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남용 막으려면 규제만으로 한계 봉착
비만으로 사회경제적 부담 연간 23.4조
[메디칼타임즈=김민건 기자] 비만치료제 오남용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규제 중심의 정책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진료 현장에 있는 일선 전문가들로부터 나왔다.
비만치료제를 규제 대상으로만 바라보던 정책에서 한발 더 나아가 치료가 필요한 고위험·취약계층부터 건강보험 등 공적 체계에서 관리해야 한다는 제언이다.
단순히 비만 치료제 약값을 지원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진단과 생활습관중재, 약물치료 등을 하나의 관리체계로 묶어야 한다는 구체적인 방안을 냈다.
이준혁 노원을지대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3일 서울 여의도 콘래드호텔에서 열린 2026 ICOMES 특별 정책토론회에서 '정책 사각지대의 한국 성인 비만 치료 접근성 향상을 위한 제언'을 발표하며 이같은 내용을 밝혔다.
이 교수는 국내 성인 비만 치료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로 '공적 관리의 부재'를 꼽았다. 비만대사 수술을 제외한 대부분 치료가 비급여로 환자에게 맡겨져 있다. 이런 상황에선 치료비를 낼 수 있는지 또는 거주하는 지역이 실제 치료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는 분석이다.

이 교수는 "지금은 지불 능력이 있는 분들이 비만 치료를 더 잘 받을 수 있는 환경"이라며 "필요한 사람들은 소득이 낮은 분들이 많은 데, 이에 비해 접근성은 오히려 떨어지면서 필요와 접근의 역전이 발생한다"고 말했다.
비급여를 유지하는 것이 오남용 방지 측면에서도 최선은 아니라고 했다. 환자가 비용을 전액 부담하니 저렴하게 구매하기 위해 해외 치료제를 구매하는 등 오히려 적절한 처방이나 반응 관리 등이 어려워진다고 했다.
전면 급여 아닌 '필요한 환자부터'…고위험·취약층 우선
이에 이 교수는 건강보험 안에서 오남용과 처방, 치료 반응, 중단 여부, 안전성을 함께 관리해야 한다고 했다.
구체적으로 치료 필요도와 지불 능력, 지역 접근성을 함께 고려해 대상을 정할 것을 제안했다. 그 조건으로 ▲중증 비만 또는 비만 관련 합병증을 동반한 성인 ▲의료급여·차상위계층과 저소득 건강보험 가입자 ▲비만진료 자원이 부족한 지역 거주자와 이동이 제한된 환자 ▲비만대사수술 이후 관리가 단절됐거나 체중이 다시 증가한 환자 등을 우선 검토할 것을 제안했다.
이 교수는 "어느 국가도 모든 비만 치료를 전면적으로 (급여로) 보장하지는 않고 있다"며 "정책 사각지대에서 어떤 환자를 우선적으로 보호할지 사회적 합의가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보장 범위를 지속적으로 조정하는 '학습형 정책'도 제안했다. 약제가 얼마나 많이 사용됐는지가 아니라 환자가 실제 치료에 얼마나 접근했고 건강 결과가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정책 평가 기준으로 삼자는 것이다.
이 교수는 "약제비 지원을 넘어 비만을 통합적으로 진료할 수 있는 보장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일본도 고위험군 제한…약만 처방하지 않고 치료 과정 관리
해외에서는 비만치료제에 보험을 적용하며 관리하고 있다. 이 교수는 대표적으로 일본 사례를 들었다.
일본은 BMI 35kg/㎡ 이상이거나 BMI 27kg/㎡ 이상이면서 비만 관련 건강장애가 2개 이상이 있는 고위험 환자면 건강보험을 적용받는다.
바로 처방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식사와 운동치료를 6개월 이상 시행한 근거가 필요하며, 관리영양사의 상담과 전문 진료체계를 갖춘 의료기관에서 치료받아야 한다.
치료 중에는 매월 체중과 혈당, 혈압, 지질 등을 확인하고 3~4개월 동안 개선 경향이 없으면 치료를 중단해야 한다.
이 조건을 맞추면 위고비(세마글루타이드)는 68주, 젭바운드(티르제파타이드)는 72주까지 보험 적용이 된다.
다만 이 교수는 일본의 기준을 그대로 국내 상황에서 적용하는 것은 또 다른 장벽을 만들 수 있다고 봤다. 시간과 경제적 여건이 어려운 환자가 생활습관 치료를 위해 6개월 동안 의료기관을 계속해서 방문하기란 쉽지 않아서다.
이에 이 교수는 해외의 적정사용 원칙은 참고하되, 국내 의료환경과 환자 접근성을 고려한 별도의 제도를 설계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 교수는 향후 국가비만관리종합계획에 성인 비만 집중관리 계획을 포함하고, 예방부터 진단·치료까지 체계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법적 기반 마련이 필요하다고 했다.
비만 방치 부담 연 23.4조원…의료비보다 생산성 손실까지
이날 비만 치료에 보험 적용 필요성을 뒷받침하는 경제적 근거도 공개됐다.

