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천대학교 의과대학 본과 1학년 예나연

부모님께서 배를 타고 3박 4일간 여행을 다녀오셨다. 파도를 넘는 것보다 산을 넘나드는 게 익숙한 분지에 사셔서 그런지 부모님은 여행 초반부터 배를 타야 한다는 것에 걱정이 많으셨다. 그 무렵 이동 경로를 예측하기 힘든 태풍이 일본에서부터 올라오고 있다는 뉴스도 태산 같은 걱정에 한몫했다. 다행히 똑같은 배를 타고 똑같은 목적지에 다녀온 경험이 있던 나는, 여행 가시는 부모님의 손에 멀미약을 쥐여드렸다. 왕복 2알씩, 두 분께 총 4알을 챙겨 드렸다.
여행을 다녀오신 부모님의 표정은 밝았다. 여행 전 말썽꾸러기였던 태풍은, 여행 기간 조용히 사그라들어 둘도 없는 기특한 자식이 되었고-무소식이 희소식인 여느 자식들처럼-, 그 덕에 부모님의 휴대전화 갤러리엔 청명한 하늘색과 푸르른 초록색이 넘쳐흘렀다. 여행이라는 상황이 주는 특유의 다정함과 애틋함에, 평소에는 자주 보이지 않는 하트 손동작들이 사진에 즐비했다.
부모님의 신명 나는 사진 설명과 여행 이야기를 한창 듣다 보니 괜스레 내 기분도 푸릇푸릇해졌다. 이야기가 끝날 무렵 의례적인 말로 부모님께 이번 여행에서 힘들었던 건 없으셨냐고 여쭤봤다. 부모님은 몇 가지를 툭툭 말씀하시다가-택시 기사님이 잘못된 정보를 알려주시더라. 등등-마지막에 한 말씀을 내뱉으셨다. 멀미약이 독하더라. 먹고 나니까 한동안 잠도 오고 어지럽더라.
부모님은 말의 뜻을 몸소 보여주시려는 듯, 이른 저녁부터 주무시러 방에 들어가셨다. 스코폴라민. 부모님의 코 고는 소리가 들리자마자 내 머릿속에는 단 하나의 단어만 떠올랐다. 별다른 수식어 없이 정말 깔끔한 단 하나의 단어, 스코폴라민. 나는 어머니의 핸드백을 뒤져 네모반듯한 멀미약 상자를 서둘러 꺼냈다.
그리고 뒤를 돌려 성분 표를 살펴보았다. 예상대로 스코폴라민이 그곳에 적혀 있었다. 근데 이 약이 왜 잠을 오게 하더라. 지난 학기에 배운 약리학 강의 슬라이드들이 머릿속에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검은 글씨와 흰 배경이 서로 섞이더니 결국 회색 조의 멍한 이미지로 머리가 가득 찼다. 익숙한 회색이었다. 마음이 답답해지기 시작했다.
여름방학이 다가오기 몇 주 전, 쏟아지는 시험 일정에 지칠 대로 지친 동기와 함께 학교 앞 크림새우 집에 갔었다. 주문 즉시 갓 튀겨주시는 집이어서 우리는 자리에 앉자마자 빠르게 크림새우 하나를 주문했다. 그리곤 새우가 기름에 들어가는 동안 잠시 숨을 돌렸다. 머릿속에서 조금 전까지 하다 나온 공부 내용들이 소용돌이치다 이내 가라앉았다.
그러고 나니 그 무렵 입버릇처럼 하던 말들이 여지없이 툭툭 튀어나왔다. 정말 어떻게 이걸 다했는지 모르겠다. 얼마 남지 않았다. 학점이 어떻게 나올까. 이번에 등수표가 엄청 촘촘하더라. 등등. 크림새우가 생각보다 빨리 나오지 않았던 탓일까, 그날은 그런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넘어 평소와 다른 주제들도 빈 테이블에 올려지기 시작했다.
"나는 고등학생 때랑 지금이 달라진 게 없는 것 같아. 그때는 내신 따려고, 그 등급 하나하나에 일희일비하면서 공부했었는데. 지금도 시험 등수에, 학점에만 몰두하지 내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은 전혀 하지 않는 것 같아"
내뱉고 나니 맞는 말이었다. 너무 맞는 말이어서 잠시 가라앉은 머리는 다시금 뿌옇게 부유하기 시작했다. 돌이켜보면 내 지난 학기는 그랬다. 새로운 개념을 배우고 환자의 케이스에 적용해 보며 지식의 유용성을 확인하는, 그런 즐거움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나를 계속 나아가게 했던 힘은 그런 즐거움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것은 고등학생 때 느꼈던 불안함이었다.
