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낙천 원장, 제14회 의인미술대전 대상 영예
"거화취실(去華就實)"
첫 인상부터 단단하다는 느낌이 든다. 의사라기 보다 선비랄까. 수상 소감을 묻는 질문에 대뜸 '거화취실'이란 화두를 던진다. 전북에서 한사랑의원을 운영하고 있는 한낙천 원장이다.
제14회 의인미술대전 대상의 주인공은?
서울 그랜드 힐튼 호텔에서 13일부터 15일까지 의협 종합학술대회가 열렸다. 미술을 좋아하는 의사들에겐 또 다른 재미가 있는 날들이었다.
같은 기간, 그랜드힐튼 호텔 컨벤션센터에서 제14회 의인미술전람회가 열린 것. 한국화·양화·서예·사진 등 100점이 전시된 이번 전시회의 주인공은 한낙천 원장이다.
한 원장의 사군자 작품이 의인미술전람회 대상의 영예에 선정된 것.
대상 소감을 묻자 그는 "수상 소식을 들었을 때도 그리 기쁘지는 않았다"고 덤덤히 털어놨다. 애시당초 상이 목적이 아닌데다가 서예는 그의 인생에서 상 이상의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거화취실." 화려함을 버리고 실체를 추구해야 한다는 간단한 진리. 선비를 떠올리게 하는 용모에서 나온 그럴싸한 대답이다.
서예 필력 20년째…"아직도 목마르다"
언제부터 서예를 시작했을까. 때는 1992년, 그의 29살 시절이다.
"전문의를 따고 나서 한숨 돌릴 때였습니다. 문득 앞으로 뭘하며 살아야 참 인간살이인가에 대한 궁금증이 들더군요. 그때부터 장자나 논어 등 인간 본질을 탐구한 책에 파묻히기 시작했습니다."
인간 본성과 참 인간살이에 대한 궁금증이 곧 고전의 탐독으로 이어졌다는 것. 거기에다 이런 철학을 그림으로 표현하면 더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성과 감성의 합치라는 갈증은 스스로 풀기 어려웠다. 그 갈증을 풀기위해 선생님을 찾아갔다.
"산민(山民) 이용(李鏞) 선생에게 서예를, 소당(素堂) 김연익(金蓮翼) 선생에게 사군자를 배웠습니다. 일주일에 한번씩 선생님께 찾아가 가르침을 얻었죠. 진료를 마감하고 집에 와서도 하루 두시간씩 붓을 잡습니다."
그렇게 배우기를 벌써 20년째. 그런데도 그는 "부족하기만 하다"고 부끄러워한다. 한눈에 '경지'가 드러나 보이려면 최소 30년은 해야한다는 것이다. 그는 딱 10년의 수련이 부족한 셈.
진료 틈틈이 서예…"환자가 보이고 나도 보인다"
"진료실 한켠에 서예 도구들을 구비해놨습니다. 환자가 없을 때는 붓을 잡아보곤 합니다. 시간이 날 때마다 서예 연습을 해보니 내가 보이고, 환자도 보이더군요."
딴은 이렇다. 붓을 잡고 한획 한획 긋는 순간, 자신이 진료에서 경솔했던 부분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된다는 것. 서예가 그에겐 자신을 반성하는 거울이 된다는 소리다.
수상 작품은 어떻게 하겠냐는 질문에 그는 "가까운 이웃이나 친구가 개원하면 주겠다"고 간단히 답했다. '거화취실!' 깨닫지 못한 자의 우문에 깨달은 자의 현답이다.
첫 인상부터 단단하다는 느낌이 든다. 의사라기 보다 선비랄까. 수상 소감을 묻는 질문에 대뜸 '거화취실'이란 화두를 던진다. 전북에서 한사랑의원을 운영하고 있는 한낙천 원장이다.
제14회 의인미술대전 대상의 주인공은?
서울 그랜드 힐튼 호텔에서 13일부터 15일까지 의협 종합학술대회가 열렸다. 미술을 좋아하는 의사들에겐 또 다른 재미가 있는 날들이었다.
같은 기간, 그랜드힐튼 호텔 컨벤션센터에서 제14회 의인미술전람회가 열린 것. 한국화·양화·서예·사진 등 100점이 전시된 이번 전시회의 주인공은 한낙천 원장이다.
한 원장의 사군자 작품이 의인미술전람회 대상의 영예에 선정된 것.
대상 소감을 묻자 그는 "수상 소식을 들었을 때도 그리 기쁘지는 않았다"고 덤덤히 털어놨다. 애시당초 상이 목적이 아닌데다가 서예는 그의 인생에서 상 이상의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거화취실." 화려함을 버리고 실체를 추구해야 한다는 간단한 진리. 선비를 떠올리게 하는 용모에서 나온 그럴싸한 대답이다.
서예 필력 20년째…"아직도 목마르다"
언제부터 서예를 시작했을까. 때는 1992년, 그의 29살 시절이다.
"전문의를 따고 나서 한숨 돌릴 때였습니다. 문득 앞으로 뭘하며 살아야 참 인간살이인가에 대한 궁금증이 들더군요. 그때부터 장자나 논어 등 인간 본질을 탐구한 책에 파묻히기 시작했습니다."
인간 본성과 참 인간살이에 대한 궁금증이 곧 고전의 탐독으로 이어졌다는 것. 거기에다 이런 철학을 그림으로 표현하면 더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성과 감성의 합치라는 갈증은 스스로 풀기 어려웠다. 그 갈증을 풀기위해 선생님을 찾아갔다.
"산민(山民) 이용(李鏞) 선생에게 서예를, 소당(素堂) 김연익(金蓮翼) 선생에게 사군자를 배웠습니다. 일주일에 한번씩 선생님께 찾아가 가르침을 얻었죠. 진료를 마감하고 집에 와서도 하루 두시간씩 붓을 잡습니다."
그렇게 배우기를 벌써 20년째. 그런데도 그는 "부족하기만 하다"고 부끄러워한다. 한눈에 '경지'가 드러나 보이려면 최소 30년은 해야한다는 것이다. 그는 딱 10년의 수련이 부족한 셈.
진료 틈틈이 서예…"환자가 보이고 나도 보인다"
"진료실 한켠에 서예 도구들을 구비해놨습니다. 환자가 없을 때는 붓을 잡아보곤 합니다. 시간이 날 때마다 서예 연습을 해보니 내가 보이고, 환자도 보이더군요."
딴은 이렇다. 붓을 잡고 한획 한획 긋는 순간, 자신이 진료에서 경솔했던 부분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된다는 것. 서예가 그에겐 자신을 반성하는 거울이 된다는 소리다.
수상 작품은 어떻게 하겠냐는 질문에 그는 "가까운 이웃이나 친구가 개원하면 주겠다"고 간단히 답했다. '거화취실!' 깨닫지 못한 자의 우문에 깨달은 자의 현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