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손보험 손질 속도내는 금융당국…의료계 "의료권 침해"

발행날짜: 2022-03-11 12:00:23
  • 강화된 실손보험 지급 기준 3월 중 윤곽…할증제 도입 가닥
    "잘못된 설계 때문…의료계 탓하기 전에 내부비용 줄여야"

보험업계·금융권을 중심으로 한 도수치료 규제책 마련이 본격화하고 해당 치료가 효과가 없다는 식의 네거티브 전략까지 등장하자 의료계 반발이 커지고 있다.

의료계와 악연의 시작은 지난 2009년. 당시 국민권익위원회가 실손보험 청구 절차 간소화를 권고한 뒤 2015년부터 금융당국과 보험업계가 관련 시스템 마련에 나선 게 논란의 발단이 됐다.

여기에 실손보험 손해율이 문제 시 되면서 최근 이 같은 움직임에 속도가 붙었다.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서비스가 도입되면 민원 및 보험사기 방지가 용이해지고, DB확보가 가능해져 편의성을 제고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단기적으론 보험금 청구량이 증가해 손해일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 실손보험 적자 개선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게 보험업계의 판단이다.

하지만 의료계 반대로 국회 법안심사소위원회 상정이 번번이 무산되면서 보험업계는 지난해 7월, 4세대 실손보험을 출시했다.

실손보험은 ▲2009년 10월 이전까지 판매된 1세 ▲2009년 10월부터 2017년 3월까지 판매된 2세대 ▲2017년 4월부터 판매된 3세대 등으로 나뉘는데, 개선을 거듭해도 손해율이 개선되지 않자 급여 혜택을 늘리고 비급여 청구 기준을 강화한 새 상품을 마련한 것.

보험업계는 4세대 전환가입자에게 1년간 보험료 50%를 면제해주는 파격 혜택을 내걸고 1·2세대 보험료를 대폭 인상했지만, 실제 전환은 미미한 상황이다.

같은 시기 정부의 실손보험 손실도 본격화했다. 지난해 7월 금융당국이 보험업계와 함께 조직한 실손보험 TF의 9개 비급여 항목에 대한 보험금 지급 기준 강화 방안도 최근 윤곽이 드러났다.

비급여 특약 분리 및 의료이용에 따른 실손보험료 할인·할증제 도입하는 방식으로 비급여 진료비 청구를 많이 한 가입자의 보험료를 올린다는 것. 도수치료와 관련해선 횟수가 일정 수준에 도달하면 의사 소견서를 요구하는 등의 방안도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당국은 이르면 이달 중 이 같은 기준을 확정한다는 방침이다.

또 금융위원회는 지난 1월 기획재정부, 금융감독원, 보험연구원, 보험협회 등과 함께 '지속가능한 실손보험을 위한 정책협의체'를 발족하고 지난달부터 관련 활동을 시작했다.

더욱이 최근 일부 손해보험사가 가입자들에게 "도수치료는 치료방법이나 치료횟수 등에 대한 의학적인 근거가 충분하지 않은 의료행위"라고 안내하는 등, 전방위적 압박이 본격화한 상황이다.

실손보험 적자로 인한 도수치료 규제책 마련이 본격화했다.

의료계는 이 같은 규제가 오히려 보험 가입자 간 형평성과 합리적인 의료서비스 이용을 해친다고 봤다. 만성 척추·관절 질환자나 중추신경계 질환자 등 주기적인 치료가 필요한 이들이나, 수술 후 재활이 필요한 환자는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는 것.

이와 관련해 한 정형외과 개원의는 "근골격계 질환자나 수술 후유증을 앓고 있는 환자는 거동이 어려워 동네 병의원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며 "횟수를 정해 보험료를 높이겠다는 식의 논의는 보험업계의 문제를 환자들에게 떠넘기고 치료 접근성을 해치는 행위"라고 강조했다.

관련 논의가 기존 기준을 강화하는 방식이 아닌, 무분별한 진료를 유도하는 의료기관을 관리하는 방향으로 진행돼야 한다는 것.

다른 정형외과 원장은 "실손보험 손해율의 근본적인 원인은 잘못된 보험설계 때문인 만큼, 수익률이 안 나오면 판매관리비 등 내부비용을 줄이는 것이 순서"라며 "수익률이 높았다고 해서 보험사가 가입자의 보험료를 낮춰주는 것도 아니었을 텐데, 왜 본인들의 잘못으로 인한 손해를 가입자로부터 보전하려는지 이해하기 어렵다"고 꼬집었다.

의료기관이 적자라고 해서 진료비를 더 청구할 수 없는 것처럼, 실손보험사 역시 관련 문제의 해결책을 의료계가 아닌 내부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

도수치료 효과를 의료진이 아닌 보험업계가 왈가왈부하는 것은 명백한 의료권 침해라는 불만도 나온다.

대한정형외과의사회 이태연 회장은 "이 같은 논의는 기본적으로 의사의 처방권 및 진료권 등 의료권과, 헌법에 보장된 환자들의 자기 행복 추구권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행위"라며 "비급여 항목은 의사의 판단에 따라 실시되는 의료행위인데, 이에 대한 횟수·기준 등을 개인 보험사가 정하거나 그 효과를 논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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