밀려오는 시험과 쏟아지는 성적표, 평가의 연속에서 내가 생각하는 어떤 기준치 이상의 점수를 받아내야 한다는 조급함. 그 만들어진 감정들은 내 시선을 오로지 교수님이 강조하신 빨간 문장에 묶어두고, 내가 흥미로워하는 것에는 시선이 새어 나가지 않게 붙들었다. 어쩌면 그 과정은 내가 어떤 것에 관심이 있는지 알아낼 힘을 서서히 뺏어 나가는 시간이었을 수도 있다.
언제부터 그 기준이 세워진 걸까. 기준은 끊임없이 자가 복제를 반복해 내가 하는 거의 모든 것에 세워져 있다. 단순히 시험 성적과 등수 등 수치적인 것뿐만이 아니다. 일주일 동안 공부했으면 적어도 이 정도는 알아야지, 어제 복습을 그렇게 했는데 적어도 이건 외우고 있어야지 등 구체적인 행동까지 내겐 선이 생겨버렸다. 촘촘하게 세워진 잣대들은 나를 정해진 트랙에서 한 칸, 또 한 칸 나아가게 하는 힘이 되었지만 잠시 딴 길로 새려고 하면 감정을 회색 조로 만들어 답답함을 느끼게 했다.
선으로 둘러싸인 한 칸에 가까스로 안착하면 마음은 잠시 안정감을 되찾았다가 다시금 울렁였다. 그다음 칸으로 나아가야 했기 때문이다. 기준이란 게 생긴 이상, 그리고 그것이 내 동력이 된 이상, 내가 느끼는 뿌연 무채색의 감정들은 당연한 것이 되었다. 오히려 그 감정들이 다시금 한 칸에 들어가야 할 당위성을 제공했다.
어쩌면 부모님의 이야기에서 단순히 스코폴라민 단어만 떠올리고, 그게 왜 졸음을 유발하는지 설명하지 못했던 것. 그리고 크림새우를 기다리며 친구와 나눈 대화에서 내 머릿속이 또다시 잿빛으로 변했던 것 역시 그 이유였을지도 모른다.
나는 가끔 기준이 부재했다면 어떨지 생각한다. 하지만 그랬다면 내가 지금까지 나아갈 수 있었을까. 어느 순간엔, 그 틀에서 벗어난 생각들을 거리낌 없이 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기준과 빛바랜 감정들이 나를 여기까지 이끌어줬다는 양가적인 감정이 혼재한다.
부모님이 주무시러 들어간 그날 밤, 어머니 핸드백 속 약상자를 꺼내 성분 표를 확인하고 끝내 스코폴라민의 기전을 찾아본 것은 결국 내 안에 있던 그 '기준' 덕분이었다. 알지도 못하면서 대충 넘어가기는 싫었던 조바심, 최소한 이 정도는 알아야 한다는 내 안의 엄격한 잣대가 없었다면 나는 그저 부모님의 피곤함으로 치부하고 그날 일을 넘겼을지도 모른다.
기준은 나를 예리하게 다듬고 앞으로 나아가게 만들지만, 동시에 나를 끝없는 회색빛 트랙 위에 가둬놓는다. 트랙은 끝이 없다. 이전의 칸과 앞으로 가야 하는 칸, 그리고 지금 내가 서있지만 빠르게 넘어서야 하는 칸만 있을 뿐이다. 하지만 그 촘촘한 선이 만드는 모눈종이가 있어야 나는 비로소 내 좌표를 찍을 수 있었다. 나는 기준이 만들어준 궤도에서 벗어나는 것을 본능적으로 두려워하고 있을 뿐이다.
다음 칸으로 넘어가기 위해서 나는 당연하게 또다시 회색빛 감정을 선택할 것이다. 멀미를 막아주는 스코폴라민이 어지러움을 남기듯, 나를 나아가게 하는 이 기준 역시 무채색의 부작용을 동반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선을 벗어난 삶을 동경하면서도, 선 밖에서는 내가 나아가야 할 방향조차 잡지 못하는 나는 아직 기준을 버릴 수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비로소 무채색이 당연하지 않다는 것을 알았기에, 용기 내어 이 부작용에 눈을 맞춰본다. 정해진 궤도를 따라 걸으며, 촘촘한 격자 사이에 갇혀 놓치고 있던 질문들을 조금씩 칸 안으로 끌어들인다. 질문들이 들어찰수록 칸은 조금씩 넓어진다. 나는 여전히 트랙 위에 있다. 스스로 만든 검은 테두리지만, 이제는 그 선 너머를 바라보며 다음 칸을 향해 발을 내디뎌 보려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