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고혈압학회 춘계학술대회 고혈압 사각지대 지적
"임부 주의사항으로 투약 기피, 라베타롤 경구약도 전무"

임신 중 발생하는 고혈압 치료에 선택지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제한적인 약제 유통에 덧붙여 임신부에게 비교적 안전한 것으로 알려진 약제조차 국내에서는 '수유부 금기'가 표기돼 있어, 실제 임상 현장에서 투약을 꺼리는 환자들을 심심찮게 만난다는 것.
16일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대한고혈압학회 춘계학술대회에서 제주대병원 심장내과 김송이 교수는 '임신성 고혈압의 진단과 치료'를 주제로 발표를 진행하며 이같이 밝혔다.
김 교수는 "임신 중 고혈압은 산모와 태아 모두에게 중대한 위험을 초래할 수 있어 조기 진단과 적절한 치료가 필수지만, 국내에서는 사용할 수 있는 약제 옵션이 부족하다"며 "라베타롤, 메틸도파는 유통이 어렵거나 국내 도입이 안 돼 있고 하이드랄라진은 최근 생산 중단 이슈로 공급이 불안정하다"고 지적했다.
임신 중 고혈압은 임신과 관련된 심혈관계 질환 중 가장 흔한 질환으로, 전체 임산부의 약 5~10%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만성 고혈압은 미국 기준 임신부의 약 2%에서 발생하며, 임신부 및 주산기 이환율과 사망률의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전자간증, 폐부종, 급성 신장 손상, 심근병증, 뇌졸중, 조산, 태반 박리, 자궁 내 성장 지연, 임신부 사망 및 주산기 사망 등 심각한 합병증과도 관련돼 있다.
문제는 위험 상황에서도 치료제 선택지가 협소한 것이 현실이라는 것.
김 교수는 "임신 중 고혈압은 크게 네 가지로 분류되며, 각각에 맞는 적절한 약물치료가 필요하다"며 "그러나 현실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약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임신 중 만성 고혈압, 임신성 고혈압, 전자간증, 중첩 전자간증 등 네 가지 유형에 따라 접근이 필요한 상황에서 치료제는 메틸도파, 라베타롤, 니페디핀, 하이드랄라진 정도로 제한되는데, 이조차 국내에서는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의약품안전나라에서 '임신성 고혈압'으로 검색하면 총 1만 9050건의 관련 의약품 정보가 나오지만, 이 중 본태성 고혈압을 제외하면 122건에 불과하고, 실질적 치료약물로 분류되는 것은 정맥주사 형태의 라베타롤 4종뿐이다.
국내 현실을 살펴보면 상황은 더 열악하다. 니페디핀과 암로디핀은 국내에서 처방 가능한 대표적인 경구용 약물이지만, 식약처 허가사항에는 여전히 임신과 관련한 제한이 명시돼 있다.
김 교수는 "메틸도파는 아예 국내에 도입조차 되지 않아 사실상 사용이 불가능하다"며 "라베타롤은 정맥주사제로만 제한적으로 유통돼 희귀의약품센터를 통해서만 공급받을 수 있고 하이드랄라진은 최근 생산이 중단돼 공급이 불안정하다"고 우려했다.
그는 "모 제약사에서 경구용 라베탈롤 제재를 개발하고자 하는데 승인 절차가 까다롭다"며 "국내에 들어와 있는 경구용 약제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비교 실험을 해야 되기 때문에 개발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이어 "임신성 고혈압 환자에게 가장 많이 사용하는 니페디핀의 경우 사용상의 주의사항에 임부 또는 임신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는 부인 ,수유부는 금기로 표기돼 있다"며 "임신한 경우 약제에 민감하기 때문에 환자들이 이런 내용을 많이 찾아보고 금기라는 부분 때문에 불안해 한다"고 지적했다.
니페디핀은 '임부 또는 임신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는 부인, 수유부 금기'로 표기돼 있으며, 암로디핀은 2020년까지 임부 금기였고, 2024년에서야 '임부 신중 투여, 수유부 금기'로 다소 완화됐다.
김 교수는 "진료지침에서는 사용이 가능하거나 비교적 안전하다고 명시된 약물조차 국내 의약품 허가 체계에서는 수유부 금기나 임부 주의 약제로 표기돼 있다"며 "메토프롤롤, 비소프롤롤 등 일부 약물도 비슷하게 임부 주의 또는 수유부 금기로 분류돼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로 인해 고위험 임신 상황에서 적절한 치료 시기를 놓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며 "기존 복용 약물, 부작용 가능성, 기형 발생 위험 등을 고려해 선택할 수 있도록 허가사항 정비와 현실 반영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임신 중 고혈압은 흔한 질환이며, 적극적인 약물 조절을 통해 모성과 태아의 합병증을 충분히 예방할 수 있다"며 "그러나 국내에서 사용 가능한 약물이 너무 적고, 허가 정보와 실제 임상 간의 괴리가 커 이를 해소하지 않는 한 산모 건강을 지키는 데 근본적인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