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명대학교 의과대학 본과 1학년 정민재

나는 왜 의대생 단체 '투비닥터'에 들어왔던가. 의정갈등에서 느낀 무력감에서 출발해 의대생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싶었다던가, 글을 쓰고 전하는 일을 하고 싶었다는 식의 여러 그럴 듯한 이유들을 갖다 붙일 수는 있겠지만, 가장 솔직한 이유는 그저 "무언가 해야 할 것만 같아서"였다.
예기치 않은 휴학 때부터였던가, 아니면 더 오래 전부터 나는 늘 무언가 생산적인 활동을 해야한다는 원인 모를 강박에 시달렸다. 가만히 쉬는 것을 무엇보다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있지 않은가. 내가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그 어느때보다 빠른 속도로 변모하고 있는 세상에 발맞추려면 부지런히 뭐라도 하나 더 배우고, 어떤 경험이라도 하나 더 쌓아야지, 이 젊은 날의 하루하루를 릴스나 쇼츠만 소비하며 보내는 것이 너무나도 아깝게 느껴졌다.
고맙게도 이런 삶을 '갓생'이라는 멋진 말로 포장해주는 사람들이 있긴 하지만, 그런 근사한 말로 나의 이런 강박적 열정을 표현하기에는 마음 한 구석이 영 찔리는 감이 없지 않아 있었다. 그건 번지르르해 보이는 겉모습에도 불구하고, 그 안에 뚜렷한 동기와 목적성이 결여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2025년 4월 '투비닥터'에 들어온 이후, 무어라도 경험을 더 쌓아야 한다는 생각에 나는 늘 새로운 영역을 기웃거렸다.
선배 의사들을 찾아가 인터뷰를 하고, 학회 행사에 참석하고, 봉사활동을 다니며 귀감이 될 만한 타인의 인생을 부지런히 탐색했다. 하지만 올해 봄, 이런 경험들을 함께했던 팀원들이 하나둘 OB가 되어 단체를 떠나가는 모습을 보며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하는 회의감에 휩싸였다.
메디컬 코스메틱 브랜드를 만들고 싶다던 한 팀원은 투비닥터 홍보팀에서 브랜딩을 익히고, 나와 함께 피부과 전문의이자 닥터지(Dr. G) 브랜드의 창업자인 안건영 대표님을 만나 인터뷰하는 등 그녀의 목적을 다한 뒤 떠나갔다. 다른 이들 역시 저마다의 목적을 가지고 '투비닥터'라는 무대를 마음껏 활용하여 하고 싶었던 일들을 해보고, 그럴듯한 포트폴리오를 쌓아 다음 단계로 나아갔다. 그러나 나에게는 투비닥터의 '다음 단계'가 없었다.
학문에 빠져 연구에 열을 올리는 사람, 사업가적 야망으로 창업 동아리와 경진대회에 힘을 쏟는 사람, 글쓰는 행위 자체를 사랑해 훌륭한 매거진과 칼럼을 써내는 사람... 내 곁에는 저마다의 동력으로 빛나는 여러 동료들이 있었지만 나는 그 무엇에도 해당되지 않는 것 같았다.
학회 행사에 참석하지만 학구열 때문은 아닌 듯했고, 창업 관련 행사에 얼굴을 비추면서도 뚜렷한 계획을 품은 창업가도 아니었으며, 편집팀에서 일하며 여러 매거진을 함께 발간했지만 글 쓰는 행위에 깊이 매료된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이 모든 것들을 타인의 인정을 바라고 한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면 나를 움직이게 만드는 동력은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나는 그저 바쁘기 위해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이었던 것 아닐까, 하는 생각에 덜컥 두려워졌다.
올 여름, 한 권의 책에서 뜻하지 않게 그 질문의 실마리를 발견할 수 있었다. "누군가 다른 사람에 대해 '진정으로 삶을 사랑한다'고 말한다면 대부분은 그게 무슨 뜻인지 잘 안다. 그 말을 들으면 우리는 성장하고 생명력이 넘치는 모든 것을 사랑하는 사람을 떠올릴 것이다. 무럭무럭 자라 어른이 되는 아이, 형태를 갖추어가는 아이디어, 한창 성장 중인 조직에 매력을 느끼는 누군가를 떠올릴 것이다"— 에리히 프롬, 《우리는 여전히 삶을 사랑하는가》 바로 사랑이다.
생산적이고자 하는 이 지독한 열망은 역설적이게도 생산적인 것과는 아득히 거리가 멀어보이는 사랑 때문이었는지 모른다. 아, 나는 그저 나의 삶을 사랑하고 있었던 것이다. 시간이 만들어낸 허물을 벗겨내고 또 다른 내가 되고자 하는 이 끊임없는 갈망은 학구열도, 성취욕도, 인정욕도 아닌 바로 '삶에 대한 사랑'에서 기인한 것이었다.
삶을 사랑하기에 조금이라도 더 성장하고 늘 변화하고 싶었던 것이다. 생명력이 넘치고 성장하는 모든 것을 사랑하기에, 더 나은 내가 되고 싶었을 뿐이다. '삶을 사랑한다'는 표현은 다소 낯설게 느껴진다. 사랑이라는 단어 자체도 추상적인데, '삶'이라는 추상적 관념이 하나 더 얹어졌으니 말이다. 그러나 에리히 프롬의 철학을 이해하며 깨달은 것은, 사랑은 순간의 감정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것은 삶을 대하는 꾸준한 태도이자, 한 사람이 지닌 근본적인 성질에 가깝다. 사랑은 세상과 타인을 향한 '근본적 호감'이며, 사랑 수 있는 능력 그 자체를 뜻한다. 특정한 대상 하나에 한정된 사랑은 공생적 집착이나 소유욕에 가깝다. 한 대상을 진정으로 사랑한다는 것은 곧 인간 전체와 그 삶을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의미다.
주어진 학업을 제대로 완수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벅찬 의과대학에서, 다양한 분야에 눈을 돌리며 새로운 경험을 갈구하는 이들은 종종 이런 질문을 받는다. "너는 왜 그렇게까지 하는거야?"
나는 이런 질문에 이제 이렇게 대답하고 싶다. "내게 주어진 이 삶을 너무나 사랑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