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명대학교 의과대학 예과 2학년 박규리

계명대학교 의예과 2학년 2학기의 교육과정은 '대사와 세포 조절'이라는 과목명의 생화학 수업으로 시작한다. 이 수업의 악명은 자자하다. 재시험이 없기 때문에. 교수님께서 지난 학기의 시험 문제를 제공해주시기 때문에. 그렇지만 무엇보다, '생화학'이기 때문에.
이 과목의 교재인 'Principles of Medical Biochemistry'의 서문은 이런 문장으로 시작한다. "의학 계열 공부를 시작하는 학생들 사이에서, 생화학이 '예기 스트레스 장애(pretraumatic stress disorder)'—참기 힘든 스트레스와 좌절을 앞두고 사람들이 빠져드는 심리 상태—를 유발하는 가장 흔한 원인이라는 소문이 있다. 이러한 편견은 이해할 만하다"
내 생각에 PreTSD는 생화학 한 과목만을 두고 비롯되지 않는다. 의대의 공부량은 의대 밖에서도 소문이 흉흉하지 않은가. 인터넷에는 사람 키만큼 쌓아 올린 학습 자료의 사진이 돌고, 여러 사람을 만날수록 괴담은 늘어간다. 72시간을 깨어 있던 사람, 시험 전날 깜빡 잠들어 버려 울면서 시험을 치러 간 사람, 공부를 하다 면역력이 너무 떨어진 나머지 결핵에 걸린 사람… 본과 생활에 대한 PreTSD 증상이 심각해진다.
이 메아리 속에서 우리는 스스로 이 길을 선택했다는 것을 잊기 쉽다.
시험이 임박한 어느 날, 동기들과 학식을 먹으며 오손도손 불평불만을 나누고 있었다. 현역으로 합격한 동기가 이렇게 말했다. "의대생이 아닌 내 친구들은 여행도 가고 연애도 하고 알바도 하면서 청춘을 만끽하는데, 난 여기서 뭐 하는 거지? 너무 억울해!" 지금 생각하면 가벼운 투정에 불과했다. 그런데 나는 이렇게 답했다. "정말 그게 부당하다고 생각하면 자퇴하면 되지. 자퇴를 못 할 이유는 없어"
그토록 비정하게 답했던 이유는 뭘까. 그의 무지를 시기했기 때문이다. 나는 이전 학교를 무려 다섯 학기나 다녔다. 그동안 동기가 부러워했던 청춘과 얼핏 비슷한 삶을 살았던 것 같다. 휴학도 해보고, 여행도 다니고, 다양한 동아리 활동도 즐기며 아주 느슨하게 학교를 다녔다. 휴학 없이도 이미 6년을 담보 잡혀 2주마다 시험을 치는 의과대학 생활과는 물론 다르다. 그러나 그 길엔 그 길 나름의 고난과 불안이 있다.
우선 학업에 정답이 없다. 의대에서는 족보 속 정답을 머리에 밀어넣지만, 사회과학도에게는 오히려 그 답을 의심하는 태도가 요구된다. 커뮤니케이션 이론을 익히면 그 이론에 반박할 수 있는 사례를 찾아야 했고, 고전을 독해한 후에는 이미 나온 해석과 다른 새로운 관점을 제시해야 했다. 심지어 무엇을 공부할지조차 스스로 정해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나에겐 그게 너무 어려웠다. 흥미롭고 재밌었지만, 잘하지 못했다.
또, 학업만으로는 자신을 증명할 수 없다. 꾸준히 스스로를 펼칠 기회를 찾아 나서야 했다. 좋아하거나 잘하는 일이 있다면 동아리와 학회, 각종 대회를 통해 입증하고 확장하는 게 당연했다. 동아리가 없다면 만들었고, 무대가 없다면 스스로 마련했다. 그들은 모두 사회의 변화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빠르게 반응한다. 대부분의 의대생이 정해진 길 위에서 속도를 겨룬다면, 이들은 길 자체를 만들어나가는 데 몰두한다. 나는 스스로 일궈 나가는 데에 미숙했다.
