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준

[메디칼타임즈=박상준 기자]식품의약품안전처가 지난 5월 5일 GLP-1 계열 비만치료제(리라글루티드, 세마글루티드, 터제파타이드 함유제제)를 오·남용우려의약품으로 지정하겠다며 행정예고를 낸 이후 감감무소식이다. 당초 의견수렴 마감은 6월 26일. 7월로 예고됐던 고시는 석달째가 지난 지금도 여전히 나오지 않고 있다.
오남용 지정 명분은 명확했다. SNS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기적의 다이어트 주사'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의학적 적응증과 무관한 미용 목적 처방이 급증했다. 해외 직구와 개인 간 거래, 일본 등지로의 원정구매까지 늘었다. 정호 식약처 의약품관리과장이 직접 나서 추진 상황을 설명할 정도로 정부도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있었다.
식약처 규제영향분석서에 담긴 숫자를 보면 왜 이 사안이 무겁게 다뤄지는지 짐작할 수 있다. 국내 수입금액은 2024년 1699억원에서 2025년 1조709억원으로 6.3배 뛰었다. 시장이 이렇게 크는 동안 정부가 저울질한 건 표시자재 교체비용 2400만원이었다. 공익적 편익이 압도적으로 크다고 자평하면서도, 결론은 내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왜그럴까?
일단 학회는 오남용약 지정 자체를 반대하지 않는다. 대한당뇨병학회는 지난 6월 29일 성명에서 정부 취지에 공감한다고 밝혔고, 대한비만학회도 대체로 찬성 입장이다. 다만 학회들은 전문가 협의체 구성, 의학적 적응증에 근거한 처방기준 마련, 불법유통 단속 강화, 치료환자에 대한 공급안정성 확보, 정확한 정보제공, 그리고 급여화 논의 병행 등을 보완책으로 제시한 상태다.
대한비만학회는 학회로서는 처음으로 기자들 앞에 서서 이 문제를 거론했다. 그러면서 오남용의약품 지정이 계속 보류되고 있는데, 이것이 적정 관리의 시작이 되길 바란다고 애둘러 말했다. 하지만 무엇 때문에 지정이 미뤄지고 있는지는 주요 학회인만큼 잘 안텐데도 구체적으로 공개하지는 않았다. 4개 학회가 모여 앞서 10가지 보완책을 정리해 전달했다고만 했다.
하지만 취재 과정에서 많은 전문가가 접근성이 중요하다고 언급한 것으로 보아, 학회들도 가장 큰 핵심 안으로 지정 이후 치료가 필요한 환자가 제대로 치료받지 못하는 일, 즉 접근성에 대한 해답을 요구한 것으로 보인다.
과거 발기부전치료제는 별 잡음 없이 오남용우려의약품으로 지정됐다. 만성질환과 무관했기 때문이다. 반면 비만은 대사이상질환이다. 약을 끊으면 체중만 되돌아오는 게 아니라 당뇨, 심혈관질환으로 이어지는 병의 궤적 자체가 바뀐다. 청소년 처방 기준까지 이미 세밀하게 나뉘어 있는 약이다.
지정 이후 처방·유통이 까다로워져 정작 치료가 필요한 환자가 약을 구하지 못하면, 규제가 막으려 한 문제보다 규제가 만든 문제가 더 커진다. 정부가 신중해야 할 지점은 정확히 여기다. 즉 학회가 우려하는 건 규제의 유무가 아니라 규제의 부작용이다.
프로포폴은 향정신성의약품에 준하는 강력한 규제를 이미 걸어놨다. 그런데도 오남용은 끊이지 않는다. 지정이라는 딱지 한 장이 오남용을 막아주지 않는다는 증거가 이미 국내에 있다. 규제 강도와 오남용 근절 사이에 정비례 관계가 없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또 한 번 라벨을 붙이는 방식으로 문제를 풀려 한다.
일본은 이 문제를 라벨이 아니라 급여로 풀었다. 비만치료제를 건강보험 급여체계에 편입시키자 가격이 낮아졌고, 비만을 질병으로 보는 사회적 인식 자체가 바뀌었다. 비급여 시장에서 "대수롭지 않게 처방해도 되는 약"이라는 인식이 자란 한국과는 출발선이 다르다.
여기에 거버넌스 문제도 겹친다. 오남용 지정은 식약처 소관이지만, 급여화는 복지부 소관이다. 학회가 요구하는 수가지 중 절반 이상이 식약처 혼자서는 답할 수 없는 항목이다. 두 부처가 각자의 소관 안에서만 움직이는 동안, 문제는 부처 사이 틈으로 빠진다. 이런 구조에서 지정 여부만 붙들고 있어 봐야 답이 나올 리 없다.
식약처와 복지부가 지금 붙들고 있는 것은 지정 여부가 아닐 것이다. 지정 이후 치료 접근성을 어떻게 지킬지에 대한 답이 없을 뿐이다. 답이 없으니 지정을 미루고, 미루는 사이 시장은 겉잡을 수 없이 커진다. 합리적인 해법을 풀기 어렵다면 비만도 질병이라는 문제로 좀더 빠르게 접근해 급여도 정답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