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칩 위에 망막 구현해 질병 재현…실명 치료하는 시대 도전"

발행날짜: 2026-04-16 05:30:00
  • [인터뷰] 가톨릭대학교 은평성모병원 안과 원재연 교수
    3D 바이오프린팅 기반 망막 칩 연구에 비전…"인공망막 개발 꿈"

[메디칼타임즈=최선 기자] 망막을 실험실에서 직접 만들어 질병을 재현하고, 그 위에서 약물 반응까지 검증한다면 어떨까. 더 나아가 그 기술이 손상된 망막을 대체하는 인공망막으로 이어진다면, 실명 치료의 패러다임 자체가 바뀔 수 있다.

망막을 직접 '프린팅'해 질병을 재현하고, 나아가 인공망막 이식까지 겨냥하는 연구가 국내에서 본격화되고 있다. 3D 바이오프린팅 기술을 이용해 인간 망막의 구조와 기능을 칩 위에 구현하고, 기존 동물실험으로는 접근하기 어려웠던 망막정맥폐쇄 질환을 체외에서 그대로 재현하는 데 성공한 것.

가톨릭대학교 은평성모병원 안과 원재연 교수

단순한 질환 모델을 넘어, 약물 효과를 미리 예측하고 환자 맞춤형 치료 전략까지 설계할 수 있는 '플랫폼'으로서 가능성을 입증하면서 실명을 '치료'하는 수준을 넘어, 언젠가 '대체'하는 단계까지 나갈 수 있다는 긍정론도 고개를 들고 있다.

의학과 공학 기술을 결합해 실명 질환의 치료 패러다임을 바꾸겠다는 가톨릭대학교 은평성모병원 안과 원재연 교수를 만나 3D 바이오프린팅 기반 '망막 칩(retina-on-a-chip)' 연구의 현주소와 미래 인공망막의 개발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다.

연구는 망막정맥폐쇄라는 대표적 실명 질환을 실험실 '칩 위'에서 그대로 재현하는 데서 출발한다.

원 교수는 "망막정맥폐쇄는 망막 정맥이 막히면서 혈류가 정체되고, 결국 황반부종과 신생혈관, 시력 저하로 이어지는 질환"이라며 "문제는 그동안 이 질환을 제대로 연구할 수 있는 모델이 사실상 없었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기존 연구는 주로 설치류 기반 동물실험이나 2차원 세포배양에 의존해 왔지만, 사람의 망막과 구조·기능이 크게 달라 임상 적용에 한계가 뚜렷했다.

원 교수는 이 지점을 공략했다. 그는 "사람과 유사한 질환 환경을 그대로 구현하는 것이 핵심이었다"며 "3D 바이오프린팅을 이용해 인간 세포와 세포외기질을 기반으로 망막의 미세환경을 재현했다"고 설명했다.

실제 연구에서는 망막 세포와 혈관 내피세포, 세포외기질을 조합해 '바이오잉크'를 만들고, 이를 정밀하게 적층해 망막 구조를 구현했다. 여기에 혈류 흐름까지 모사해 단순한 구조 재현을 넘어 생리적 변화까지 반영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망막 칩은 단순한 모형이 아니라 '작동하는 질환 모델'이다. 혈관 협착 이후 허혈, 염증, 혈관 누출, 기능 저하로 이어지는 질병의 전 과정을 관찰할 수 있고, 약물 반응 역시 실제 환자와 유사하게 나타난다. 원 교수는 "현재 사용 중인 치료제에 대해서도 사람과 거의 동일한 반응을 보였다"며 "이 부분이 가장 큰 의미"라고 강조했다.

이 기술이 주목받는 이유는 기존 연구 방식과의 구조적 차별성 때문이다. 먼저 인간 세포와 세포외기질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동물모델보다 훨씬 높은 재현성을 확보할 수 있고, 반복 실험 시 변수가 적어 결과의 일관성이 높고 시간과 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다.

전 세계적으로 동물실험 제한 움직임 가운데 오가노이드 기술이 부상하고 있다는 점에서 망막 칩 역시 대체 기술로서 의미가 크다는 것이 그의 판단.

원 교수는 "망막 칩은 표준화와 개인 맞춤형을 모두 아우를 수 있다"며 "정상 세포주를 활용한 표준 모델은 물론, 환자 유래 줄기세포를 적용하면 개인 맞춤형 약물 반응 예측도 가능해 신약 개발 과정에 직접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임상 이전 단계에서 약물의 효능과 독성을 동시에 확인할 수 있어 개발 속도를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다"며 "동물실험을 상당 부분 대체할 수 있는 플랫폼"이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글로벌 제약업계에서는 이미 '오가노이드·온어칩' 기반 연구가 활발하지만, 국내에서는 아직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는 상태.

원 교수의 궁극적 목표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망막 칩 개발은 단순한 질환 모델 구축이 아니라 '인공망막'으로 가기 위한 중간 단계라는 것이다.

그는 "망막은 10개 층으로 이뤄진 정교한 신경조직으로 이를 다층 구조로 구현하는 것이 핵심 과제"라며 "현재 기술로 상당 부분 구현이 가능하지만, 시세포 기능 구현이 마지막 과제로 남아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 문제만 해결된다면 인공망막 상용화는 생각보다 빠르게 이뤄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원재연 교수가 안구 모델을 통해 망막 칩의 원리 및 인공망막으로의 개발 가능성에 대해 설명했다.

실제 임상 현장에서의 경험도 연구 방향을 결정짓는 중요한 계기였다. 원 교수는 "망막은 신경조직이라 기증을 받아도 이식이 불가능해 실명 상태로 살아가는 환자들이 많다"며 "결국은 대체할 수 있는 인공 조직을 만드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미 안구 약물 전달용 다층 임플란트 개발에도 참여해 기반 기술을 습득한 바 있다. 기존 안구 주사 치료의 한계인 짧은 약효 지속 시간을 극복하기 위해, 약물 방출을 조절하는 다층 구조 임플란트를 설계한 것이다. 이러한 연구 역시 공학과 의학의 결합에서 출발했다.

원 교수는 "3D 바이오프린팅은 세포와 미세환경을 동시에 설계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기술"이라며 "임상의학과 공학이 결합하면 질환 이해부터 치료까지 전 과정을 바꿀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궁극적으로는 인공장기 개발로 이어져, 장기 이식을 기다리지 않아도 되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현재 연구는 망막정맥폐쇄를 넘어 당뇨병성 망막병증, 망막동맥폐쇄, 황반변성 등 다양한 질환 모델로 확장을 진행 중이다. 특히 습성 황반변성의 신생혈관 모델은 다층 구조 기반으로 구현을 시도하고 있으며, 조만간 국제학술지 게재를 목표로 하고 있다.

그의 궁극적인 목표는 "망막을 재현하는 단계에서 대체하는 단계로의 확장"이다. 연구는 실명 치료의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뒤흔들 수 있는 가능성을 품고 있다. 공학과 적극적인 결합을 시도한 임상의의 도전이, 환자에게 새로운 시야를 열어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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