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책을 읽는 마음에 대하여

경북의대 1학년 노정연
발행날짜: 2026-05-26 05:00:00
  • 경북대학교 의대 본과 1학년 노정연

마지막으로 동화책을 읽었던 기억을 떠올려 보자. 아마도 대부분은 어린 시절 추억 속 한 장면에 흐릿하게 남아 있는 게 전부이지 않을까? 우리는 누구나 동화책의 독자였음에도, 시간이 흐르고 성장하면서 철저한 외부인으로 변모한다.

성인이 된 이후엔 동화책을 다시 펼쳐 볼 엄두도 내기 힘들고, 그럴 이유도 떠올리기 쉽지 않다. '아동들의 전유물', 아마도 이것이 일반적인 어른들이 동화책에 대해 가지는 태도일 것이다. 나 또한 어린이 도서관에서 봉사를 하기 전까지는 비슷한 마음가짐이었다.

어린이 도서관에서 낭독 봉사를 시작하면서 나는 동화책에 대해서는 별다른 기대가 없었다. 아이들이 요청하면 성심성의껏 읽어줄 마음의 준비는 되어 있었지만, 그때만 해도 알 수 없었다. 몇몇 동화책들은 스스로 낭독자인 동시에 청자가 되어 책장을 넘기는 손길을 재촉하게끔 만들 것이고, 또 쉬는 시간에도 다시금 책장을 넘겨보며 내용을 곱씹게 할 것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10년도 넘는 세월이 지나 다시 펼쳐 본 동화책은 나의 선입견과는 많이 다른 모습이었다. 단순하고 쉬운 문장들은 유치하기보다는 오히려 큰 울림을 주었고, 뻔할 것이라고 생각한 이야기는 너무나 당연하지만 그래서 더 잊어버리기 쉬운 삶의 진실들을 담고 있었다.

동화책을 넘기면서 나는 어린 시절의 모습을 떠올리며 웃음 짓기도 하고, 성인이 되었음에도 여전히, 일정 부분 어른답지 못한 지금의 나를 들켜버린 듯한 기분도 들었다. 아이들과 함께 동화책을 읽은 덕분에 나는 깨달을 수 있었다. 어느새 다 커버린 어른들에게도 여전히 동화책이 필요하단 사실을 말이다.

하지만 그 이후로도 꽤 오랜 시간이 지나도록 막상 지인들에게 자신 있게 추천할 만한 동화책을 발견하기는 어려웠다. 우선 동화책에 대한 편견을 넘어서기가 쉽지 않고, 동화책은 내용이 비교적 단순한 만큼 각자의 해석에 따라 내용이 전혀 다르게 다가올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와중 이번에 좋아하는 출판사인 동아시아에서 어른들을 위한 동화 『바퀴벌레 이야기』가 출간되었다고 해서 읽어보았는데, 지인들에게 자신있게 추천할 수 있는 동화책을 드디어 발견했음을 확신할 수 있었다.

이 책은 한 소년이 갑자기 튀어나온 바퀴벌레를 보면서 기겁하다가 문득 자신이 어린 시절엔 바퀴벌레를 이렇게 무서워하지 않았다는 것을 떠올리며 시작한다. 이윽고 소년은 바퀴벌레에 대한 두려움은 자신의 본능적인 반응이 아니라, 부모님의 대응을 보고 자라면서 '사회적으로 학습된 것'임을 깨닫게 된다.

하지만 '시간이 흘렀고, 그 생각은 이제 너무 진짜처럼 느껴져서 꾸며진 이야기인지 아닌지 분간할 수가 없었' 던 것이다. 한번 이러한 사실을 상기한 이후로 소년은 그동안 당연함에 가려 의문의 대상이 되지 못했던 '사회가 만든 이야기'에 대해 질문하기 시작하고, 어쩌면 그동안의 '생각'과 '진실'은 다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발견하게 된다. 이러한 작은 균열은 소년이 삶을 바라보는 방식을 송두리째 바꾸어 버린다.

이 책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메시지는 사실 다른 책들에서 이미 다루어진 주제 의식과 크게 다른 부분은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동화책'이라는 형식을 통해 전달되었기 때문에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가지게 된 것이다.

『바퀴벌레 이야기』에서는 동요 내지는 동시가 떠오를 정도로 앞선 문단에서 따옴표로 인용한 문장이 여러 번 반복되는데, 삶의 진실을 담은 명료하고 단순한 문장의 반복은 독자로 하여금 책의 메시지를 명확히 받아들일 수 있도록 도와준다.

이전에도 다른 책들을 읽으면서 비슷한 경험을 했지만, 추상적인 문장들 사이에서 발견한 빛나는 지점들을 타인에게 설명하기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이 책은 다르다. 화려한 문장으로 꾸며내기 보다는, 간결한 문장의 반복을 통해 독자에게 메세지를 전달하고자 하는 작가의 진심이 느껴지는 탓일까.

스스로 터득한 삶의 진실을 '쉬운 말로 쓸 수 있는 용기와 배려'가 있어야만 쓸 수 있는 책이 바로 동화책이라는 사실을 나는 『바퀴벌레 이야기』를 읽으면서 깨달을 수 있었다.

어쩌면 '쉬운 말을 쓸 용기'는 현대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이들에게 꼭 필요한 능력이 아닐까? 우리 모두가 동화책 작가가 될 수도 없고, 그럴 이유도 없겠지만 종종 일상 속에서 과도한 '꾸밈어'가 남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인터넷 및 SNS의 발달과 서비스 업종의 확대, 그리고 각종 민원 등 다양한 이유로 우리는 조금씩 더 자신의 말을 포장하게 된다. 물론 그 목적이 타인을 위한 배려일 때도 있겠지만, 종종 과한 배려는 오히려 상대방의 이해와 의사소통을 방해하기도 한다.

겉보기에는 예쁘더라도, 포장된 언어는 상대방에게 충분히 가 닿을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공허한 대화만이 허공을 맴돌게 되는 것이다. 포장이 일종의 '방패'가 되어버린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선뜻 먼저 쉬운 말을 쓴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일 것이다.

때로는 상대방에게 책잡힐 수 있고, 은근히 낮춰 보는 시선을 마주할 수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기를 내었을 때만 맞닿는 진심은 분명히 존재한다. 그런 진심을 나누는 일이 더욱 가치를 인정받는 사회가 될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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