김원석 의정부을지대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한국 성인 비만의 경제적 부담과 중재의 잠재적 효과' 발표를 통해 국내에서 비만으로 인해 발생하는 연간 경제적 부담을 약 23조4000억원으로 추산했다.
환자가 직접 부담하는 의료비는 약 15조원이나 됐다. 출근은 했지만 업무 생산성이 저하되는 프리젠티즘(presenteeism) 손실은 약 7조8000억원이었다. 이 외에도 결근에 따른 손실(약 5750억원), 비만에 귀속되는 조기사망에 따른 경제적 손실(약 330억원) 등 우리 사회가 부담해야 할 적잖은 비용을 제시했다.

특히 과체중·비만 성인이 부담하는 의료비는 정상체중군보다 79~174% 높았다. 비만으로 인한 초과 결근은 연간 463만일, 근무 중 생산성 저하는 6260만일에 달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비만과 연관된 조기사망은 연간 약 1500명이었다.
김 교수는 이를 '비만의 미중재 비용(Cost of Inaction)'이라고 언급했다. 비만 치료에 들어가는 비용만 계산할 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비만을 관리하지 않았을 때 발생하는 의료비와 생산성 손실 등을 정책 판단 과정에서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체중을 5% 감량할 경우 제2형 당뇨병과 고혈압, 심혈관계질환 등 비만 관련 질환 발생 위험이 10~24% 감소한다"며 "25% 감량을 유지할 경우 위험이 줄어드는 폭도 31~56%까지 확대될 것"이라고 했다.
BMI 같아도 다른 건강 상태…1단계 비만 45% 이미 '임상적 비만'
비만을 바라보는 개념 자체가 달라지고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단순히 체질량지수(BMI)가 얼마나 높은지를 보는 데서 벗어나, 과도한 체지방이 실제 장기 기능 이상과 질병으로 이어졌는지를 함께 평가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청우 중앙보훈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2025 Lancet Commission이 제시한 '임상적 비만(Clinical obesity)' 개념을 소개하며 최근 비만을 보는 관점에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과도한 체지방과 함께 고혈압이나 대사 이상 등 객관적인 임상적 징후나 장기 기능 이상이 나타난 상태를 임상적 비만(Clinical obesity)으로 보고, 과체지방은 있지만 아직 임상적 징후가 없는 경우는 '전임상적 비만(Preclinical obesity)'으로 구분한다는 것이다.
실제 국민건강보험공단 표본코호트 34만9765명에 2025 Lancet Commission의 비만 진단체계를 적용한 결과, 2023년 기준 전체의 20.8%가 임상적 비만, 13.8%가 전임상적 비만(Preclinical obesity)으로 분류됐다.
특히 국내에서 통상 1단계 비만으로 보는 BMI 25.0~29.9kg/㎡도 45.3%가 이미 임상적 비만에 해당했다.
질병 부담 역시 컸다. 임상적 비만군의 고혈압 유병률은 83.2%였다. 비만이 아닌 경우의 22.9%보다 높았다. 대사 이상은 각각 48%와 17.5%, 간질환은 32.2%와 1.2%였다.
이 교수는 향후 비만치료의 건강보험 적용 기준을 검토한다면 BMI 단독 기준을 넘어 실제 임상적 징후와 기능 손상 등을 함께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이 교수는 향후 비만 치료나 건강보험 적용 기준을 논의할 때는 BMI 숫자만으로 구분하기보다 실제 임상적 징후와 기능 손상을 함께 평가해야 한다고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