감각적으로 봅니다. 2가지가 있는데, 바로 '색감'과 '향'입니다. 오늘은 그중 '향'에 관한 저의 생각을 써내려갈까 합니다. 사람마다 서로 다른 향으로 해석되거든요. 어떤 사람은 싱그러운 봄내음, 또 어떤 이들은 짙은 재즈바의 향이라던지 말입니다.
향이라는 건 참 독특한 것 같습니다. 사람을 떠올릴 때 저는 당신을 글자로 기억하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그 사람이 풍겼던 향, 그 사람과 이야기했던 주위의 백색소음, 그때의 날씨와 온도처럼 말이죠. 저의 한 일화를 소개해 드릴까 합니다.
제가 고교시절 다니던 학원이 있었습니다. 그곳에는 학습을 도와주시는 조교 분들이 계셨는요. 조교님들 중 한 분의 해설이 저의 풀이 스타일과 맞아 항상 그분께 질문을 하곤 했답니다. 처음 그분께 질문을 드렸던 날 그분께서 뿌린 향수가 아직도 기억에 남습니다. 당시 그분의 인상과 매우 잘 맞는, 따스한 햇살 같은 향이었어요.
신기하게도 저는 대학에 들어가고 나서 해당 조교진으로 합류하게 되어 그분과 함께 일을 하게 됩니다. 더이상 학생과 제자가 아닌 동료인 셈이지요. 함께 일을 하다 보니 그분에 대한 저의 인식도 덩달아 달라졌습니다.
원래는 제게 한없이 지식을 나누어주던 우상 같은 존재였다면, 함께 업무를 보게 된 이후로는 어딘가 미묘하게 부드럽지만서도 전문가의 향이 나더군요. 여전히 배울 점이 많지만, 배울 점의 영역이 달라진 것이 향기에서부터 느껴지는 듯 싶었습니다. 당시 제게 그 향은 머스크 향으로 느껴졌습니다.
이제는 어느덧 그분과 지인으로 알고 지낸 지 6년째가 되었습니다. 1년에 한두 번씩 꼭 조교진 다같이 모이는 날이 있는데, 가장 마지막 제가 느꼈던 향은 잘 정돈된 솜이불과 같은 향이었습니다.
여기서 재밌는 점은, 시간을 거듭함에 따라 그분에게서 느껴지는 향이 달라졌지만, 그분이 뿌리는 향수가 크게 달라진 건 아니었다는 점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그분의 무엇이 저로 하여금 다른 향을 맡은 것처럼 착각하게 만든 것일까요. 그것은 아마도 향기라는 외피 아래에 그 사람이 쌓아온 '시간'과 '성숙'이 스며들어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대상에 대한 저의 이해가 깊어지고, 그분의 인격적 성숙이 향기라는 매개체를 투과하여 제게 도달한 것이죠. 실제로 이 조교님으로부터 저는 참 많은 것을 보고 배웠습니다.
본인이 상정한 목표에 더딜지라도 무너지지 않고 차근차근 해내는 조용한 실행력, 동시에 잊지 않고 본인의 주변인을 알뜰히 챙기는 모습까지. 6년 동안 이러한 그분의 성숙을 곁에서 지켜보며 깨달았습니다. 결국 향이란 객관적인 향료와 알코올의 배합뿐만 아니라 한 사람의 삶을 대하는 태도가 주변인에게 투영되고 해석되는 방식이란 것을 말입니다.
여기서 제가 말하고 싶은 점은, 그 사람의 성숙에 따라 그 사람이 뿌린 향수의 향마저도 다르게 해석될 여지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에 관해서는 글의 끝머리에서 향수에 대한 저의 생각과 더불어 다시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앞서 우리가 누군가에게서 맡는 향은 단순히 향수에서 느껴지는 향은 아닐 수도 있다는 말을 전해드렸습니다. 그럼에도 향수가 역시 본인이 좋아하는, 또는 지향하는 이미지를 구사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매개체긴 하지요.
저 역시 향수를 참 좋아합니다. 스무살이 되던 해, 제게 향수를 처음 선물해준 지인은 다름아닌 제가 처음 알바를 했던 학원 실장님이셨습니다. 그분께서는 제게 다음과 같은 향수를 주셨어요.
탑노트로는 시트러스와 열대과일 향이 도드라지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우디 계열 향이 남아있는.
용량이 큰 걸 선물해 주셔서 그런지, 저는 그 향수를 1년 넘게 뿌렸답니다. 그렇게 매일같이 향수를 뿌리다 보니, 저의 '취향'이라는 게 생겨났습니다.
