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윤리 외면하면 외부 세력에 끌려다닌다"

발행날짜: 2010-11-02 06:50:56
  • 의료계, 능동적으로 먼저 움직여야 환자 신뢰 회복

|기획|의료윤리, 현재와 미래를 말한다

프로포폴 불법 투약, 내시경 성추행 사건 등 불미스러운 일이 잇따라 발생하면서 의료윤리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또한 일련의 사건들은 의사들에게 ‘과연 나는 의료윤리를 지키고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메디칼타임즈는 우리나라의 의료윤리 현주소를 살펴보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해 본다. -편집자주-

============<글 싣는 순서>=================

상> 의료계에 확산되고 있는 의료윤리
중> 끌고 갈 것인가, 끌려갈 것인가
하> 해외 의료윤리 어디쯤 와있나
지난 9월 개원의 중심의 의료윤리연구회가 창립하면서 의료계가 내부 자정활동에 힘을 받고 있다. 귀찮고 성가신 ‘의료윤리’에 대해 공식적으로 논의하고 앞으로 나아가야할 방향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이에 동참한 의사들은 자존감을 되찾고 있다.

반면 얼마 전 발생한 프로포폴 불법 투약 사건은 의사들의 진료권을 통제하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다. 사건 이후 정부는 '마약류관리에 관한 법률 시행령 일부개정령(안)‘을 통해 프로포폴을 향정신성의약품으로 지정하겠다고 밝혔다. 향정약 처방에 통제를 받게 된 의사들은 강하게 거부했지만 정부는 여전히 입장을 바꾸지 않고 있다.

최근 의료계에서 이슈가 된 두 사례는 의료윤리의 양면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이를 두고 의료윤리연구회 이명진 회장(명이비인후과 원장)은 “의료윤리는 끌고 나가면 굉장한 힘을 얻지만, 끌려가기 시작하면 윤리에 지배를 당한다”고 말했다.

의료윤리연구회와 같이 윤리에 대해 먼저 주장하고 방향을 제시하면 외부로부터 신뢰를 얻고 힘을 가질 수 있지만, 의료윤리에 반하는 행동을 했을 땐 외부로부터 감시당하는 것은 물론 지배받게 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결국 의료계가 의료윤리를 끌고 가느냐, 끌려 가느냐에 따라 외부의 평가를 극과 극으로 나뉘게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A비만클리닉 김모 원장은 얼마 전 모 소비자고발 프로그램이 비만클리닉의 식욕억제제 남용 관련 보도 이후 한동안 환자가 크게 줄어 곤혹을 치렀다. 평소 꾸준히 진료를 받던 환자도 약 봉지를 들고 찾아와 이대로 먹어도 되는 게 맞느냐고 물었다.

김 원장은 자신의 처방을 감시받고 있다는 생각에 불쾌감을 느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는 이어 “의사와 환자의 신뢰가 깨진다는 것은 결국 환자에게 악영향을 준다”며 “환자에게 맞는 약을 처방했다고 해도 환자가 의사를 신뢰하지 못하면 의사의 지시를 따르지 않을 것이고 결국 치료 효과는 낮아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와 같은 문제는 진료실에서 비일비재하다.

△불법 낙태시술 △진료실 내 환자에 대한 에티켓 연명치료 중단 등 개원의들은 수시로 의료윤리의 길을 걸을 것인가, 비윤리적인 행위를 범할 것인가의 여부를 결정해야하는 상황에 맞닥뜨리고 있다.

이에 대해 이명진 회장은 “의료계가 먼저 의료윤리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고 자정활동을 꾸준히 했다면 정부 등 외부로부터 통제를 받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며 “진료수가가 싸구려라고 의료윤리까지 싸구려가 돼선 안된다”고 강조했다.

연세대 의과대학 이일학 교수(의료윤리학과)는 “과거 의사 선생님에서 의사 아저씨로 전락한 의사의 권위를 되찾아야 한다는 게 동기를 부여해줄 수 있다”며 “제도적으로 접근하기보다는 비전을 제시함으로써 적극적인 참여를 이끌 수 있다”고 말했다.

가천의과대학 이성낙 명예총장
“의사도 약을 처방할 때 윤리적으로 선택하기 힘든 순간이 있다. 이땐 환자가 내 가족이라면 어떻게 할까 생각하면 된다.”

가천의과대학 이성낙 명예총장은 이 같이 말하며 “의료윤리를 지키는 것은 환자를 가족처럼 여기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환자에게 얘기를 할 때에도 ‘나라면 이렇게 하겠다’ ‘내 가족이라면 이렇게 하라고 한다’는 식으로 얘길 해주면 환자도 나를 신뢰하게 되고 자연스럽게 라포가 형성된다”고 말했다.

반면, 이 명예총장은 우리나라의 심각한 저수가 환경에 대해서는 강력하게 이의를 제기했다.

정부는 의사들이 의료윤리를 지켜나갈 수 있도록 저수가 체제를 바꿔야 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그는 “의사를 너무 배고프게 만들면 악순환만 계속되는 것”이라면서 “현재 의료계의 저수가 체제가 계속된다면 의사들의 비윤리적 행위는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그는 이어 “정부가 낮은 수가를 지급하면서 의료기관에 대해 높은 윤리성을 요구하다보면 부작용이 발생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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