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상 3만7739개→3만4553개 감소…서울아산병원 336 최다 감축
의료계 "대형병원 하나 순식간에 사라지는 꼴…수익 감소 우려"
의료개혁특별위원회가 연내 성과를 보이겠다고 자신하는 '상급종합병원 구조전환 시범사업'이 속도를 높이면서, 병원 현장에서는 의료수익 감소에 대한 우려가 깊어지는 모양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19일 기준 해당 시범사업에 참여하는 상급종합병원은 현재까지 총 42개소로, 90%가 참여를 완료한 셈.
이들이 제출한 병상 감축안에 따르면 상급종합병원은 총 3200여개의 일반병상을 감축했다.
정부는 의료계의 적극적인 참여에 감사의 뜻을 표하며 구조개혁을 위해 박차를 가하겠다는 반면, 의료현장 곳곳에서는 병상 감축으로 인한 우려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 아산병원 336병상-세브란스 290병상 감축…'환자·의료진' 적극 참여 관건
보건복지부는 지난 19일 '상급종합병원 구조전환 지원사업' 4차 참여 기관으로 총 11개소가 선정돼 47개소 중 42개소가 참여하게 됐다고 발표했다.
중증진료체계 강화 시범사업에 참여하면서 이번 사업에는 참여할 수 없게된 삼성서울병원, 울산대병원, 인하대병원을 제외하면 남는 병원은 강북삼성병원과 화순전남대병원 단 2곳으로 대다수 병원이 시범사업 참여를 완료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해당 사업은 상급종병이 응급·중증·희귀질환에 집중할 수 있도록 경증환자를 줄이는 것을 목표로 하기 때문에 일반병상 감축이 필수적이다.
입원환자 중 '상급종합병원 적합질환자' 70% 이상을 목표로, 일반병상을 지역과 규모에 따라 5~15% 감축을 추진하고 있다.
가장 많은 병상을 줄인 곳은 서울아산병원으로 기존 2424개에서 336개를 감축했다.
세브란스는 2111개에서 1821개로 290병상을 줄였다. 부산대병원(128병상), 길병원(107병상), 분당서울대병원(104병상) 등도 세 자릿수 병상을 감축했다.
국립대병원들 또한 병상 감축에 앞장섰다. 경상국립대병원은 기존 754병상에서 43개를 감축해 711병상을 운영하며, 전북대병원(50병상), 충남대병원(49병상), 전남대병원(35병상), 경북대병원(34병상), 충북대병원(28병상) 등 또한 병상감축에 동참했다.
국립대병원 관계자는 "이번 시범사업에 참여하며 병상을 감축했는데 사립대병원에 비하면 규모가 크지 않다"며 "국립대병원은 해당 지역의 권역의료센터로 최후의 보루 역할을 맡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한 번에 대규모 감축을 진행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로써 상급종합병원 42개소가 운영하던 병상은 기존 3만7739개에서 총 3186병상이 줄어 3만4553개가 됐다.
병원들은 정책 기조에 따라 병상 감축에 동참했으나, 향후 우려되는 진료비 감축 등에 대한 불안이 크다고 입을 모았다.
상급종합병원은 중증과 응급환자를 위주로 진료하며 후학 양성에 힘써야 하지만, 고질적인 저수가 문제와 의료경쟁 심화 등으로 기존 의료수익의 40% 정도를 경증 진료 수익으로 충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시범사업에 참여한 한 상급종합병원 관계자는 "그동안 병원 성장에 따라 지속적으로 병상을 늘리기만 했지 이렇게 대규모로 감축한 적은 처음이라 부담이 크다"며 "당장은 정부를 믿고 시작하지만 3년이라는 오랜 기간 진행되는 만큼 끝까지 완주할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가 많다"고 토로했다.
이어 "특히 10% 이상 병상을 줄이는 것은 재정이 튼튼하지 않고는 도전하기 어렵다"며 "정부는 의지를 갖고 시작했지만 의료 현장에서 의료진이나 환자 등이 얼마나 따라줄지 모르갰다"고 전했다.
■ 병원, 병상 감축 규모 두고 논쟁…"졸속 추진, 부작용 우려"
이로인해 병상 감축 규모를 두고 각 병원은 내부적으로 신중한 논의가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시범사업 참여가 늦어진 병원들 대다수가 병상 감축을 두고 내부 의견다툼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전언.
익명을 요구한 한 상급종합병원 관계자는 "병상을 줄이고 경증 환자를 보지 말라는 것은 병원의 수입을 포기하라는 것과 같은 뜻"이라며 "일반병상과 경증환자를 줄인 만큼 중증으로 채우라는 뜻일 텐데 병상을 줄이는 만큼 병원 입장에서는 위험 부담이 커지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병상 감축 규모를 두고 여러 이야기가 오가면서 내부 조율이 늦어졌다"며 "특히 상급종합병원은 단순한 병원으로서의 역할뿐 아니라 권역·지역응급의료센터, 통합치료센터 등 다양한 역할을 겸임하는 경우가 많아 한 번에 쉽게 줄이기도 어렵다"고 강조했다.
