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원 명칭 바꾼 진오비산부인과 "낙태 문제 계속 공론화할 것"
"우리의 목표는 망하는 것입니다."
이 보다 극명하게 그들의 현실을 보여주는 표현이 있을까. 반어의 핵심은 주장하는 바와 속마음을 서로 바꿔 표현한다는 것. 그들의 표현은 반어법(反語法)이 분명했다.
대다수 병의원이 저수가와 치열한 생존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전쟁을 치르고 있는 현실에서 과연 생존을 포기하고도 당당할 수 있을까.
생명 존중을 바탕으로 한 낙태 근절을 실천하기 위해 뭉쳤다는 진오비(진정으로 산부인과를 걱정하는 의사들 모임)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철학 실천을 위해 간판을 떼다
지난 해 말 아이온산부인과는 간판을 바꿨다. 7년간 잘 사용해 오던 이름이었다.
새 이름은 '진오비 산부인과'. 진오비 활동에 열성이었던 최안나, 김종석, 심상덕 공동원장이 뭉쳐 아예 낙태 근절을 위해 앞장 서 보자는 철학으로 이름을 바꿨다.
"잘 할 수 있을까?" 희망보다는 걱정이 앞섰던 것도 사실이다. 3명의 공동원장은 간판을 바꾸고 조촐한 현판식도 없이 웃음 너머 한숨을 내쉬었다.
그간 잘 사용해오던 이름을 하루 아침에 바꾸기에 부담감이 적지 않았던 까닭도 있지만 이제 '진오비' 철학을 경영에도 적용해야 한다는 '실천'의 문제가 남았기 때문이다.
초심으로 돌아가기 위해 운영 철학도 첫째, 원칙을 지키는 병원, 둘째, 생명을 살리는 병원으로 잡았다. 수익이 나지 않는 분만실도 다시 열고 낙태상담센터도 개설했다.
왜 이렇게 낙태 문제에 열성인 것일까. 심상덕 원장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후배들에 대한 미안함 때문입니다. 산부인과 선배로서 편법을 쓰지 않고 교과서적인 진료만으로 먹고 살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줬더라면 진오비는 탄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진오비의 활동은 그간 불합리한 의료 수가와 낙태라는 편법이 아니면 살 수 없는 의료 환경을 만든 반성의 의미입니다."
원가의 70%에 불과한 저수가 환경. 그런데도 망하는 병원보다는 떵떵거리며 잘 사는 의사들이 많은 현실은 뭔가 부조리하다는 판단이 앞섰다.
말로만 저수가를 개선하라고 요구하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정부가 분만 수가를 인상한 것도 산부인과의 어려움 때문이 아니라 문을 닫는 분만실이 많기 때문이었다.
심 원장은 "사실 낙태를 하지 않는다고 하면 취직할 곳도 별로 없는 게 지금의 현실"이라면서 "이런 현실을 바꾸고 실제 교과서적인 진료의 결과가 어떤지 보여주고 싶어 산부인과의 이름도 바꿨다"고 전했다.
빚도 적지 않지만 철학의 실천을 위해 뭉친 이상 경영에 목을 메는 일을 거부하기로 했다. 망하는 병의원이 나와야 정부도 문제의 심각성을 깨달을 수 있다는 배수의 진을 친 것이다.
심 원장은 "우리의 목표는 망하는 것"이라면서 "우리가 소신 진료를 했는데도 만일 망한다면 이것보다 더 큰 메아리는 없을 것"이라고 전했다.
산부인과의 경영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십자가를 진 셈이다.
낙태 의사들에 대한 선고유예, 우리 사회의 단면
철학의 실천은 진료실 밖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최근 최안나 원장은 "405명의 태아 살해에 면죄부를 준 대전지법 각성하라!"는 시위 피켓을 들고 대전지방법원을 찾았다.
대전지방법원이 낙태를 한 혐의로 기소된 의사들에게 선고 유예를 내린 것에 대한 항의의 표시였다.
30도를 오르내린 폭염 더위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3시간이 넘게 자리를 지킨 최 원장은 이번 주부터 아예 보건복지부와 국회로 장소를 옮겨 본격적인 시위에 돌입했다.
최 원장은 "형법이 불법 낙태를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는데도 이를 따라야할 판사가 무시하는 행태를 보였다"면서 "판사는 집행하지 않을 사문화된 법을 위헌 소송으로 고치든가 아니면 법질서를 세우든가 분명히 했어야 한다"고 꼬집었다.
의사가 죽어가는 환자에게 '진단 유예'를 하는 사례가 없듯이 판사 역시 사문화된 법에 확실한 끝맺음을 했어야 한다는 소리다.
