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병원의사협의회 마상혁 고문

지역의료의 위기는 결국 사람의 문제다. 그런데 정부는 그 빈자리에 인공지능(AI)을 밀어 넣으려 한다. 오는 16일 정부와 학계가 여는 'AI 기본의료' 포럼은 의료 AI를 지역·필수·공공의료 붕괴의 열쇠로 내세운다. 그러나 분명히 하자. 수술은 AI가 할 수 없다. 한밤중에 실려 온 환자를 손으로 만지고 눈으로 확인하는 판단 역시 AI는 대신하지 못한다. 사람이 없어 무너지는 현장을 알고리즘으로 덮을 수는 없다. 지금 필요한 것은 더 빠른 발표가 아니라 더 정직한 진단이다.
우선순위부터 의심스럽다. 지난해 12월 이후 정부는 탈모 치료제 건강보험 급여화를 밀어붙였고, 7월 14일 국무회의에서는 임신중절약 '미프진' 처방을 의사 재량에 떠넘기자는 지시가 나왔다. 중증질환 환자들은 생명과 직결된 치료제 급여는 미루면서 미용에 가까운 탈모약에 재정을 쓰는 것은 주객전도라며 반발했다. 산부인과계 역시 입법 공백을 의사 재량으로 메우는 것은 사법 리스크의 전가라고 성토했다. 응급실 뺑뺑이와 소아·분만 붕괴가 눈앞인데, 국정의 에너지는 엉뚱한 곳에 쏠려 있다. 이런 인식으로 위기의 본질을 겨냥할 수 있는지 의심스럽다.
자기모순도 뚜렷하다. 지난 정권의 의대 2,000명 증원을 부당하다고 비판하던 세력이, 집권 후 2027학년도 490명을 시작으로 2031년까지 3,342명 증원을 확정했다. 규모만 줄었을 뿐 '공급을 늘리면 지역이 채워진다'는 접근은 그대로다. 의사협회도 환자단체도 반발했고, 심의에 참여한 의사협회장조차 결과를 되돌리지 못한 채 회원들에게 사과했다.
더 큰 문제는 진단이 없다는 것이다. 손영래 지역필수공공의료실장은 지난 20~30년 보건정책의 첫째 화두가 보장성 강화였다고 했다. 지역의료가 그만큼 오래 방치돼 왔다는 자백이다. 그렇다면 왜 무너졌는지부터 따져야 한다. 그런데 정부는 새 조직을 세우고 1조 2,614억 원의 특별회계를 편성한 뒤 그 위에 AI를 얹었다. 진단을 건너뛴 처방이다. 강릉의료원 최안나 원장은 "좋은 이야기가 판타지처럼 펼쳐졌을 뿐 무엇이 우선인지, 어떤 결과를 국민에게 주겠다는 것인지 목표가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고, 울산의대 조민우 교수는 "치료가능사망률 격차를 줄인다는 목표를 어떤 세부 계획으로 달성할지가 빠졌다"고 꼬집었다. 투입 목표만 있고 결과가 계량되지 않으면, 돈은 돈대로 쓰고도 무엇이 나아졌는지 알 수 없다.
의료는 1차·2차·3차 기관이 유기적으로 맞물려야 작동한다. 경증은 동네의원에서, 입원과 수술은 지역병원에서, 최종 치료는 상급병원에서 감당하고 다시 지역으로 회송되는 흐름이 살아 있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은 이 전달체계가 무너져 환자는 수도권 대형병원으로 쏠리고 의뢰와 회송의 고리는 끊겼다. 돈의 앞뒤도 맞지 않는다. 정부는 검사 수가를 깎아 연 2조 6000억 원을 아껴 필수의료에 3조 6000억 원을 재투자하겠다고 하지만, 이는 검사 재원을 깎아 메우는 돌려막기일 뿐 새로운 재원을 투입하는 결단이 아니다. 국회예산정책처는 이 개혁이 건강보험 재정에만 기대면 준비금 소진 시점이 2029년으로 앞당겨진다고 경고했다. 건강보험은 이미 올해 1분기에만 3조 9,000억 원의 적자를 냈다. 양질의 의료에는 정당한 비용을 치러야 한다. 그러나 정치권은 국고 투입과 수가 정상화에는 인색하고, 표를 겨냥한 선심성 지출에는 후하다. 비용을 치를 의지가 선별적이고 정치적이다.
AI를 만병통치약처럼 세우는 순간 진짜 병목은 가려진다. 지역의료는 의사만으로 굴러가지 않는다. 24시간 응급과 분만을 지탱할 숙련된 간호사, 영상과 검사를 다룰 의료기사, 약사가 함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들 인력 공백을 메울 대책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사람의 빈자리를 기계로 덮겠다는 발상은, 그 빈자리를 더 깊게 팔 뿐이다.
무엇보다 지역의료 붕괴는 지역소멸의 한 단면이다. 교육·일자리·주거가 함께 무너지는 곳에 의사만 남을 수는 없다. 지역 의사 부족의 뿌리는 수도권과 지방의 총체적 불균형이며, 그 해소 없이 지역의사제로 10년을 묶어도 의무복무가 끝나는 순간 이탈은 정해진 수순이다. 이것은 복지부 혼자 감당할 과제가 아니다. 국토·교육·산업이 함께 움직여야 할 구조 개혁을 한 부처가 예산과 조직으로 밀어붙이는 것은 무리다.
"그래도 특별회계와 AI로 무엇이라도 하는 편이 낫지 않은가"라는 반론이 있을 수 있다. 아니다. 방향 없는 투입은 방치보다 위험하다. 한정된 재원을 소진하고도 실패의 원인마저 흐려 놓기 때문이다. 무너진 곳간을 들여다보지 않고 새 지출부터 늘리면, 다음 세대가 갚아야 할 청구서만 커진다.
지역·필수·공공의료는 임기 안에 끝낼 일이 아니다. 정권이 바뀌어도 흔들리지 않는 일관성으로, 전문가와 오래 머리를 맞대야 하는 개혁이다. 순환보직으로 몇 년마다 자리를 옮기는 공무원 조직에 수십 년 축적이 필요한 전문성을 기대하긴 어렵다. 새 조직을 자랑하고 청사진을 서둘러 윗선에 올리는 것이 목표가 되면, 그것은 국민이 아니라 성과를 위한 정책이다. 진단 없는 처방, 재원 없는 약속, 사람 없는 자동화는 반드시 실패한다. 발표를 서두르기 전에, 진단부터 다시 하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