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부인과의사회, 가교임상·법률 정비 요구 "안전 우선"
야간 마취과 초빙 건당 100만 원…분만 건수 지원 한계

[메디칼타임즈=김승직 기자] 임신중지약 도입 논의가 활발한 가운데, 일선 현장에서 약물 투여 이후 응급수술이 필요할 시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반문이 나왔다.
분만병원들이 24시간 의료인력을 유지하는 데 막대한 비용을 부담하고 있지만, 현행 지원 체계로는 이를 감당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25일 대한산부인과의사회는 학술대회 기자간담회를 열고 이같이 밝혔다. 이날 의사회는 임신중지 의약품인 미프진 도입을 가장 시급한 현안으로 꼽았다. 약물 접근성 확대에 앞서 여성의 안전을 확보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부터 마련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대한산부인과의사회 김재연 회장은 임신중지 의약품 도입 과정에서 가교임상과 관련 법률 정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약물 투여 이후 발생할 수 있는 응급 상황에 대비한 의료체계가 충분히 구축되지 않았다는 우려다.
일본의 사례를 언급하며 의료기관 내 투약과 환자 상태 관찰 등 안전망 확보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의약품 도입에 앞서 국내 의료환경에 적합한 검증과 관리 체계가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김 회장은 "법률이 개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낙태약이 도입되면 어떤 문제가 발생할 것인지 심각하게 생각해야 한다"며 "안전성이 확보되지 않고 가교임상도 없는 상태에서 약물을 도입하는 것은 국민을 상대로 실험하는 것과 같다"고 지적했다.
이어 "산부인과 의사 입장에서는 약물 도입과 더불어 여성의 건강을 유지할 수 있는 인프라가 가장 중요하다"며 "응급 상황에 대처할 네트워크와 시설, 수술 준비 등 모든 관리가 적정하게 이뤄지는 시스템을 정부가 만들지 않은 상태에서 무리하게 도입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저출생 관련 우려도 제기했다. 김 회장은 최근 출생아 수가 증가하고 있지만 출산 연령대 여성 인구가 감소하면서 향후 출생아 수가 다시 줄어들 수 있다고 전망했다. 임신중지 의약품 도입이 장기적인 인구 정책에 미칠 영향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제언이다.

분만 인프라 유지 문제도 주요 현안으로 다뤄졌다. 의사회는 현재 정부의 분만 지원 정책이 분만 건수에 따른 보상에 집중돼 있어, 분만 건수가 적은 의료기관의 운영난을 해결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분만 건수가 많은 의료기관은 상대적으로 높은 지원을 받을 수 있지만, 지역에서 필수적으로 분만실을 유지해야 하는 중소병원은 고정적인 인건비와 시설 유지비를 감당하기 어렵다는 것. 이에 분만 건수와 별개로 분만실 유지에 필요한 최소 비용을 국가가 지원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김 회장은 연간 300건 안팎의 분만 실적을 손익분기점으로 언급하면서, 이에 미치지 못하는 의료기관의 적자에 대한 별도 보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다만 지역마다 인건비와 운영비, 분만 수요가 다른 만큼 실제 경영 상태를 조사해 지원 수준을 결정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실제 분만병원 운영에 필요한 고정비를 보여주는 사례도 제시됐다. 대전에서 분만병원을 운영하는 이석수 대의원회 간사는 분만실과 입원실, 신생아실을 24시간 운영하기 위해 최소 30명 이상의 인력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 간사가 운영하는 병원의 경우 1인당 월평균 인건비를 300만 원으로 가정하면 매달 약 9000만 원이 소요된다. 여기에 야간 응급분만을 위한 마취과 전문의 초빙 비용도 건당 100만 원 이상 발생한다는 설명이다.
현행 지역 가산제도가 오히려 의료기관 간 격차를 키우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서울 등 특별시와 광역시가 지역 가산 대상에서 제외된 반면, 일부 지역의 분만 건수가 많은 병원에 지원이 집중되면서 주변 중소병원은 오히려 어려워지고 있다는 것.
이 간사는 "저희 병원만 보더라도 24시간 분만을 위해 최소 30여 명 이상의 인력이 필요하고 인건비만 대략 월 1억 원 정도 발생한다"며 "분만을 하든 하지 않든 유지해야 하는 비용인데 분만 건수가 적은 병원들은 이를 감당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기철 부회장은 과거 시행됐던 차등 분만 수가 지원사업을 다시 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분만 건수가 적은 병원에 높은 수가를 적용하는 시범사업이 시행됐으나 상시적인 제도로 정착하지 못했다는 설명이다.
이 부회장은 "지역에서 유일하게 남아 있는 분만병원조차 원가를 감당하지 못해 사라지고 있다. 기존 병원을 유지하는 데 드는 비용보다 나중에 새로 만드는 데 훨씬 많은 비용이 들어간다"며 "지금 운영하고 있는 병원들이 몇 년이라도 더 유지될 수 있도록 지원책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기자간담회에선 차기 대한산부인과의사회 집행부의 비전도 소개됐다. 차기 회장인 김진학 수석부회장은 지난 20여 년간 의사회에서 보험이사와 총무이사, 보험부회장 등을 맡아온 경험을 바탕으로 회원 권익 보호에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의료분쟁에 따른 법적 위험을 줄이고 수가 현실화를 추진하는 데 주력하겠다는 계획이다. 이와 함께 회원들과의 소통을 강화하고 심포지엄과 워크숍 등 학술 활동을 확대해 조직을 활성화하겠다는 목표도 제시했다.
김 차기 회장은 "산부인과뿐만 아니라 모든 임상과가 지금 위험에 처해 있다"며 "지금까지 20년간 의사회 활동을 하면서 겪은 경험을 바탕으로 법적 리스크 완화와 급여 수가 현실화, 회원들과의 소통 강화에 힘쓰겠다"고 밝혔다.
이 밖에도 의사회는 검체검사 위수탁 제도 개편과 난임 치료, 의료분쟁 조정제도, 비대면 진료 등 산부인과 현안에 대한 개선을 요구했다.
우선 검체검사 위수탁 제도 개편에 따라 월 100건의 분만을 시행하는 병원에서 약 890만~900만 원의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고 추산했다. 정부가 심층 상담료와 질강처치료 등 수가 개선을 검토하고 있지만 실제 손실을 충분히 보전하기는 어렵다는 우려다.
난임 치료와 관련해서도 약제비와 시술 비용 부담을 줄이기 위한 수가 현실화, 단일 배아 이식 보상, 심리 상담 지원 등을 요구했다. 의료분쟁조정 관련 하위법령에는 분만과 응급수술 등 고위험 필수의료 행위를 명시하고 중대과실 판단 기준을 구체화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비대면 진료에선 응급피임약과 임신중지 관련 의약품을 처방 대상에서 제외하고, 비정상 출혈이나 골반통 등 대면 진찰이 필요한 경우에도 관련 진료를 제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산부인과의사회 조병구 총무이사는 "산부인과는 비정상 출혈이나 골반통으로 환자가 내원했을 때 단순히 약으로 해결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이런 환자들은 직접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유도하는 장치가 필요하다"며 "비대면 진료는 불완전한 진료일 수밖에 없는 만큼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사고에 대한 책임 소재도 명확하게 규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