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회, 내달 의사인력수급추계위원회 1년 맞아 운영 실태 논의
전문가들 "논의 절차의 투명성 및 이해관계자 합의 구조 선결돼야"
[메디칼타임즈=최선 기자] "14대 1로 싸우는 기분이 듭니다. 해외 사례와 달라도 너무 달라요."
내달로 구성 1년을 맞는 '의사인력 수급추계위원회'와 관련해 "독립성과 전문성, 충분한 자료와 검토 시간이 부족한 상태에서 성급하게 운영되고 있다"는 진단이 나왔다.
적정 의사 인력 도출을 위한 전문성과 투명성, 사회적 수용성이 높은 기구라는 당초 설립 취지와 달리 실제 운영 과정을 보면 절차적 투명성과 이해관계자의 합의, 이를 뒷받침할 재정지원 구조 모두 부실하다는 결론에 이른다.
12일 대한의학회는 플렌티컨벤션에서 60주년 기념 학술대회를 개최하고 의사인력 수급추계를 둘러싼 국내 위원회 운영 실태 및 해외 사례를 점검했다.
발표자들은 공통적으로 "추계 결과보다 추계를 만들어내는 구조 자체가 문제"라고 진단했다. 해외 주요국과 비교하면 한국의 의사인력 추계 시스템은 독립성, 데이터 기반, 사회적 합의 절차 모든 면에서 취약하다는 지적이다.
문석균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원 부원장(중앙대병원 이비인후과 교수)은 '의사인력수급추계위원회 현황과 개선 방안'을 주제로 발표하며 위원회 구성부터 추계 방식, 결과 활용까지 전반적인 문제점을 짚었다.
의사인력수급추계위원회의 운영 실태를 직접 경험한 당사자로서 "독립성과 전문성, 충분한 자료와 시간이 모두 부족한 상태에서 성급하게 결론이 도출됐다"고 비판했다.
■"14대 1로 싸우는 기분"…위원회 구성부터 삐걱
의사인력수급추계위원회는 총 15명의 위원으로 구성돼 지난해 말까지 12차례 회의를 진행했다.

초기 회의에서는 기존 연구와 문헌 검토를 통해 주요 쟁점을 정리했고, 이후 통계모형과 변수 선정, 의료인력 수급 예측 방식 등을 논의했다. 7차 회의부터는 인공지능(AI), 비대면진료, 진료지원인력(PA) 제도, 의사 근무일수, 의료이용량 지표 등을 본격적으로 다뤘으며, 8차 회의에서는 미국과 네덜란드 사례에 대한 해외 비교 검토도 이뤄졌다.
문제는 자료가 회의 전날 저녁이나 당일 아침에야 배포되는 경우가 많아 숙의를 통한 적절한 결론 도출까지 물리적 시간이 부족했다는 것.
문 부위원장은 "회의가 2주 단위로 진행됐고 자료는 회의 전날 저녁이나 당일 아침에 전달되는 경우가 많았다"며 "위원들이 자료를 충분히 검토하거나 합의를 도출할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고 말했다.
그는 "해외 사례를 보면 임상 현장에서 진료하는 의사들이 위원회의 상당수를 차지하지만 우리나라 위원회에서는 임상교수가 사실상 본인 한 명뿐이었다"며 "14대 1로 싸우는 기분이라는 말까지 여러 차례 했다"고 밝혔다.
특히 현행 법령상 위원 자격요건에 경제학·보건학·통계학·인구학 분야 전문성은 명시돼 있지만 의학, 특히 임상 분야 전문성은 별도로 규정되지 않아 의료현장의 목소리가 충분히 반영되기 어려운 구조다.
추계에 활용된 기초자료의 한계도 비판했다. 문 부원장은 "위원회에 참여하면 기존 연구자들이 접근하지 못한 다양한 자료를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지만 실제로는 기존 연구에서 사용한 자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며 "결국 기존 추계모형의 한계를 그대로 답습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의료이용량 중심의 추계 방식에도 의문을 제기했다. 현재 모형은 입원 및 외래 진료량 증가 추세를 기반으로 미래 의사 수요를 예측하는데, 인구 감소와 의료전달체계 개편, 통합돌봄 확대, 요양병원 구조조정 등 의료 수요 감소 요인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문 부원장은 "의료이용량을 그대로 연장하면 2050년에는 국민 1인당 입원일수와 외래 이용량이 현재보다 두 배 가까이 증가하는 결과가 나온다"며 "실제로 미래에도 지금과 같은 수준의 의료이용 증가가 지속될 것으로 보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는 "AI의 생산성 효과도 과소평가해 위원회는 AI 도입에 따른 생산성 향상을 6%로 반영했으나, 실제 연구들을 종합하면 생산성은 30~50%까지 높아질 수 있다"며 "추계가 지나치게 성급하게 진행된 측면이 있어 향후 3~5년 뒤가 아니라 보다 이른 시점에 재평가를 실시해 결과를 검증하고 보완해야 한다"고 말했다.
