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신을 채우다

순천향의대 3학년 오명인
발행날짜: 2026-04-27 05:00:00
  • 순천향대학교 의대 본과 3학년 오명인

4월 어느 날, 실습 일정 사이에 생긴 여유 시간을 놓치지 않고 근처 카페를 방문했다. 멀리 벗어날 수도 없었고, 카페에 도착해서 하는 것도 결국 과제였지만, 따뜻해진 볕을 최대한 밖에서 쬐어보려는 나름의 노력이었다.

몇 분 지나지 않아 단골로 보이는 손님이 반려견과 함께 문을 열고 활기차게 들어온다. 사장님과 꽤 친한 사이인지 옆에서 긴 수다를 시작했고, 나는 그 대화를 간간이 따라가며 케이스 발표를 만들었다.

문득, 이런 문장이 튀어나왔다.

"의사들은 다 꼰대 같아"

흥미로운 의견에 괜히 노트북 화면을 반대편으로 돌리며 귀를 기울였다.

"그렇다니까 의사들은 다 꼰대야. 근데 꼰대일 수밖에 없는 것 같아. 의사가 확신이 없으면 간호사도 흔들리고, 그 아래 직원들이 다 불안하니까, 팀 전체가 흔들리는 거야. 그래서 의사들은 자기 판단을 믿어야 하고, 그러다 보니까 다 꼰대가 되는 것 같아"

오후에 진행된 일정은 협진 티칭이었다. 교수님께서 지정해 주신 협진 의뢰 환자에 관해 공부해서 어떤 회신을 보내면 될지 논의하는 수업이다.

내가 맡은 환자는 고관절치환술 이후 수술 부위 골수염이 의심되는 환자였다. 혈액 배양에서는 균이 확인되지 않았지만, 경험적으로 광범위 항생제를 사용했고, 이후 증상은 호전된 상태였다. 다만 최근 염증 수치가 약간 상승해 항생제 변경 여부에 대한 협진 의뢰가 들어온 상황이었다.

EMR을 꼼꼼히 살피고 환자 문진도 다녀왔지만, 그것과 별개로 '약간 오른' 염증 수치에 대한 가이드라인은 UpToDate를 뒤져봐도 나오지 않았다. 나름 내린 결론은 다른 전신적 감염 증상을 보이지 않고 있고 약제 변경 후 부작용도 없으므로 현재 치료를 유지하자는 것이었다.

교수님은 나의 발표를 듣고 질문을 쏟아내셨다.

"그럼 퇴원하고 외래로 오라고 해도 괜찮을까요?"
"얼마 뒤에 오라고 할까요?"
"한 달? 일주일?"

내가 망설이다 이주면 될 것 같다고 하자 교수님이 웃으시면서 말씀하셨다.
"한 달은 긴 것 같고, 일주일은 짧은 것 같고?"
정확히 그렇게 생각해서 멋쩍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이어서 다음 협진 환자로 넘어갔다.

"균 배양 낼까요? 몇 개요? 두 개면 충분한가요? 세 개?"

우리가 대답하는 대로 EMR에 그대로 오더를 내셨다.

이어서 회진을 시작했다. 교수님은 확실하고 단단한 목소리로 "퇴원해도 괜찮고, 이주 뒤에 외래에서 뵙겠습니다"라는 말을 환자에게 건넸다.

같은 상황을 두고도 내가 내린 결론과 교수님의 말은 어딘가 다르게 들렸다. 내용이 아니라, 그것을 전달하는 확신의 밀도가 달랐다. 문득 궁금해졌다. 교수님들은 확신에 가득 차 있는 것일까, 가득 차 보이려고 노력하시는 걸까? 나는 언제쯤 저런 확신에 찬 목소리를 가질 수 있을까. 그건 그만한 지식과 경험을 축적해서일까, 그저 나를 믿기로 결심해서일까?

둘 다일 것이다. 나는 앞으로 끊임없이 공부해야 하는 의학도의 길 위에 있다. 그러나 책이 정답을 알려주지 않는 상황을 마주해야 할 때가 올 것이다. 그때 나는 내가 지금까지 공부했던 모든 것을 종합해서 임상적 판단을 내리고 자신을 믿기로 결심해야 할 것이다. 한번은 어렵지만 결정을 내리고 피드백을 받는 건수를 쌓을수록 점점 나 자신을 스스로 쉽게 믿을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카페에서 들은 말이 다시 떠오른다. 누군가는 그런 모습을 '꼰대스럽다'라고 표현하기도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의사의 자기 확신은 공부와 실패와 성공을 거듭하며 조금씩 경도를 올린 결정이다. 그리고 그 확신은 나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나를 믿고 따라오는 팀과 치료받을 환자들을 위한 것이기에 더욱 소중하다. 나도 그런 확신 속에서 환자 앞에 설 수 있기를 바라면서 오늘도 화이트 가운의 주름을 쫙쫙 펴고 귀를 활짝 열고 병원을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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