지켜지지 않는 유명무실한 법을 그대로 놔 두면서 제도의 개선이나 법의 개선에 고개를 돌린 것은 비겁한 행동이라는 것.
신념 때문에 낙태를 한번도 하지 않았다는 김종석 원장도 쓴 소리를 마다하지 않았다.
그는 "낙태는 사회적인 문제고 지금도 벌어지고 있는 현실"이라면서 "낙태는 지식의 유무나 보수, 진보의 차이, 종교의 문제가 아니라 개념과 철학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낙태 문제를 여성 및 산부인과 의사에게 책임을 돌리는 것 자체가 부조리한 현상"이라면서 "종교계, 교육계 등 모든 사회 구성원들이 낙태 문제에 참여하고 고민하는 사회적인 풍토가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런 문제 의식에 따라 최근 진오비 회원들은 다시 낙태 문제를 공론화하겠다는 다짐이다.
최 원장은 "진료를 못보는 한이 있더라도 매주 수요일 오후 국회와 복지부 등에서 1인 시위를 하겠다"면서 "생명 존중 사상과 건전한 성 문화 정착 등 낙태를 미연에 방지하는 사회적 공감대를 이루기 위해 범국민 운동을 전개하겠다"고 전했다.
산부인과 의사들 조차 "너희들만 잘 났냐"는 식의 빈정거림이나 병의원의 현실을 모른채 돈키호테처럼 날뛰고 있다는 핀잔도 서슴지 않는 현실이 서운하지만 그래도 타협은 없다는 각오다.
최 원장은 "적극적으로 활동을 하고 있는 진오비 회원도 20명 가량으로 줄어든 상황이 힘들기는 하지만 언제나 희망을 보고 있다"면서 "적어도 뒤에서 조용히 박수를 쳐주는 이들이 생겨나고 있는 것도 긍정적"이라고 전했다.
인터뷰가 끝나갈 쯤 이들은 5년 후 꼭 다시 한번 인터뷰를 해달라는 당부를 잊지 않았다.
"만일 병원이 문을 닫았다면 이것이 바로 의료계의 현실이라는 점을 알릴 수 있는 기회가 아닐까요?"
"우리의 목표는 망하는 것"이라는 도발적인 멘트는 십자가를 진 이들만이 할 수 있는 가장 무겁고도 살벌한 농담인 셈이다.
이 보다 극명하게 그들의 현실을 보여주는 표현이 있을까. 반어의 핵심은 주장하는 바와 속마음을 서로 바꿔 표현한다는 것. 그들의 표현은 반어법(反語法)이 분명했다.
대다수 병의원이 저수가와 치열한 생존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전쟁을 치르고 있는 현실에서 과연 생존을 포기하고도 당당할 수 있을까.
생명 존중을 바탕으로 한 낙태 근절을 실천하기 위해 뭉쳤다는 진오비(진정으로 산부인과를 걱정하는 의사들 모임)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철학 실천을 위해 간판을 떼다
지난 해 말 아이온산부인과는 간판을 바꿨다. 7년간 잘 사용해 오던 이름이었다.
새 이름은 '진오비 산부인과'. 진오비 활동에 열성이었던 최안나, 김종석, 심상덕 공동원장이 뭉쳐 아예 낙태 근절을 위해 앞장 서 보자는 철학으로 이름을 바꿨다.
"잘 할 수 있을까?" 희망보다는 걱정이 앞섰던 것도 사실이다. 3명의 공동원장은 간판을 바꾸고 조촐한 현판식도 없이 웃음 너머 한숨을 내쉬었다.
그간 잘 사용해오던 이름을 하루 아침에 바꾸기에 부담감이 적지 않았던 까닭도 있지만 이제 '진오비' 철학을 경영에도 적용해야 한다는 '실천'의 문제가 남았기 때문이다.
초심으로 돌아가기 위해 운영 철학도 첫째, 원칙을 지키는 병원, 둘째, 생명을 살리는 병원으로 잡았다. 수익이 나지 않는 분만실도 다시 열고 낙태상담센터도 개설했다.
왜 이렇게 낙태 문제에 열성인 것일까. 심상덕 원장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후배들에 대한 미안함 때문입니다. 산부인과 선배로서 편법을 쓰지 않고 교과서적인 진료만으로 먹고 살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줬더라면 진오비는 탄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진오비의 활동은 그간 불합리한 의료 수가와 낙태라는 편법이 아니면 살 수 없는 의료 환경을 만든 반성의 의미입니다."