■네덜란드는 2년 데이터, 한국은 투표로 결론
노준수 아주대 의과대학 예방의학교실 교수는 미국·일본·네덜란드 사례를 비교하며 "의사인력 추계의 핵심은 특정 숫자를 도출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규모를 어떤 절차와 제도를 통해 결정할 것인가에 있다"고 강조했다.

세 나라의 공통점은 추계 과정에 충분한 시간과 독립성을 보장한다는 점이다. 가장 모범적인 사례로 꼽힌 네덜란드는 독립 비영리기구 ACMMP가 추계를 전담하며, 50개 이상의 변수를 활용한 시뮬레이션 모델을 운영한다.
데이터 수집에만 약 2년이 소요되고, 3년 주기로 모형과 자료를 갱신하며 분석 과정도 모두 공개한다. 정부가 권고안을 수용하지 않을 경우 의회에 그 사유를 설명해야 하는 구조 덕분에 실제 권고 수용률이 90% 이상에 달한다. 의대 정원이 변동되면 수련재정도 자동으로 연계돼 교육·수련의 질이 유지된다.
일본은 중앙정부와 지자체가 의료정책 방향을 먼저 수립한 뒤 필요한 의사 수를 산출하는 방식을 택하며, "추계 결과가 사회적으로 수용하기 어려운 수준이면 다시 조정하고 합의 가능한 범위를 찾아가는 과정을 반복한다"고 노 교수는 설명했다. 미국은 시장 기반 분권형 체계이지만, GME(전공의 수련 지원 제도)를 통한 재정 연계로 의사 공급 규모를 간접 조절한다.
반면 한국은 보건복지부 장관 소속 위원회가 추계를 맡아 독립성부터 한계를 안고 있으며, 2027학년도 의대 정원 결정과 연동되면서 합의보다 속도가 우선됐다. 결국 투표 방식으로 결론이 도출됐고 그 결과 사회적 수용성이 떨어졌다는 것이 노 교수의 진단이다. 재정 연계도 불명확하다. "인력 추계와 재정 지원이 분리되면 교육과 수련의 질, 필수의료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하기 어렵다"고 그는 경고했다.
강태욱 성신여대 바이오헬스융합학부 교수 역시 일본의 의사인력 논의 구조를 기반으로 "의사 총수를 늘리는 것만으로는 지역·필수의료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못 박았다.
일본의 의사 수는 1982년 약 17만 명에서 2020년 약 34만 명으로 두 배 가까이 늘었지만, 지방 일부에서는 수천 명 규모의 의사 부족이 예상되는 반면 도쿄권은 장기적으로 의사 과잉이 전망된다.
일본은 의대 정원의 약 20%를 지역 의무복무 조건으로 선발하는 '지역와쿠' 제도와 대도시 수련 정원에 상한을 설정하는 '실링' 제도를 운영하지만, 효과는 제한적이다.
실링 제도는 예외 조치가 반복되면서 기존 정원이 사실상 유지됐고, 종합진료 전문의 지원율은 전체의 1~2%에 머물고 있다. "단순히 의무복무를 부과하는 것이 아니라 장기적인 경력 경로까지 설계해야 한다"는 것이 강 교수의 판단.
이날 세 발표 연자는 모두 의사인력 추계는 숫자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라는 데 의견을 모았다. 독립적인 기구, 충분한 데이터와 시간, 재정과의 연계, 그리고 사회적 합의 절차, 이 중 어느 하나가 빠져도 결과는 신뢰받기 어렵다는 것이다.
노 교수는 "기계적으로 도출된 숫자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며 "절차적 투명성과 이해관계자의 합의, 이를 뒷받침할 재정지원 구조가 함께 작동할 때 비로소 신뢰할 수 있는 의사인력 정책이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