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폐 위기 놓인 응급구조사…"간호법 반대는 영역침범 때문"

발행날짜: 2023-03-16 05:30:00 수정: 2023-03-16 10:49:07
  • 강용수 회장 "전 영역에 걸친 간호계 소수직역 침탈…제국 방불케 해"
    응급구조사, 간호사 목적 다른데…"간호법·119법 국민 건강 위해"

간호법으로 의료계 소수직역들의 업무침탈 우려가 커지고 있다. 해당 법안이 의사 업무를 제외한 대부분 의료행위를 간호영역에 포함시키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해당 법안에 있는 지역사회 조항으로 아예 간호사가 진료까지 시도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들 직역 중에서도 가장 위기감이 큰 것은 응급구조사다. 간호법 외에도 '119구조·구급에 관한 법률'에서 간호사 업무범위를 늘리려는 시도가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응급구조현장에서 벌어지는 간호계의 업무침탈은 어느 정도 수준일까. 메디칼타임즈는 대한응급구조사협회 강용수 회장을 만나봤다.

대한응급구조사협회 강용수 회장이 전 소수직역에 대한 간호계 침탈이 심화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올해 초 신임 회장으로 취임하기 이전부터 부회장으로서 1인 피켓 시위 등에 참여하며 간호법 투쟁에 앞장서왔다. 지난 9일엔 대한의사협회 간호법·면허박탈법 저지 비상대책위원회와 함께 연대집회에 참여하기도 했다.

강 회장은 이 같은 투쟁의 계기를 묻는 질문에 "응급구조사는 원래부터 간호사들에 의해 생존권을 위협받는 직역이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그는 "지난해 전문간호사 제도가 시행되면서 기존에도 보건복지부 앞에서 1인 시위를 진행해왔는데 갑자기 간호법이 등장했다"며 "응급구조사는 지금도 간호사와 직접적으로 업무영역이 충돌하고 있는데 의료인이 구급차에 탑승할 수 있다는 119법 단서 조항으로 간호사 출신 구급대원 비중이 급증하고 있다"고 말했다.

■간호사 출신 구급대원 급증세…기울어진 운동장 지적 나와

응급구조사는 1995년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면서 만들어진 직역으로, 당시 성수대교 붕괴사고 등으로 응급의료체계 필요성이 커지면서 이에 대응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하지만 도입 초기 인력확보의 어려움으로 간호사들의 유입을 유도했다.

당시엔 큰 문제가 없었지만 지금에 이르러선 간호사 출신 구급대원이 3000명대로 늘어났다. 실제 소방청이 공개한 연도별 119구급대 현황을 보면 2011년 385명이었던 간호사 출신 구급대원은 지난해 3371명으로 9배 가까이 늘어났다. 같은 기간 1급 응급구조사 구급대원이 2343명에서 5256명으로 2배 정도만 늘어난 것을 고려하면 엄청난 증가세다.

강 회장은 구급대원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응급구조사 직역이 있음에도, 간호사들이 본인들도 구급대원을 하겠다고 나서는 것은 효율적인 인력분배 측면에서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더욱이 응급구조사는 간호사와 달리 경력을 쌓을 곳이 마땅치 않아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경쟁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이 같은 문제는 응급구조사뿐만 아니라 전 의료영역에 걸쳐 벌어지고 있는데, 이런 상황에서 간호법이 통과된다면 간호계 침탈에 날개를 달아줄 것이라는 우려다.

대한응급구조사협회 강용수 회장

강 회장은 "구급차에 탑승하는 것은 응급의료 전문 인력인 응급구조사 고유의 업무다. 하지만 간호사들이 무조건 가능하다는 식으로 밀고 들어오면 소수 직역인 우리는 막을 방법이 없다"며 "더욱이 코로나19 사태에 모든 직역이 각자의 자리에서 헌신했음에도 간호계는 간호사만이 희생했다는 식으로 간호법을 밀어붙여 저지 운동에 적극 참여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보건복지의료연대에 동참하게 된 이유도 이 때문이다. 특히 응급구조사협회는 연대 창립멤버인데, 응급전문간호사 규탄시위 과정에서 마취전문간호사 문제로 국회에 방문한 의협 회장단과 우연히 만난 게 지금까지 이어졌다는 설명이다.

