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칼타임즈-부천시의사회, "의료계 자율정화 필요"
[창간 4주년 특별기획= 취중 토크]안창욱 기자: 정신과는 다른 진료과에 비해 환자들과 긴 시간 상담을 하기 때문에 신뢰가 중요한데 입원 환자를 강제 수용하고 있다는 부정적 사례들이 언론에 나오면서 부정적인 이미지가 적지 않은 것 같다.
메디칼타임즈는 최근 목동의 한 음식점에서 부천시의사회 김제헌 회장, 정현종 공보이사, 이언석 부총무와 만나 술잔을 기울였다. '소통'을 주제로 한 창간특집의 취지에 맞춰 진료실에서 벌어지는 일과 의사들의 고뇌, 비전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눴다. [편집자 주]
----------취중 토크 참석자----------
△김제헌 신경정신과의원장(부천시의사회장)
△장현종 부천 기병원장(부천시의사회 공보이사)
△이언석 여강병원장(부천시의사회 부총무)
△메디칼타임즈 안창욱, 장종원, 이지현 기자
김제헌 원장: 지금은 아니지만 OO정신병원이라고 하더라도 정신과 전문의가 한두명에 불과할 정도로 열악했던 때가 있었다. 당시 새마을운동이다 뭐다 해서 노숙자들을 정신병원으로 마구 보낸거지. 그러면서 정신병원이 환자를 수용하는 등의 부정적 인식이 생겼고 그것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지현 기자: 얼마 전 통영에서 수면내시경 중 환자를 성폭행 한 의사가 적발돼 충격을 줬다. 의사로서 어떻게 생각하나.
김 원장: 그 놈이 진짜 우리 환자지.(웃음.김 원장은 정신과 전문의다)
장현종 원장: 병적인 상태에 놓인 사람들 질 관리가 필요하다. 윤리적으로 더 중요한 직업이다.
김 원장: 어찌 보면 개인의 문제인데 신문에서는 ‘정신 나간 의사’ ‘변태적인 의사’라고 때린다. 의사를 강자라고 보는 것 같다. 의사와 국민이 싸우면 의사가 백전백패할 수 밖에 없다.
뉴스거리가 안되지. 전문직에 문제가 있고, 그중 의사가 있다고 하면 그건 기사가 되지. 외국 오지에 의료봉사를 가도 신문 구석자리에 조그맣게 나온다. 그건 의사들이 당연히 해야 하는 걸로 안다.
실제로 의사들이 사회적으로 얼마나 고생하는지, 외국에 나가서 어떻게 의료봉사하는지 좀 보여줘야 한다.
안 기자: 1%도 채 안 되는 문제 의사들에 대해서는 징계를 해서 의료계가 도덕적으로 맑고 투명하다는 걸 보여줄 필요도 있지 않느냐.
김 원장: 그래야지. 잘라야지. 아직까지 그런 걸로 징계권을 준 적이 없다. 그런데 예를 들어 누군가 문제가 있어 징계를 하려고 하면 이 친구가 다른 의사들까지 물고 들어가려는 그런 게 있더라. 나 혼자 죽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 그렇게 물고 들어가려는 게 있다.
의사 사회 내부에서도 자율정화가 필요한데… 변호사는 자율징계권이 있다. 가끔 국민들에게 보여주는 거지. 모 변호사가 문제가 있어서 변호사협회가 3개월간 자격정지시켰다고 하면 언론에서 신나게 기사를 쓴다. 그럼으로써 나머지 변호사들은 절대 그렇지 않다는 걸 보여주는 거지.
이런 것처럼 의사들도 한 번씩 보여줄 필요가 있다. 의료계 스스로 잘못을 저지른 의사를 솎아내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안 기자: 의사와 환자관계에서 ‘라포르’가 가장 중요하다고 하는데 아직 진료시 내에서 환자와 라포르가 살아있나.
김 원장: 그럼, 그래도 아직은 라포르가 어느 정도 되고 있다고 본다.
안 기자: 일반적인 얘기인가?
김 원장: 비뇨기과도 그렇고 산부인과도 그렇고 아직은 대부분의 과에서 의사와 환자 사이가 도덕적으로 유지하고 있다. 라포르가 무너진 것 같지만 예상외로 그렇지 않다.
안 기자: 라포르가 앞으로도 계속 형성될 수 있을 것이라고 보나.
김 원장: 될 것이라는 것 보다 우리가 희망하는 것은 어쨌든 유지가 되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게 의사가 해야 할 일이고….
내가 생각해 보면 앞으로 몇 년간은 의사의 신뢰가 더 추락할 것 같다. 왜냐하면 지금 10년 동안 우리 의사에 대해 인식을 심어준 게 있다. 의사는 나쁜 놈, 가진 자, 강자라고 세뇌가 돼 있다.
그렇다고 몇 년 뒤 약자가 되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지금처럼 강자가 아니라는 건 될 것 같다는 얘기다.