수도권의 대학병원 외과 교수 A씨는 "해당 시범사업 자체가 상급종합병원이라면 참여할 수밖에 없는 구조기 때문에 많이 신청한 것으로 보이지만 걱정스런 부분이 많다"며 "3200병상 감축은 국내에서 가장 많은 병상을 보유한 서울아산병원보다 큰 규모로 초대형 규모의 병원이 순식간에 사라지는 것과 같은데 부작용이 없을 리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이어 "상급종병이 경증환자를 많이 본 것은 박리다매 수가체계로 인해 환자를 보지 않으면 운영이 힘들었기 때문"이라며 "30년 넘게 지속되던 고질적인 의료문제를 단순 돈만 쏟아부으며 단 3년 이내에 바꿔보겠다는 정부 시도가 성공할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 특히나 전공의에 이어 전문의마저 지속적으로 종합병원으로 빠지는 상황 속 어떻게 성공을 확신할 수 있겠느냐"고 강조했다.
의료계는 정부의 중증 분류 체계 개편과 관련해서도 문제를 지적했다.
정부는 이번 시범사업을 통해 병원 측의 부담을 덜 수 있도록 '중증' 분류 체계 또한 개편할 계획이다. 기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환자 분류 체계에서 벗어나 환자의 연령, 기저질환, 치료 난이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중증 여부를 판단하겠다는 것이다.
세브란스병원의 정윤빈 외과 교수는 "정부는 상급종병의 적합 환자 질환군을 기존 50%에서 70%까지 높이겠다는 목표지만 중증 질환군 확대를 통해 별다른 노력 없이 단숨에 목표치에 가까워지는 병원들이 발생할 것"이라며 "대부분의 병원들 또한 어느 정도까지는 쉽게 중증비율을 올릴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하지만 이렇게 된다면 상급종병은 지금과 유사한 환자군을 진료해야 한다는 뜻이기 때문에 줄어든 인력, 병상 등으로 인한 여러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며 "대규모 예산이 투입되는 사업이니만큼 서로 '눈 가리고 아웅식'으로 끝나지 않도록 세부 디테일 정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중소병원 "환자 전원 돼도 근본적 저수가 해결 없이 문제 여전"
상급종합병원이 아닌 종합병원과 중소병원 등 2차병원에서도 이번 시범사업을 둘러싼 볼멘소리가 터져 나왔다.
특히 상급종병이 병상을 줄이고 환자를 이송해도, 근본적인 수가 체계 개편 없이는 같은 문제점이 그대로 다시 나타날 것이라는 우려다.
정부는 상급종병 지원과 함께 특화·전문병원 육성을 위해 유형을 목적·기능에 따라 재분류해 성과와 보상을 강화할 수 있게 했다.
이에 따라 현행 전문병원 지원금에 더해 전문병원 질 지원금을 1개소당 약 4억원 수준으로 성과에 따라 지급한다.
통합적·지속적 1차 의료 기능을 수행하기 위한 혁신 시범사업도 검토했다. 묶음 수가, 건강개선, 환자 만족도 등에 따라 성과 보상 등 지불체계를 도입하고 이들 병원이 지역 2차 병원, 지역의사회 등과 연계협력을 해나갈 수 있도록 교육프로그램을 마련할 예정이다.
하지만 2차병원들은 이러한 지원들로 상급종병을 쫓아가기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다.
지방의 한 종합병원장 B씨는 "지방병원의 가장 큰 문제는 의료인력 수급인데 오래전부터 의사는 물론 간호사 수급까지 어려워져 제대로 병상을 운영하지 못하고 있다"며 "전공의가 집단 이탈하며 지방 대학병원 의사들이 수도권으로 이직한 사례가 많다. 이러한 현상은 연쇄작용으로 나타나 2차 의료기관 인력수급까지 직격타가 된다"고 강조했다.
이어 "아무리 1차병원이 병상을 줄이고 환자를 전원해도 중소병원들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며 "상급종병은 국가가 예산을 투자해 수가를 집중 인상하고 그 아래 의료기관은 시장논리에 맡긴다면 당연히 경쟁에서 탈락할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또한 그는 "정부 통제로 환자들이 의지와 무관하게 2·3차 병원으로 이송해도 국내 전반적인 저수가 문제 해결 없이는 부작용이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며 "차라리 상급종합병원 시범사업을 추진하는 속도와 예산으로 수가 문제부터 신속하게 손 본다면 더 나은 결과를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전했다.
대한아동병원협회 최용재 회장 또한 "서울 대학병원들이 전공의 빈자리에 PA 간호사 등 인력 채용을 늘리며 당장 간호사 인력 수급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상급종합병원 시범사업이 자리 잡은 후 중소병원을 신경 쓰면 그 때는 이미 늦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