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보라매병원 신경과 구대림 교수

[메디칼타임즈=서울보라매병원 신경과 구대림 교수]한국인은 점점 잠을 못 자고 있다. 실제로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보건의료빅데이터에 따르면 국내 불면증 환자 수는 2020년 65만여 명에서 2024년 76만여 명으로 5년 사이 약 16% 증가했다. 특히 여성 환자는 남성 환자보다 1.5배 이상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환자 수 증가보다 더 주목해야 할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불면증을 여전히 '치료가 필요한 질환'으로 인식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최근 시행된 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의 89%가 최근 한 달 이내에 다양한 수면 문제를 경험했지만, 실제 치료 경험이 있는 사람은 6%에 불과했고 약 70%는 치료 자체를 고려해 본적이 없다고 답했다.
이는 불면증이 흔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너무 흔하기 때문에 오히려 질환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현실을 보여준다. 많은 사람들이 수면 문제를 스트레스, 일시적인 컨디션 저하 혹은 성격적인 예민함 정도로 여기며 참고 버틴다. 그러나 반복되거나 만성화된 불면은 단순한 피로의 문제가 아니다. 최근 수면의학에서는 이를 시상하부-뇌하수체-부신 축(Hypothalamic-Pituitary-Adrenal axis)의 과활성화, 자율신경계 불균형, 수면 항상성 조절 기전의 변화 등이 복합적으로 관여하는 신경생물학적 이상 상태로 이해하고 있다.
이러한 상태가 지속되면 단순히 수면 시간이 부족한 것을 넘어 집중력 및 기억력 저하, 정서 조절 능력 감소, 만성 피로, 무기력 등의 증상이 나타나게 된다. 더 나아가 우울장애 및 불안장애의 위험도 유의하게 증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만성 불면증은 밤에만 나타나는 증상이 아니라 낮 시간의 기능과 정신 건강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질환이며, 전문적인 치료 개입이 필요한 임상적 상태라고 볼 수 있다.
현재 만성 불면증의 1차 치료로는 인지행동치료(Cognitive Behavioral Therapy for Insomnia, CBT-I)가 권고된다. CBT-I는 수면에 대한 비합리적 신념과 과도한 불안을 교정하고, 수면 제한 요법과 자극 조절 기법 등을 통해 무너진 수면-각성 주기를 다시 정상화하는 구조화된 치료 프로그램이다.
다만, 실제 임상에서는 환자의 증상 정도와 생활 환경에 따라 약물치료를 병행하거나 단독으로 적용하는 경우도 많다. 기존에 많이 사용돼 온 졸피뎀 등의 GABA 수용체 작용제 계열 수면제는 뇌 전반의 활동을 억제해 수면을 유도하는 기전으로, 빠르게 잠들게 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일부 환자에서는 다음 날 잔여 진정 효과, 인지 기능 저하, 내성 및 의존성 문제가 보고돼 왔다.
최근에는 이러한 한계를 보완하기 위한 새로운 치료 접근으로 이중 오렉신 수용체 길항제(Dual Orexin Receptor Antagonist, DORA)가 주목받고 있다. 오렉신은 시상하부에서 분비돼 각성 유지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신경펩타이드로, DORA는 오렉신의 수용체 결합을 선택적으로 차단함으로써 과도한 각성 신호를 낮추고 자연스러운 수면 전환을 유도한다.
GABA 계열 수면제처럼 뇌 전반을 억제하는 방식이 아니므로, 잔여 진정 효과, 반동성 불면, 의존성 등의 위험이 상대적으로 낮은 것으로 평가되며, 현재 해외 주요 임상 현장에서 활용이 확대되고 있다.
수면 문제가 주 3회 이상, 3개월 이상 지속되거나, 낮 시간 동안 피로감·집중력 저하·정서 불안정 등의 기능 저하가 동반된다면 이는 단순한 생활 습관 문제가 아니라 치료가 필요한 만성 불면증으로 평가해야 한다.
우리는 하루의 3분의 1을 잠으로 보낸다. 그런데도 수면 문제 만큼은 '버티면 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잠은 의지로 해결하는 영역이 아니라, 뇌 기능과 건강 전반을 유지하기 위한 생물학적 시스템이다. 반복되는 불면은 뇌가 보내는 중요한 경고 신호일 수 있으며, 이를 제대로 진단하고 적극적으로 치료하는 것이 결국 삶의 질과 건강을 지키는 가장 현실적이면서도 중요한 방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