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나영 서울특별시의사회 부회장(분당서울대병원 소화기내과)

2024년 2월, 과학적 근거가 없는 의대 2000명 증원의 여파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일본과 함께 세계 최고 수준의 의료의 질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낮은 수가를 유지해온, 세계가 부러워하던 의료강국이었다. 그러나 의정사태 이후 교수들은 병원을 지키느라 연구를 중단해야 했고, 많은 우수한 교수들이 대학을 떠났다. 향후 회복이 쉽지 않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2024년 보건복지부 박민수 차관이 브리핑 중 "여성 의사 비율의 증가, 남성 의사와 여성 의사의 근로시간 차이, 이런 것까지 가정에 모두 집어넣어서 분석을 하고 있다"고 발언한 일은 충격적이었다. 의대 증원을 정당화하기 위해 여의사의 증가를 문제처럼 언급한 이 여성차별적 발언은 의료계, 특히 여성 의사들에게 깊은 모욕이었다.
의정사태를 겪으며 내가 가장 놀랐던 말은 '의사는 공공재'라는 표현이었다. 그것은 의사를 공익적 역할을 수행하는 전문직으로 존중하는 말이 아니라, 필요하면 국가가 언제든 동원할 수 있는 관리 대상으로 보는 시선에 가까웠다. 내가 스스로 선택한 길인데도 내 의사와 상관없이 그만둘 수 없다는 어감은 참기 어려웠다.
나는 중고등학교 때부터 의사가 되고 싶었다. 수학과 과학을 좋아했지만 자연과학 그 자체보다 환자를 진료하고, 연구하는 의학자의 길이 더 좋겠다고 생각했다. 시험이 잦고 경쟁이 치열한 의대를 졸업하고, 응급실, 흉부외과, 외과, 내과, 소아외과 등 소위 힘들다는 인턴 과정을 나는 오히려 재미있게 마쳤다.
당직을 서며 잠도 못 자고 100시간이 넘는 강도 높은 수련을 견디면서도 즐겁다고 느꼈던 이유는 단 하나였다. 의사가 되어간다는 사실이 좋았기 때문이다. 특히 아픈 환자를 돕는 일은 내게 분명한 보람이었다. 그래서 이후 내과를 선택했다. 전인적 치료가 필요하고, 무엇보다 필수적인 분야였기 때문이다.
소화기내과 전공의와 전임의 과정을 마친 후 대학 취직은 쉽지 않았지만, 나는 여전히 내시경 시술로 위암도 치료할 수 있고 출혈도 멎게 할 수 있는 소화기내과가 좋았다. 지금도 그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
그러나 흉부외과와 산부인과의 전공의 미달 사태가 외과로, 다시 소아과와 내과로 번지는 동안 안과, 피부과, 재활의학과, 성형외과, 마취통증의학과가 선호되는 모습을 보며 안타까움을 느꼈다. 보람이 큰 필수과가 기피의 대상이 된 데에는 결국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고생에 비해 보상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점, 다른 하나는 의료사고에 대한 부담이 지나치게 크다는 점일 것이다.
그동안 보람을 많이 느껴온 나에게는 후자가 더 필수의료를 외면하는 현 사태에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필수의료과인 내과, 특히 소화기내과에도 의료사고는 적지 않다. 대표적인 것이 내시경 시술 후 천공이다. 2020년에는 대장경 검사를 위해 장정결제를 투여한 뒤 장 천공이 발생해 환자가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
두 아이의 엄마인 소화기내과 교수가 구속되어 감옥에 간 이 사건은 의료계 전체에 깊은 충격을 주었다. 사건은 결국 해결되었지만, 대신 당직 중 오더를 냈던 전공의가 피해를 본 것으로 알고 있다. 인턴과 전공의 시절부터 형사 구속의 공포에 노출되는 현실은 필수의료 기피를 더욱 날카롭게 만든다.
나 역시 2008년 10월 큰 상처를 남긴 의료사고를 겪었다. 다행히 환자가 사망하지는 않았지만, 그 과정은 견디기 힘든 시간이었다. 최종 진단은 복막에 발생한 밴드결찰에 의한 소장폐색이었다. 수술 전까지 한 달 동안 폐색이 생겼다가 풀리기를 반복해 초기 진단이 쉽지 않았고, 이후 다시 폐색이 발생해 수술을 받았으며, 퇴원 후에도 유착으로 재수술을 하는 등 상황 계속 꼬였다. 환자는 결국 처음 진료 과정에 참여한 인턴, 내과 교수, 외과 교수를 의료진 오진으로 형사와 민사로 고소했고, 나는 2009년 1월 2일 경찰 출두 통보를 받았다.
여러 단계로 꼬인 상황을 정리해 진술서를 쓰는 일만도 고통스러웠다. 다섯 번, 여섯 번을 수정해 제출했고, 2월 5일에는 경찰서에서 환자와 대질심문을 받았다. 그 자리에서 나는 경찰에게 물었다. 어떻게 이런 문제로 환자가 그렇게 쉽게 의사를 고소할 수 있느냐고. 경찰은 웃으면서 우리나라에 신문고 제도가 있지 않았느냐고 답했다.
이후 일이 끝난 줄 알았는데 다시 출두 요청을 받았을 때는 내가 유죄가 되면 의사면허는 어떻게 되는가 하는 두려움이 밀려왔다. 2009년 5월 4일 토요일 오후, 집으로 '기소중지판결'이라는 등기가 도착했을 때 나는 거의 주저앉을 뻔했다. 무죄가 아니라는 뜻인가 싶어서였다. 이후 3개월이 지나 무죄판결을 받았지만, 그 과정을 지나고 나서야 왜 환자들이 형사와 민사를 동시에 제기하는지, 왜 의사들이 민사소송에서 약한 모습을 보이는지 절감했다.
나와 함께 고소를 당했던 인턴은 이후 박사과정을 밟으며 훌륭한 신진의학상을 받았고, 미국에서 연구한 뒤 다시 임상으로 방향을 바꾸었다고 들었다. 그 의학자가 우리나라에서 계속 활동했다면 보건의료에 많은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이 들어 씁쓸하다. 인턴, 전공의, 전임의 시절 겪는 의료사고는 단순한 사건이 아니다. 그것은 한 사람의 진로를 바꾸고, 필수의료를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깊은 정신적 상처다.
의협 대의원회 2025년도 하반기 워크숍에서 발표된 '의료사고 관련 민·형사 소송 현황에 관한 비교법적 고찰'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업무상과실치사상죄로 1년에 입건되는 의사의 수는 약 735명이다. 이 가운데 약 40명 정도가 형사판결을 받고, 실제 처벌받는 의사는 연간 20명 안팎으로 추정된다.
한편 의료과오로 인한 민사소송 1심 선고 건수는 2020년 이후 해마다 700~900건 수준이며, 약 50% 내외에서 환자 측 청구가 인용된다. 여기에 의료분쟁조정중재원의 처리 건수까지 연평균 2000건 안팎이라는 점을 더하면, 의료진은 매년 3000건 가까운 민사 분쟁에 휘말리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결국 답은 분명하다. 필수의료를 살리려면 필수의료과에 종사하는 의사들에게 중대한 과실이나 고의가 아닌 이상 민형사상 책임을 면제하고, 피해자는 공적 제도를 통해 보상받는 체계를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의사를 공공재처럼 통제하는 발상이 아니다. 필수의료를 지속 가능하게 만드는 제도적 신뢰와 보호가 아닐까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