이런 차이는 결국 미래가 얼마나 담보되어 있는가에서 비롯된다. 의대에 입학한 순간 약 10년간의 행보는 이미 정형화되어 있다. 반면 타 전공생의 길은 무궁무진하다. 어떤 진로가 가능한지 끝없이 탐색하고, 매 순간 선택해야 한다. 마치 퍼즐 조각을 맞추듯, 나라는 존재가 가진 많은 돌기와 홈을 사회의 여러 틈에 맞춰보아야 한다. 다만 나라는 조각은 손톱만큼 작고, 세상이라는 퍼즐판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 그 안에서 몇 번이고 다시 맞춰보지만, 꼭 맞는 곳은 좀처럼 없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자신의 쓸모를 의심하게 된다.
다시 말해 자유로운 만큼 불안하다. 불안이 조금씩 조금씩 나를 갉아먹던 중, 마지막 학기의 '영화론' 수업이 방아쇠를 당겼다. 기말 보고서의 주제는 수업 시간에 다룬 영화들 중 한 편을 선정해 '수업 시간에 언급하지 않았던 새로운' 분석을 수행하는 것. 나는 그 수업을 퍽 좋아했다. 그 수업을 사랑했기 때문에 과제를 정말 잘하고 싶었다.
그런데 영화를 다섯 번 돌려 보고, 며칠 밤을 새워도 만족스러운 '새로운' 분석을 할 수 없었다. 수업 시간에 교수님이 제시해 준 해석을 요약하거나 외울 수는 있었다. 그러나 교수님이 말하지 않은 것을 고안해낼 수는 없었다. 끝내 과제를 제출하지 못하고 F를 받았다. 절망적이었다. 해낼 때까지 불안을 인내할 만큼 사랑하지 못했다. 곧 휴학계를 제출했다.
그렇게 나는 자유로부터 도피했다. 의학에 비해 다른 전공은 스스로를 펼칠 수 있는 공간이 넉넉한 편이다. 뒤집어 말하면 그만큼 직접 일구어야 하는 것도 많다. 되묻고, 뒤집어 보고, 직접 답해야 하는 삶. 비슷할 수밖에 없는 젊은이들 사이에서 나의 남다름을 증명하기 위해 고군분투해야 하는 삶. 유급의 불안 대신 부유(浮游)의 공포가 도사리는 삶. 그건 시험을 치르면 점수가 나를 보장하는 것과는 질적으로 다른 전전긍긍이다.
나는 그런 유의 긴장을 도무지 견딜 힘이 없어 재수를 선택했다. 대단하다고, 용감하다고 말해주는 지인들도 더러 있었다. 그러나 단 한 번도 그 선택이 나를 치열하게 연마하는 방향이라 여긴 적 없다. 나는 정답이 없는 질문에서 도망쳤다. 적히지 않은 것을 읽어내기를 포기했다. 겸손이 아니다. 무지와 백지에 전면으로 맞서는, 끊임없는 창조의 고통에 스스로를 던지는 나의 멋진 학우들을 잊을 수 없다. 그에 비하면 나는 그저 두 발을 땅에 붙이고 안전하게 서 있을 뿐이다.
PreTSD는 미래를 예견할 수 있기에 비롯된다. 예견할 수 없다면 두려워할 수조차 없다. 잇단 시험에서 오는 불안이 아니라면, 자유를 덧쓴 더 큰 불안을 마주할 수도 있다는 걸, 나의 동기는 짐작할 수 있을까? 지적 주체성을 곧추세워야만 하는 그 긴장감. 망망대해 속에서 자신의 쓸모를 거듭 반문하게 되는 그 막막함. 넌 그걸 모르겠지.
그런 까스러진 마음에 모진 말로 톡 쏘아붙이고 만 것이다. 내 딴에는 위로 아닌 위로이기도 했다. 멀리서 보면 우리의 전전긍긍은 얼마나 작은지, 제도 안의 불안을 누리고 싶어도 못 누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그리하여 우리는 얼마나 큰 행운을 타고난 것인지 말해주고 싶었다. 다행히 못난 언행에도 동기는 너그러이 나를 용서해주었다. 아냐, 언니. 언니 덕에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어.
이 기억이 오래도록 다시 생각나는 이유는, 크게 미안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동기보다는 나 스스로에게 그 말을 하고 싶었기 때문인 것 같다. 나 역시도 시험에 치이다 보면 이 길이 다른 누구도 아닌 나의 선택이라는 걸 잊고 만다. 꾸준히 되새겨야만 한다. 세상의 수많은 전전긍긍 중에 이 전전긍긍을, 내가 선택했다는 것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