원가의 70%에 불과한 저수가 환경. 그런데도 망하는 병원보다는 떵떵거리며 잘 사는 의사들이 많은 현실은 뭔가 부조리하다는 판단이 앞섰다.
말로만 저수가를 개선하라고 요구하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정부가 분만 수가를 인상한 것도 산부인과의 어려움 때문이 아니라 문을 닫는 분만실이 많기 때문이었다.
심 원장은 "사실 낙태를 하지 않는다고 하면 취직할 곳도 별로 없는 게 지금의 현실"이라면서 "이런 현실을 바꾸고 실제 교과서적인 진료의 결과가 어떤지 보여주고 싶어 산부인과의 이름도 바꿨다"고 전했다.
빚도 적지 않지만 철학의 실천을 위해 뭉친 이상 경영에 목을 메는 일을 거부하기로 했다. 망하는 병의원이 나와야 정부도 문제의 심각성을 깨달을 수 있다는 배수의 진을 친 것이다.
심 원장은 "우리의 목표는 망하는 것"이라면서 "우리가 소신 진료를 했는데도 만일 망한다면 이것보다 더 큰 메아리는 없을 것"이라고 전했다.
산부인과의 경영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십자가를 진 셈이다.
낙태 의사들에 대한 선고유예, 우리 사회의 단면
철학의 실천은 진료실 밖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최근 최안나 원장은 "405명의 태아 살해에 면죄부를 준 대전지법 각성하라!"는 시위 피켓을 들고 대전지방법원을 찾았다.
대전지방법원이 낙태를 한 혐의로 기소된 의사들에게 선고 유예를 내린 것에 대한 항의의 표시였다.
30도를 오르내린 폭염 더위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3시간이 넘게 자리를 지킨 최 원장은 이번 주부터 아예 보건복지부와 국회로 장소를 옮겨 본격적인 시위에 돌입했다.
최 원장은 "형법이 불법 낙태를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는데도 이를 따라야할 판사가 무시하는 행태를 보였다"면서 "판사는 집행하지 않을 사문화된 법을 위헌 소송으로 고치든가 아니면 법질서를 세우든가 분명히 했어야 한다"고 꼬집었다.
의사가 죽어가는 환자에게 '진단 유예'를 하는 사례가 없듯이 판사 역시 사문화된 법에 확실한 끝맺음을 했어야 한다는 소리다.
지켜지지 않는 유명무실한 법을 그대로 놔 두면서 제도의 개선이나 법의 개선에 고개를 돌린 것은 비겁한 행동이라는 것.
신념 때문에 낙태를 한번도 하지 않았다는 김종석 원장도 쓴 소리를 마다하지 않았다.
그는 "낙태는 사회적인 문제고 지금도 벌어지고 있는 현실"이라면서 "낙태는 지식의 유무나 보수, 진보의 차이, 종교의 문제가 아니라 개념과 철학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낙태 문제를 여성 및 산부인과 의사에게 책임을 돌리는 것 자체가 부조리한 현상"이라면서 "종교계, 교육계 등 모든 사회 구성원들이 낙태 문제에 참여하고 고민하는 사회적인 풍토가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런 문제 의식에 따라 최근 진오비 회원들은 다시 낙태 문제를 공론화하겠다는 다짐이다.
최 원장은 "진료를 못보는 한이 있더라도 매주 수요일 오후 국회와 복지부 등에서 1인 시위를 하겠다"면서 "생명 존중 사상과 건전한 성 문화 정착 등 낙태를 미연에 방지하는 사회적 공감대를 이루기 위해 범국민 운동을 전개하겠다"고 전했다.
산부인과 의사들 조차 "너희들만 잘 났냐"는 식의 빈정거림이나 병의원의 현실을 모른채 돈키호테처럼 날뛰고 있다는 핀잔도 서슴지 않는 현실이 서운하지만 그래도 타협은 없다는 각오다.
최 원장은 "적극적으로 활동을 하고 있는 진오비 회원도 20명 가량으로 줄어든 상황이 힘들기는 하지만 언제나 희망을 보고 있다"면서 "적어도 뒤에서 조용히 박수를 쳐주는 이들이 생겨나고 있는 것도 긍정적"이라고 전했다.
인터뷰가 끝나갈 쯤 이들은 5년 후 꼭 다시 한번 인터뷰를 해달라는 당부를 잊지 않았다.
"만일 병원이 문을 닫았다면 이것이 바로 의료계의 현실이라는 점을 알릴 수 있는 기회가 아닐까요?"
"우리의 목표는 망하는 것"이라는 도발적인 멘트는 십자가를 진 이들만이 할 수 있는 가장 무겁고도 살벌한 농담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