이와 관련 강 회장은 "간호사의 업무침탈 문제는 어느 직역과 얘기해도 공감되는 부분이 많다"며 "의협 역시 마취전문간호사 문제로 골치여서 서로 의견을 나누게 됐고 의사들에게 소수 직역의 문제를 알리는 계기가 됐다"고 회상했다.

그는 각 직역이 각자의 자리를 지킨다면 아무런 갈등이 생기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응급구조사의 역할은 병원 전 단계에서 환자를 지키는 것이고, 간호사의 역할은 병원에서 환자를 간호하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영토 넓히기 혈안 된 간호계…정작 병원은 간호사 인력난

하지만 간호계는 다른 직역의 일자리를 빼앗는데 혈안이 돼 있으며, 이로 인해 본인들의 진짜 일터인 병원에선 인력난 문제가 심화하고 있다는 것.

실제 복지부는 매년 간호대 정원을 늘리고 있지만 간호사가 없다는 병원들의 아우성은 여전하다. 특히 신규 간호사의 1년 이내 사직률은 2020년 47.7%에 이르는 등 증가세다.

간호계는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먼저 간호사 처우를 개선해야 하며 이를 위해 간호법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계속해서 간호계에 일자리를 빼앗겨온 소수직역들은 이 같은 주장에 공감하지 못하는 모습이다.

이와 관련 강 회장은 "간호학과를 가면 소방으로 갈 수 있고 산업계로도 갈 수 있고 병원에도 갈 수 있다"며 "사실상 간호사는 우리나라 어떤 직종으로든 다 갈 수 있는 것인데 이는 아주 심각한 문제다. 결국 다른 소수 직역들이 모두 괴멸해 보건의료체계 자체가 망가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의료계에서 간호계를 일컬어 '간호제국'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이는 정부기관도 마찬가지인데 소방청 행정부서에 간호사 출신이 대거 자리해 관련 정책이 응급구조사에 배타적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고.

간호법 저지 1인 피켓 시위 중인 대한응급구조사협회 강용수 회장

■응급구조사·간호사 구분 없앤다는 소방청…"배우는 게 달라"

실제 소방청은 1급 응급구조사 출신 구급대원과 간호사 출신 구급대원의 업무를 일치시키려는 정책을 추진 중이다. 이 경우 응급구조사 직역은 의미가 없어진다.

그동안 1급 응급구조사 구급대원이 차별성을 가졌던 것은 현장에서 기도삽관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덕분이었다. 이 때문에 응급구조사는 현장에서 필수적인 자격였지만 이를 간호사가 수행하게 된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현재도 간호대학이 구급대원 배출 목적의 강의를 편성하는 상황인데 업무까지 같아져버리면 응급구조사 자격으로 구급대원이 되려는 학생이 없어질 것이라는 우려다.

강 회장은 "간호법과 별개로 이 같은 내용이 담긴 119법 개정안만 통과돼도 4만5000명의 응급구조사들은 설 자리가 없어진다. 응급구조사는 지금도 취업률이 가장 낮은 직역 중 하나다"라며 "1급 응급구조사 자격을 가지고도 다시 간호학과로 편입하는 이들도 늘어나고 있는데 이런 문제가 더욱 심화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강 회장은 4년간 응급구조학과에서 공부한 학생과 간호대에서 응급의료 관련 강의를 들은 학생과의 역량 차는 분명하다고 강조했다. 병원에서 쌓은 간호경력 역시 응급구조 현장과는 무관하다는 설명이다. 간호사 출신 구급대원은 임용 후 소방학교에서 몇 주간의 교육을 받기는 하지만 이 역시 부족하기는 마찬가지라는 것.

그는 "응급처치가 필요한 현장에서 국민 건강에 직결되는 행위들이 무분별하게 허용되는 게 정말 옳은 일인지 의문"이라며 "재난현장에서는 예상치 못한 일들이 계속해서 벌어지고 이에 대응하기 위해선 다년간의 훈련으로 머리가 아니라 몸이 바로 반응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1급 응급구조사들은 대학교에서 수년간 관련 과목들을 반복적으로 배워 숙달할 수 있도록 한다. 단기간 관련 교육을 받았다고 해서 이 같은 응급조치가 가능하다는 논리는 상당히 위험하다"며 "이는 직역 간의 문제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 국민 건강 보호에 직결돼 있고 관련 피해를 국민이 보기 때문에 반대하고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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