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엄한 죽음을 선택할 권리

동방봉용 변호사(법무법인 문장)
발행날짜: 2026-03-30 05:00:00
  • 동방봉용 변호사(법무법인 문장)

[메디칼타임즈=동방봉용 변호사] 최근 한 사연이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울렸다. 임종을 앞둔 어머니의 연명의료를 중단하기로 결정했던 아들이 오랜 친구로부터 '살인자'라는 말을 들었다는 이야기였다. 20년 지기 친구마저 그 고뇌에 찬 결정을 범죄로 치부했다는 사실은, 아직 우리 사회가 '품위 있는 죽음'에 대한 법적·윤리적 공감대를 충분히 형성하지 못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법이 허용한 절차에 따라, 회복 가능성이 없는 임종 과정에서 의미 없는 연명치료를 중단한 것이 과연 살인인가.

연명의료 중단은 결코 '포기'나 '살해'가 아니다. 그것은 환자가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지키며 생을 마감할 수 있도록 돕는 가장 숭고한 '존중'의 표현이라고 봄이 옳다. 대법원의 무의미한 연명치료장치 제거 사건(대법원 2009. 5. 21. 선고 2009다17417 전원합의체 판결), 이른바 김할머니 사건을 계기로 촉발된 논의를 통해 2016년 호스피스ㆍ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약칭 연명의료결정법)이 제정되었다. 위 법은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가 치료 효과 없이 생명만 연장하는 의료행위를 거부하거나 중단할 수 있도록 제도화했다. 이는 생명을 포기하라는 법이 아니라, 존엄을 지키라는 법이다.

현행 연명의료결정법 제1조는 이 법의 목적을 '환자의 최선의 이익을 보장하고 자기결정을 존중하여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보호하는 것'이라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즉, 회생 가능성이 없는 임종 과정에서 무의미하게 생명만을 연장하는 행위는 오히려 환자의 존엄을 해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한 것이다.

연명의료결정법에서 말하는 연명의료란 심폐소생술, 인공호흡기, 혈액투석 등과 같이 회생 가능성이 없는 상황에서 임종 시점만을 연장하는 의료행위를 의미한다. 연명의료결정법은 담당의사와 전문의가 환자가 '임종과정'에 있다고 판단하고, 환자의 의사를 확인한 경우에만 중단을 허용한다. 무분별한 포기가 아니라, 엄격한 의학적·법적 요건 아래 이루어지는 결정이다.

연명의료결정법은 다음과 같은 경우에 연명의료 중단을 허용한다. ① 환자의 명확한 의사 확인 : 사전연명의료의향서나 연명의료계획서를 통해 환자 본인이 직접 의사를 밝힌 경우, ② 가족의 일치된 진술 및 합의 : 환자가 의사 표현을 할 수 없는 상태라면, 환자가 평소 가졌던 의사에 대한 가족 2인 이상의 일치된 진술이나 가족 전원의 합의를 통해 결정할 수 있다. 이러한 결정은 담당 의사와 해당 분야 전문의 1명의 의학적 판단(회복 불가능한 임종 과정 확인)이 전제되어야 한다. 연명의료결정법은 이러한 결정을 이행한 의료인에게 형사 책임 등을 묻지 않음으로써 그 정당성을 보호하고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미래 사회 대비를 위한 웰다잉 논의의 경향 및 과제' 보고서에 따르면 국민 10명 중 9명이 말기 및 임종기 환자가 되었을 때 연명의료를 중단할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고 한다. 그 이유는 단순히 가족의 부담을 덜기 위함이 아니라 '회복 가능성 없는 삶'보다 '고통 없는 존엄한 마무리'를 원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많은 이들이 연명의료 중단을 종종 '생명 포기'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여기에는 죽음에 대한 문화적 금기와 "할 수 있을 때까지, 끝까지 해야 한다"는 정서적 의무감이 자리한다. 그러나 의학적으로 무의미한 치료가 과연 환자에게 이익인가에 대해서는 다른 질문이 필요하다.

우리나라는 초고령사회에 진입했다. 의료기술의 발전은 생명을 연장할 수 있게 했지만 동시에 '어떻게 죽을 것인가'라는 질문을 남겼다. 현재 법이 허용하는 것은 임종과정에서의 연명의료 중단에 한정된다. 그러나 말기 환자, 극심한 고통 속에서 회복 가능성이 없는 환자의 경우에는 여전히 선택의 폭이 제한적이다.

여기서 존엄사 논의가 등장한다. 존엄사는 단순히 죽음을 앞당기는 개념이 아니라, 무의미한 연명 대신 인간다운 마무리를 선택할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자는 문제다. 이미 여러 국가에서 엄격한 요건과 통제 아래 제도화되어 있으며, 이는 생명 경시가 아니라 자기결정권 존중의 연장선으로 이해된다. 중요한 것은 생명의 가치를 낮추는 것이 아니라, 고통 속에서 무의미하게 연장되는 삶을 강요하지 않는 것이다. 인간의 존엄은 생존 기간의 길이가 아니라, 스스로의 의사가 존중되는 데서 완성된다. 이는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규정한 우리 헌법 제10조에서 도출된다.

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조사 결과 응답자의 82%가 극심한 고통을 겪는 말기 환자가 의사의 도움을 받아 스스로 약물을 주입하는 등의 방법으로 삶을 마무리하는 이른바 '조력 존엄사' 합법화에 찬성할 정도로 우리 국민의 의식은 빠르게 변하고 있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죽음을 결정할 권리가 있어야 한다. 누구도 고통을 감내할 것을 강요할 수 없다. 죽음의 고통을 줄이는 것 또한 자신의 삶에 대한 자기결정권의 내용이다.

존엄사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면 곧바로 "생명을 경시하는 사회가 될 것"이라는 우려가 뒤따를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연명의료 중단 제도를 통해 존엄의 가치를 인정하고 있다. 그 연장선에서 더 이상 회복 가능성이 없고 극심한 고통이 지속되는 경우에 대한 제도적 검토를 하는 것은 결코 성급한 일이 아니다. 오히려 법의 부재 속에서 음성적 선택이 이루어지거나, 가족에게 과도한 심리적·경제적 부담이 전가되는 현실이 더 위험하다. 명확한 기준과 절차, 엄격한 통제 장치를 갖춘 제도는 오히려 생명을 더 신중하게 다루는 방식이 될 수 있다.

존엄은 끝까지 보호되어야 한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온다. 문제는 그 과정이다. 의료기술이 삶을 붙들 수 있을 때,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다. "살아 있음"이 곧 "존엄함"과 동일한가. 존엄사는 죽음을 선택하는 문제가 아니라, 존엄을 지키는 방법을 묻는 문제다.

이미 연명의료결정법이 자기결정권을 일부 인정한 지금, 우리는 그 다음 단계를 논의할 사회적 준비가 되어 있다. 비난과 감정적 언어 대신, 차분한 법적·윤리적 토론이 필요하다. 존엄한 삶이 소중하다면, 존엄한 죽음 역시 보호받아야 한다. 이제는 묵인과 회피가 아니라, 제도적 논의를 시작할 때다.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우리 앞에 놓여 있는 또다른 숙제다. 우리가 어떻게 존엄하게 생을 마무리할 것인지에 대해 더욱 성숙한 논의가 이어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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