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의사회 마상혁 공공의료위원장

[메디칼타임즈=경남의사회 마상혁 공공의료위원장]
-질병청 인플루엔자 연례보고서를 읽고
지난 4월 17일, 질병관리청과 국민건강보험공단이 '국가 인플루엔자 연례보고서'를 처음으로 공동 발간했다. 두 거대 공공기관이 가진 방대한 빅데이터를 결합해 인플루엔자 유행과 백신 효과를 분석한 첫 결과물이라는 점에서, 그 의의는 분명하다.
지난 절기 인플루엔자 유행이 2016년 이후 가장 컸다는 점, 입원환자의 절반 이상이 65세 이상 고령자였다는 점, 그리고 백신이 고령층의 중증과 사망을 상당 부분 막아냈다는 점은 국민이 반드시 알아야 할 정보다.
그러나 보고서를 꼼꼼히 들여다보면, 의학자의 눈으로는 납득하기 어려운 지점이 여럿 눈에 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결과는 의미 있으나 전달 방식은 과학적 겸손함을 잃었다. 그리고 이 겸손함의 부재야말로, 역설적으로 백신에 대한 국민 불신을 키우는 가장 큰 원인이다.
첫째, 연구 방법이 공개되지 않았다. 보고서는 "연구 설계와 연령대에 따라 중증 예방효과 63.7~74.6%, 사망 예방효과 38.1~81.1%"라는 구체적 수치를 제시했다. 그러나 그 수치가 어떤 연구 설계(test-negative design인지, 코호트 분석인지, case-control인지)로 산출되었는지, 교란변수는 어떻게 보정했는지, 관찰 기간은 어떻게 설정했는지에 대한 설명이 보도자료 어디에도 없다. 과학에서 '결과'와 '방법'은 분리될 수 없다. 방법이 빠진 결과는 주장일 뿐, 근거가 아니다.
둘째, 동료평가(peer review) 여부가 명시되지 않았다. 국가 기관이 발표한다고 해서 자동으로 과학적 타당성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공공기관의 발표일수록 독립된 전문가 집단의 검토를 거쳤는지, 어느 학술지에 투고·게재될 예정인지를 밝혀야 국민 신뢰가 쌓인다. 그 절차가 없거나 있어도 표시되지 않는다면, 이는 '정부가 말하니 믿으라'는 권위주의적 과학 커뮤니케이션에 가깝다.
셋째, 빅데이터 분석의 본질적 한계가 적시되지 않았다. 건강보험 청구자료와 예방접종 등록자료를 연계한 후향적 빅데이터 분석은 강력한 도구이지만, 결코 완벽하지 않다. 접종군과 미접종군 사이에는 건강 상태, 의료 이용 행태, 사회경제적 지위 등에서 체계적 차이가 존재한다(이른바 'healthy vaccinee bias'). 청구자료의 진단코드는 임상 확진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고, 사망 원인 분류도 불명확한 경우가 많다. 이런 한계를 인정하지 않은 채 효과 수치만 단정적으로 제시하는 것은 과학이 아니라 홍보다.
넷째, 연령별 세분 분석이 부족하다. 인플루엔자는 연령에 따라 임상 양상, 합병증 위험, 면역 반응이 완전히 다른 질환이다. 소아, 학령기, 청장년, 65~74세, 75세 이상, 85세 이상은 각기 다른 집단으로 분석되어야 한다. 그러나 보고서는 "고령층 중증·사망 예방효과 50~80%"라는 광범위한 구간만 제시한다. 이 구간은 너무 넓어서 어떤 정책 판단에도 쓰기 어렵다. 75세 이상 초고령층에서 감염 예방효과가 10%대에 머무른다면, 그것을 숨기는 것보다 솔직히 알리고 대안(고용량 백신, 보조제 첨가 백신 도입 등)을 논의하는 편이 훨씬 생산적이다.
다섯째, 가장 문제적인 지점은 '14만 3868건의 입원·외래 감소, 3506건의 사망 감소'라는 숫자다. 이 숫자는 관찰된 수치가 아니라 백신효과 추정치를 인구에 적용해 역산한 모델링 결과다. 앞서 지적했듯 효과 추정치 자체가 38.1%에서 81.1%까지 두 배 넘게 흔들리는데, 거기서 산출된 '예방된 사망 3506명'이라는 한 자리 단위 숫자가 어떻게 가능한가. 과학적으로 성실한 표기는 '약 2000~6000명의 사망을 예방한 것으로 추정된다'와 같이 불확실성 구간을 함께 제시하는 것이다. 한 명 단위까지 찍어 발표하는 순간, 시민들은 직관적으로 안다. "저건 계산이 아니라 선언이다."
결과가 의심스러워서가 아니다. 결과를 전달하는 방식이 지나치게 확정적이기 때문에, 오히려 의심의 여지가 생기는 것이다. 팬데믹 이후 공중보건 기관에 대한 신뢰가 흔들린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과학은 '우리가 아는 것'만큼이나 '우리가 모르는 것'을 정직하게 말할 때 힘을 얻는다.
그렇다면 대안은 무엇인가.
우선, 연례보고서는 보도자료가 아니라 과학 문서여야 한다. 연구 설계, 포함·제외 기준, 통계 모형, 한계점, 이해상충, 자금 출처를 명시한 본문 보고서를 누리집에 함께 공개해야 한다. 가능하다면 익명화된 분석 데이터와 코드를 연구자 커뮤니티에 공개해 재현성을 확보해야 한다.
둘째, 모든 효과 추정치에 95% 신뢰구간과 불확실성 범위를 병기해야 한다. '3506건 사망 감소'가 아니라 '중앙값 3500건, 95% 신뢰구간 1800~6200건'으로 써야 한다. 이는 불신을 키우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수치의 신뢰도를 높이는 일이다.
셋째, 연령·기저질환별 세분 분석을 표준화해야 한다. 특히 75세 이상, 면역저하자, 만성질환 동반자 집단의 효과를 별도로 제시해야, 고용량 백신 도입이나 2회 접종 전략 같은 실질적 정책 논의가 가능하다.
넷째, 독립된 외부 전문가 자문단의 동료평가를 거치고, 그 결과를 함께 공개해야 한다. 대한감염학회, 대한예방의학회, 대한소아감염학회 등 관련 학회와의 공식 검토 절차를 연례화할 필요가 있다.
다섯째, 국민 대상 요약본과 전문가용 본문 보고서를 분리 발간해야 한다. 국민에게는 쉽고 정직하게, 전문가에게는 방법과 한계를 상세히. 이 두 층위를 혼동한 현재의 방식이 혼란을 키우고 있다.
인플루엔자 백신은 고위험군을 지키는 가장 비용 효과적인 공중보건 수단 중 하나다. 그 가치를 지키는 길은, 효과를 부풀리는 것이 아니라 효과와 한계를 동시에, 겸손하게, 투명하게 말하는 것이다. 국민은 완벽한 백신을 원하는 것이 아니다. 정직한 정부를 원한다. 첫 연례보고서 발간은 분명 진일보다. 다만 다음 보고서부터는, 숫자의 정확함보다 과학의 겸손함이 더 돋보이기를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