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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의대 2학년 강지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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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날짜: 2026-10-06 05:00:00
  • 고려대학교 의대 본과 2학년 강지민

올해 들어 내 삶에는 병원 실습을 함께하는 동기들이 꽤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됐다. 무작위로 배정된 조원들과 하루의 대부분을 부대끼며 지내다 보니, 그들의 피곤한 기색부터 사소한 습관까지 자연스레 관찰하게 된다. 놀라운 것은 가까이서 본 이들에게 하나같이 내가 갖지 못한 무언가가 있었다는 점이다.

그 중심에 동기 A가 있다. 학생 교육관을 청소해 주시는 여사님께 A는 정말 매일같이 밝게 인사를 건넸다. 우리가 EMR을 보느라 분주할 때도, 솔직히 눈앞의 과제에 집중하다 보면 무심코 지나치기 쉬울 법한데 청소하러 들어오신 여사님께 A는 늘 밝게 눈인사를 건네고 무언가 살갑게 챙겨드리곤 했다.

처음에는 '왜 저렇게까지?'라며 위선이라 치부했다. 하지만 그 친절이 하루 이틀이 아니라 6개월 동안 한결같이 이어지는 것을 보면서, 나는 그것이 위선이 아니라 진짜 '선(善)'이라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A는 인성만 훌륭한 게 아니라 공교롭게도 공부까지 잘했다. 내가 장난스레 "너는 취미가 공부잖아~"라고 농담을 건네면, A는 전혀 거만해지지 않고 오히려 "나는 너처럼 확실히 '내 분야다!' 하고 파고드는 재능이 없어"하며 도리어 나를 치켜세워 주는 아이였다.

나보다 마음도 넓은데 공부까지 잘하는 그 아이의 존재는 나를 은근히 구석으로 몰아넣었다. 처음에는 내가 갖지 못한 그의 장점을 보는 일이 즐거웠고, 나도 저런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타인의 빛나는 모습을 오래 올려다보는 일은 종종 사람을 간사하게 만든다. 내 마음의 거울에 보기 흉한 파란 녹이 슬기 시작한 것은 아마 그 무렵이었을 것이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그들이 가진 것을 교묘하게 깎아내리고 있었다. 내가 닮고 싶다고 생각한 바로 그 사람을, 나는 동시에 질투하고 있었다.

"저건 별거 아니야. 나도 할 수 있는데 안 하는 것뿐이지. 나는 '굳이' 저렇게까지 하지 않는 거야"
'굳이'라는 마법의 단어가 붙는 순간, 나는 능력이 부족해 '못'하는 사람이 아니라 여유가 있어 '안'하는 사람이 된다. 열등감은 세련된 취향의 차이로 둔갑하고, 질투는 쿨한 가치관의 차이로 포장된다. 나이를 먹으며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기보다, 내 드높기만 한 자존심이 상하지 않을 만큼만 솔직해지는 법을 배운 탓이다.

그 끔찍한 간극을 발견하고 못난 나 자신을 차마 가만히 내버려 둘 수 없어질 때면, 나는 친한 친구를 찾아가 일종의 고해성사를 하곤 했다. "나 사실 이런 속 좁은 감정을 가졌어. 진짜 별로지?" 그러면 또다시 친구는, 너무나 다정하게도, 자신의 부끄러움을 마주할 줄 아는 내 모습이 멋지다며 위로를 건넨다.

하지만 그 다정한 위로는 내 죄책감을 덜어주기는커녕, '적어도 내 부끄러움을 아는 괜찮은 사람'이라는 또 다른 타이틀을 쥐여줄 뿐이었다. 그 안도감에 취해, 나는 진짜로 변해야 하는 가파른 등반을 제쳐두고 제자리에서 성찰을 핑계로 시간을 때우고 있었다. 질투를 인정했다고 질투가 사라지는 것도 아닌데, 나는 그 알량한 자각을 면죄부 삼아 진짜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한 고통스러운 노력을 유예해 버린 것이다.

이제는 인정해야 한다. 난, 질투가 난다. 난 나보다 똑똑한 동기들이 부럽고, 하기 싫은 일도 묵묵히 해내는 그들의 끈기가 부럽다. 기회가 왔을 때 빼지 않고 달려들어 훗날 후회를 남기지 않는 그 치열함이 부럽다.

내가 그토록 쿨한 척 '굳이'라는 단어 뒤에 숨었던 진짜 이유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나보다 훌륭한 동기들처럼 하기 싫은 일도 묵묵히 해낼 자신이 없어서, 온 힘을 다해 부딪혔는데도 내 밑천이 드러나고 기대만큼 해내지 못할까 봐 겁이 났던 것이다. '내가 진짜 했으면 잘했을 텐데'라는 가능성을 남겨두는 편이, 초라한 현실을 마주하는 것보다 훨씬 안락했기 때문이다.

어쩌면 내가 그들을 질투하는 이유는 그들이 나보다 뛰어나서가 아니라, 내가 되고 싶은 모습으로 이미 살아가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는 마음과, 나는 저렇게 될 수 있을까? 하는 의문 반 두려움 반이 나를 뒤덮을 때, 선망은 질투로 쉽게 뒤집혔다.

윤동주 시인은 밤이면 밤마다 파란 녹이 낀 거울을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아보자고 했다. 나 역시 내딴에는 나를 돌아본다, 성찰한다며 유난을 떨었지만, 사실 낯부끄러운 소리다. 내가 닦는 건 거울이 아니라 내 비겁함을 가려줄 세련된 필터였을지도 모른다.

이 글을 읽고 누군가 "자신의 치부를 이렇게까지 솔직하게 드러내다니 대단하다"고 말해준다면, 나는 또 그 반응에 기대어 속으로 안도할 것이다. '그래도 난 나를 성찰할 줄 아는 사람이니까'라고 스스로를 다독이겠지.

질투하고 있다는 걸 인정하는 건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진짜 어려운 건 그다음이다. 인정한 것을 딛고 실제로 내 삶의 태도를 바꾸는 것. 남들이 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궂은일을 해내고, 치열하게 부딪히는 그 자리에 나를 밀어 넣는 것.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난 아직 그럴 용기가 없다. 내 밑바닥이 다 드러나서 기대에 미치지 못하거나 못나 보일까 봐 여전히 겁이 난다. 이 글을 쓰는 지금 이 순간조차도 나는 멋진 참회록을 쓴 지식인인 척 흉내를 내고 있을 뿐이다. 거울을 닦는다고 당장 내 초라한 모습이 바뀌지는 않는다. 다만 지금의 나는, 그 부끄러운 얼굴을 똑바로 마주하고 서 있을 용기조차 없는 채로, 거울 앞에서 여전히 서성거리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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