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현대 의료기기라는 이유만으로 한의사 사용 금지 안 돼"
CO₂·프락셀·제모·리프팅까지 허용됐다는 해석도 무리한 주장
[메디칼타임즈=최선 기자] 한의사의 레이저 의료기기 사용을 둘러싼 의료계 갈등이 다시 격화하고 있다.
대한의사협회 한방대책특별위원회는 "최근 대한한의사협회가 1987년의 행정해석 등을 들먹이며, 마치 모든 현대 의료용 레이저 기기가 한의사의 합법적 시술 영역인 양 국민을 호도하고 있다"며 "불법적 현대 의료기기 사용 시도를 즉각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반면 한의사가 주축이 된 레이저 관련 학술단체인 대한통합레이저의학회는 "한의사의 레이저 의료기기 사용은 1987년부터 법적·행정적으로 인정돼 왔다"며 의협의 주장을 반박했다.
모두 1987년 행정해석을 인용하면서도 결론이 다른 모양새가 된 것. 누구의 말이 맞는 걸까.
결론부터 말하면 양측 주장에는 각각 맞는 부분과 과장이 있다. '한의사는 레이저를 사용할 수 없다'는 의협의 표현은 현재 판례 법리와 맞지 않는다. 그러나 '1987년 레이저침 행정해석과 1994년 급여화가 CO₂ 레이저·프락셀 등 현대 피부·외과용 레이저 전반의 합법성을 확정했다'는 통합레이저의학회의 주장 역시 지나친 일반화다.
먼저 의협 한특위는 "1987년 보건사회부 행정해석과 1994년 건강보험 급여항목 신설은 극히 제한적인 레이저침에 국한된 것"이라며 "이를 CO₂ 레이저나 프락셀 등 의과 의료용 수술기 전반에 대한 허용으로 확대 해석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주장했다.

실제 1987년 행정해석과 1994년 급여화가 직접 다룬 것은 레이저침술이다. 레이저를 이용해 경혈을 자극하는 침술이 한방의료 영역에서 인정됐다는 의미다. 현재 건강보험에도 '하-10 레이저침술'이라는 행위가 존재한다.
따라서 한특위가 지적한 것처럼 레이저침술의 인정만으로 CO₂ 레이저, 프락셀, 제모·리프팅 레이저까지 자동으로 허용됐다고 볼 수는 없다. '레이저를 이용한 침술'과 '레이저를 이용한 피부 치료'는 의료행위 자체가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특위가 "피부·외과용 레이저는 의과대학의 해부학·피부과학 교육과 임상수련을 거친 의사만이 안전하게 다룰 수 있는 전문 영역"이라고 주장하면서, 이를 곧바로 한의사의 레이저 사용 자체가 면허 범위 밖이라는 결론으로 연결한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대법원이 이미 이 같은 단순한 직역 구분에 제동을 걸었기 때문이다.
대법원은 2022년 한의사의 초음파 진단기기 사용 사건에서 기존 판례를 변경하면서, 현대 과학기술로 개발된 의료기기라는 이유만으로 한의사의 사용을 일률적으로 금지해서는 안 된다고 봤다.
구체적으로는 "관련 법령에 한의사의 해당 의료기기 사용을 금지하는 규정이 있는지", "기기의 특성과 필요한 지식·기술 수준에 비춰 보건위생상 위해가 발생할 우려가 있는지", "전체 의료행위가 한의학적 의료행위의 원리에 따른 것인지" 등을 종합해 판단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즉 '현대 의료기기=의사 전용'이라는 공식은 현재 대법원 판례와 일치하지 않는다. 실제 대법원은 초음파 사건에서 한의사가 초음파를 한의학적 진단의 보조수단으로 사용한 행위에 대해 무면허 의료행위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한의계는 이 부분을 파고든다.
대한통합레이저의학회는 "한의사의 레이저 의료기기 사용은 1987년 이래 그 법적·행정적 지위가 변경된 바 없다"고 주장하면서 2012년 프락셀 관련 보건복지부 회신, 2019년 대구지검의 CO₂ 레이저 사건 불기소, 2024년 이후 경찰의 레이저·고주파·제모·리프팅 관련 불송치 사례 등을 근거로 제시했다.
최근 사례를 보면 한의계 주장의 근거가 단순히 30~40년 전 행정해석에만 머물러 있는 것도 아니다.