안 기자: 우리나라 수가는 어떤가.
김 원장: 여기서 우리가 수가 얘기를 하는건 정말 허공을 떠도는 얘기뿐이다. 국민들은 조금 내고 의료 보장은 많이 받길 원해. 서비스만 요구하니 인프라가 될 수가 없지. 옛날이긴 하지만 선배 하나가 미국에서 정신과의원을 하고 있어 가보니까 컨설턴트 비용만 100불이고 예약 접수하면 또 100불이더라. 그만큼 의료에 대해 값을 지불하고 서비스를 받는다는 얘기다.
또 친척이 미국에서 의사를 하는데 하루에 몇 명 보냐고 물어보니 12명 본다고 하더라. 난 그때 성가병원에서 40명 볼 때였다. 그랬더니 친척이 ‘너 정신과의사 맞냐’고 하더라. 그게 우리나라 현실이다. 난 어쩔 수 없이 40명 봐야했다. 그래야 월급 받으니까….
미국은 사보험이 완벽하게 돼 있지만 의사와 국민간 라포르는 더 안된다. ‘내가 너한테 그만큼 돈을 줬는데 어떻게 이렇게 치료를 할 수 있냐’ 이런 인식이 강하기 때문에 의사가 조금만 잘못해도 100% 소송에 휘말리는 것이다.
이 기자: 지금은 병원장이지만 한 때 재활의학과 개원의였다. 진료실에서 환자와 마찰이 생길때는 언제인가.
이 원장: 글쎄. 솔직히 저는 환자들과의 마찰이 크게 없었는데…. 환자가 원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파악하려고 하고 그들이 말하는 걸 들어주려고 하다보면 마찰이 크게 있을 게 없더라. 의사로서 마찰없이 진료를 볼 수 있다는 것도 큰 복이라 할 수 있다.
이 기자: 그러면 우리나라 의사가 권위주의적이라는 데 불만이 많았겠다.
이 원장: 절대 아니다. 레지던트때만해도 어깨에 얼마나 힘이 들어가 있었는지…. 사실 그 때면 별것도 아니면서 괜히 목이 뻣뻣해져서는 환자들한테 인사도 안하고 그랬다. 그야말로 권위주의적이었지. 그런데 섬지역 공보의를 하면서 섬에서 환자를 보다보니 그동안 내가 얼마나 목에 힘이 들어가 있었는지에 대해 깨닫게 됐다. 그리고 진정한 의사란 목에 힘주는 의사가 아니라 환자를 보살피는 의사라는 생각이 들었다.
안 기자: 노인인구는 늘어나고 보장성이 강화되고 있어 앞으로도 정부의 저수가 기조가 유지될 것 같다. 반면 환자들의 요구수준은 높아지고 있어 의료계와 충돌이 더 빈번해질 수도 있지 않겠느냐.
장 원장: 의료계 내부에서도, 유사의료행위 등 타영역과도 앞으로 경쟁이 더 심해질 것이라고 본다. 의료계가 주도권을 잡고 영역을 넓혀가고 정책적으로도 주인의식을 갖고 나서야할 것 같다. 의사들 자신이 스스로의 역량을 깨달아야 한다.
안 기자: 요즘 환자들이 약다고들 하는데 정말 그런가.
김 원장: 옛날에는 다른 사람의 건강보험증을 갖고 다니는 사람이 많아 한동안 제법 문제가 됐었다. 공단에서 ‘오지도 않은 환자, 죽은 환자, 해외에 있는 환자가 청구했다’고 보도자료를 냈는데 사실은 며느리가 시어머니 보험증을 들고 와 진료받다가 시어머니가 죽은 후에도 계속 그 보험증을 사용하니까 죽은 사람까지 청구했다는 얘기가 나오게 된 것이다.
얼마나 재미있는 일인가. 산부인과에서 남자가 애를 낳았다고 기사가 났는데 알고보니 주민등록번호를 잘못 기입해서 생긴 해프닝이었다. 하지만 국민들은 산부인과의사들 나쁜놈하고 생각하겠지.
안 기자: 잘못된 사실은 의료계가 나서서 바로잡아야 하지 않나.
김 원장: 대응 했지. 당시 의협에서 반박 보도자료를 만들어 언론에 보냈지만 이미 끝난 얘기더라. 뉴스거리가 안되는거지. 애초 그런 자료를 만든 공단과 심평원이 나쁜데 기사를 쓴 건 기자니까 누구한데 항의를 해야 할지 애매해지더라.
의사들은 담장 위에 있다고 표현한다. 한쪽은 교도소고 한쪽은 광명이지. 평생 담장 위를 걸어가다가 퇴직할 때쯤 광명으로 내려가 조용히 사는 거다. 중간에 교도소로 떨어지는 사람도 많다.한마디로 우리 의사들도 언제든지 스스로 범법자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살아야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