그 취향은 곧 제가 되고픈 '이상향'을 대변하더군요. 그 당시 저는 일을 잘하는 이미지로 보이고 싶었습니다. 동시에 매우 정갈하고 깨끗한 이미지를 풍기고 싶었어요. 그래서 옷도 거의 매일 흰색 셔츠만 입었던 것 같습니다. 그때 제가 택했던 향수를 표현해보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탑노트는 상큼하지만 과하지 않은 은은한 과즙 향으로 시작해서, 중간에는 달콤하면서도 묵직한 우디향이 나다가, 종국에는 차분한 향나무의 내음으로 마무리되는.
그 향을 너무 좋아한 나머지, 저는 향수뿐만 아니라 핸드크림도 같은 향으로 나중에 생일 선물을 받게 됩니다. 하지만 그 향을 뿌렸다고 해서 제가 바로 정갈하고 일을 잘하는 청년의 이미지로 변신할 수 있었을까요? 아마 그건 아닐 겁니다. 그 향수를 아침마다 뿌리고 나올 때마다 '오늘 하루도 후회가 없도록'이라고 속으로 외치며 정말 그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던 것 같습니다.
말하자면 하루의 다짐을 시작하는 매개체로 그 향을 이용한 셈이지요. 출근을 하는 KTX에서 짬을 내어 강의록을 읽고, 또 창업경진대회를 준비하기도 하며 참 열심히 살았던 것 같습니다. 결국 2~3년 전부터 제가 하고 싶었던, 그리고 되고 싶었던 모습을 일정 부분 이루어냈답니다.
시간이 흘러 되돌아보니, 저를 그 이상향에 가깝게 만든 것은 향수 그 자체가 아니었습니다. 향수에 담았던 그 치열한 갈망과 노력이 쌓여 비로소 제 몸에 체화된 '태도'가 형성되었을 때, 비로소 타인들도 저에게서 제가 원하던 신뢰의 향을 맡기 시작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아마도 제 삶에 대한 진심이 향이란 매개체를 통해 주변인에게 닿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마치 제가 앞선 사례에서 조교님으로부터 느꼈던 것처럼 말입니다.
이제 저는 더이상 그 시절의 우디 향수를 고집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제는 향수를 통해 억지로 어떤 이미지를 증명할 필요가 딱히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과거의 향수가 되고 싶은 나를 향한 투사였다면, 지금의 향은 그날그날의 나를 온전히 수용하는 표현에 가깝달까요? 향에 관한 생각을 거듭하다 보니 결국 향수의 초점을 타인이 아닌 저 자신으로 옮긴 셈입니다.
이러한 여정을 지나오며, 이제 막 자신만의 향에 관해 궁리해보기 시작한 친구들에게 몇 가지 제언을 건네고 싶습니다.
첫째, 적극적으로 향을 경험해 보세요. 꼭 비싼 향수가 아닌 바디로션, 샴푸, 룸스프레이 등도 좋아요. 다양한 향을 접하다 보면 역설적으로 자신이 어떤 순간에 가장 편안함을 느끼고 또 무엇을 원하는지, 즉 자신의 내면과 욕망을 들여다보는 계기가 됩니다.
둘째, 향수를 고를 때 추천 받은 향수를 사는 것도 좋지만 본인이 지향하는 인간의 모습을 떠오르게 하는 향수를 구매해 보세요. 당신이 뿌린 향수를 가장 처음 맡게 되는 사람은 다름아닌 본인입니다. 하루종일 그 향수를 맡으며 기분이 좋아지고 자신감이 차오르길 바라요. 자신이 지향하는 가치가 담긴 향은 하루를 열심히 살아가게 해주는 동력이 될 것입니다.
셋째, 그러나 결코 향기에만 의존하진 마시길. 앞서 말씀드린 두 사례처럼, 결국 향을 완성하는 것은 그것을 소화하는 이의 성숙도입니다. 이상향을 떠오르게 하는 향수를 뿌렸다고 바로 그러한 사람이 되는 건 아니잖아요? 그에 합당한 노력이 수반되어야 합니다.
아무리 화려하고 값비싼 향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소화하는 이의 태도가 미숙하다면 그 향은 그저 공기 중에 흩뿌려지는 향료에 불과할 겁니다. 반대로 삶을 대하는 태도가 성숙한 이의 향기는 보이지 않는 그 분만의 인격으로 우리의 머릿속에 각인되곤 합니다.
우리의 다음 향은 무엇이 될까 궁금하네요. 소란스럽지 않게, 하지만 묵직하게 익어가는 성숙의 시간 속에서 우리 각자가 지닌 특유의 향취가 더욱 깊어지길 기대해 봅니다. 그럼, 다음 글에서 뵙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