실제로 한의사협회가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2026년 부산해운대경찰서는 레이저·고주파 시술을 한 한의사 사건에서 "한의사의 해당 의료행위가 한의사의 업무 범위를 벗어나 무면허 의료행위에 해당한다는 명확한 근거는 확인할 수 없다"며 혐의없음 결정을 내렸다.
수원영통경찰서 역시 검버섯 레이저 시술 사건에서 "문제 제기된 의료기기 등의 원리가 서양 의학적 원리에 전적으로 기초하고 있다거나, 해당 의료기기를 통한 시술이 의사만의 고유한 영역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런 사례만 놓고 보면 한의계의 "한의사의 레이저 사용 자체가 불법이라는 주장은 근거가 약하다"는 반박에도 상당한 힘이 실린다. 그렇다면 CO₂ 레이저나 프락셀까지 정말 모두 허용된 것일까. 여기서 한의계의 논리에도 빈틈이 생긴다.
한의계는 여러 불기소·불송치 사례와 판결을 연결해 '레이저 의료기기 사용이 계속 합법으로 인정돼 왔다'고 주장하지만, 개별 사건에서 혐의없음 또는 무죄가 나왔다는 것과 특정 레이저 시술 전체의 면허 범위가 확정됐다는 것은 같은 의미가 아니다.
한의계가 근거로 든 수원지방법원 사건도 마찬가지. 해당 사건에서 법원이 판단한 핵심은 한의원의 레이저 시술 자체를 대법원 판례처럼 정면으로 적법하다고 확정한 것이 아니라, 의사들이 한의원의 의료행위를 '불법'이라고 표현한 행위가 허위사실에 의한 업무방해에 해당하는지 여부였다. 법원은 한의원의 해당 업무가 위법하다고 볼 객관적인 자료가 기록상 확인되지 않는다는 취지로 판단했다.
이를 뒤집어 말하면 법원이 "한의사의 CO₂ 레이저·프락셀·제모·리프팅은 모두 합법"이라고 판결한 것은 아니다. 해당 사건에서 문제 된 표현의 허위성·업무방해 여부를 판단하는 과정에서 한의원의 의료행위가 불법이라고 단정할 근거가 부족하다고 본 것이다.
의협 한특위는 "레이저침과 현대 의학적 레이저는 다르다"고 주장하는 반면 한의계는 "레이저 의료기기 사용 자체가 금지된 적이 없다"고 말한다. 둘 다 일정 부분 사실이지만, 각각 서로 다른 층위의 질문에 답하고 있는 셈이다.
레이저침은 레이저라는 에너지를 이용해 경혈을 자극하는 행위다. 반면 CO₂ 레이저는 피부 조직을 기화·절삭할 수 있고, 프락셀은 미세한 열손상을 유도하며, 제모 레이저는 모낭을 표적으로 한다. 같은 '레이저'라는 이름을 쓰지만 목적과 작용 방식, 침습성, 위해 가능성이 모두 다르다.
따라서 "한의사가 레이저를 사용할 수 있다"는 명제에서 "한의사가 모든 레이저 시술을 할 수 있다"는 결론은 나오지 않고 마찬가지로 "CO₂ 레이저가 의과 영역에서 개발됐다"는 이유만으로 "한의사는 사용할 수 없다"는 결론 역시 자동으로 성립하지 않는다.
대법원의 기준은 이보다 구체적이다. 중요한 것은 '레이저냐 아니냐'가 아니라 어떤 기기를 어떤 목적으로 어떤 방식으로 사용했는지, 그 행위가 한의학적 의료행위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 해당 시술에 요구되는 전문지식과 위해 가능성이 어느 정도인지다.
결국 이번 논쟁의 핵심은 "한의사가 레이저를 사용할 수 있느냐"가 아닌 "한의사가 어떤 레이저를 어떤 의료행위에 사용할 수 있느냐"가 정확한 질문이라는 것.
현재 판례를 기준으로 보면 의협의 '한의사의 현대 레이저 사용은 원칙적으로 불법'이라는 주장은 지나치게 넓고, 한의계의 '레이저 사용이 인정돼 왔으므로 CO₂ 레이저·프락셀·제모·리프팅까지 가능하다'는 주장 역시 개별 사건의 판단을 전체 시술의 합법성으로 확대하는 측면이 있다.
결국 아직 법원이 확정하지 않은 영역을 두고 양측이 각자 자신에게 유리한 판례와 행정해석만 골라 '레이저'라는 단어의 범위를 넓히거나 좁히고 있는 것이 현재 논쟁의 실체에 가깝다.






