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정책연구원, 의대 정원 변동과정 역사적 고찰 분석 발간
과거 의대 신·증설 과거 정치적 이해관계 때문 "파업과는 무관"
2000년 의약분업 파업으로 감축된 의과대학 입학정원이 이번 2000명 의대 증원의 이유가 됐다는 정부 주장에 대한 의료계 반박이 나왔다.
10일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원은 '의과대학 입학정원 변동과정에 대한 역사적 고찰' 정책현안분석을 발간했다고 밝혔다.
이 연구는 전문가 인터뷰를 바탕으로 의대 정원 결정 및 변동의 역사적 과정과 배경과 주요 이슈를 고찰한다. 앞으로의 의대 정원 정책수립 과정에서 중요한 참고자료로 활용하기 위해 수행됐다는 설명이다.
그 내용을 보면 정부는 지난 2월 6일, 2025학년도 대학 입학 전형에서 의대 정원을 2000명 증원하기로 확정 발표했다. 또 이 과정에서 "지난 2000년대 초 의약분업 도입 이후 의료계 달래기용으로 의대 정원이 감축됐다"고 언급했다.
하지만 당시 정원 감축은 의약분업 도입에 따른 의료계 달래기용이 아니었다는 게 이 연구의 판단이다. 의약분업 도입 논의 이전부터 다양한 정치적 이해관계 속에서 진행돼 온 의과대학 신·증설과 의학교육 부실의 문제로 이미 감축 논의가 진행되고 있었음을 확인했다는 것.
또 의대 정원 변동과정에 대한 주요 내용을 보면 1981년 갑작스러운 졸업정원제 시행으로 의대들은 졸업정원의 30%를 증원해 학생을 모집하게 되었다. 졸업정원제는 학과별 또는 계열별로 졸업할 때의 정원을 규정하되, 입학할 때는 졸업정원의 30%를 증원 모집하고 증원된 숫자에 해당하는 학생은 강제로 중도 탈락시키는 제도다.
하지만 교육 환경을 정비할 시간이 6개월에 불과했던 까닭에 부실한 환경이 조성됐다는 설명이다. 실제 1981년부터 1996년까지 15개 의과대학이 무더기로 신설됨에 따라 의학교육의 질이 저하됐다는 것.
이에 의료계는 1997년부터 1999년까지 청와대, 국회, 교육부, 감사원 등에 의대 신설의 부당함을 탄원했다. 또 1998년 7월, 의료계와 의학교육 관련 단체들은 '한국의과대학인정평가위원회'를 발족함으로써 의학교육 부실 위기를 해결하고자 했다.
이 과정에서 1999년 보건복지부는 지난 5년간(1994년~1998년) 9개의 의대가 단기에 인가된 것에 대한 비판을 받았다. 이에 의사 등 의료인력의 장기적 공급과잉이 우려된다면서 의과대학 평가 강화, 신입생 모집 중지, 정원 감축 등의 조치를 시행해 나갈 방침이라고 밝혔다.
또 2000년 의사파업으로 신설된 국무총리 직속 '의료제도발전특별위원회'는 과거 김영삼 정부 시기의 무리한 의대 신설 인가 문제를 함께 다뤘다. 당시 의대 정원 감축 결정에 대해 정부, 국책연구소, 학자 등이 모두 의대 정원 감원이 불가피하다는 공통된 의견이 제시되기도 했다.
이처럼 이미 1990년대 말부터 무리한 의대 신·증설과 이로 인한 의사 공급과잉에 대한 연구, 의학교육의 부실 문제 등으로 의대 정원 감축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고 있었다는 설명이다. 결국 앞선 의대 정원 감축은 2000년 의약분업으로 인한 의료계 파업과는 무관하다는 것.
이와 관련 의료정책연구원은 "과거 의대 무더기 신설은 정치적·지역적 이해관계의 영향에 따른 것이라 짐작할 수 있다. 이는 국회에서 지역별 의대 신설 법안이 지속적으로 발의되고 있는 현재 상황과 다르지 않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며 "의학교육의 임상경험은 필수적이며, 의대 졸업 후 바로 이어지는 전공의 교육을 위한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선진국의 10년 치에 해당하는 증원을 한해에 이루려는 급진적인 계획은 전혀 현실적이지 않다. 내년 의대 입학생들이 부실한 교육 환경에 무방비로 노출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우리는 이미 과거 잘못된 정책과 정치적 이해관계로 인해 의대 폐교라는 초유의 사례를 경험한 바 있다. 정부는 현재의 잘못된 정책 방향을 조속히 수정해야 한다"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